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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을 욕망하다 / 여정훈

작성자 : 관리자 (175.213.122.***)

조회 : 1,325 / 등록일 : 19-12-09 15:16

 

 

 

희년을 욕망하다
- 12월 희년예배 메시지 -

 

 


여정훈 / 희년예배 기획위원


오늘 우리는 대림 첫 주에 희년예배로 모였습니다. 대림절은 전통적으로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성탄절을 더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 전에 죄를 회개하고 금식하는 기간을 두는 전통이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고, 그것이 6새기 말쯤에 4주간으로 고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방금 읽은 이사야의 말씀은 하느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실 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하느님의 통치가 가져다 줄 평화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 하느님의 통치가 우리가 알 수 없는 때에, 도둑처럼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림 1주일의 본문인 오늘의 말씀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님의 통치’라는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에 이 말씀들을 읽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최초의 기독교인들을 비롯하여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사건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온 사건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포로기 경험 가운데 어떤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 새로운 제국이 나타나 기존의 권력을 대체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삶은 언제나 괴롭던 세상, 부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지만 가난한 이들은 갈수록 더 빼앗기는 세상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향수, 목마름, 갈망, 혹은 욕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없고, 아무리 가난한 이라 할지라도 먹을 것을 충분히 공급받으며, 저 막강한 권력자들에게 빼앗겼던 이들은 자신의 몫을 돌려받는 세상, 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은 그들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이야기들, 그러니까 에덴동산, 노아가 본 무지개, 출애굽, 성전 안에 가득 찼던 하나님의 영광 같은 이야기를 통해 자라난 것입니다. 그 갈망을 가지고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다시 출애굽과 같은 영광스러운 순간을 주실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의 종이 되어 우상 숭배하는 이들의 종이 되어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어 그 마음에 율법을 새겨주신다면, 죄 문제는 해결되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통치를 세상에 가져오는 영광스러운 직분으로 회복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언자들의 희망입니다.


대천덕 신부님은 생전에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명선언에서 이 ‘새로운 언약’을 찾아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는데, 대신부님은 이 ‘은혜’라는 단어에 ‘자원’ 그러니까 ‘스스로 원하다’라는 뜻이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대천덕 신부의 하나님 나라, 117.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말씀에 따라, 자기 온 생명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 역시 자신이 가진 재산, 그리고 토지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내놓아 가난한 이들과 나누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통하여서, 자원함으로 가진 것들을 상통함으로써, 대신부님이 사랑하셨던 용어를 사용하지만 ‘코이노니아’(교통, 친교, 상통)를 통해서 역사 안에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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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말씀과 기도만 나누지 않고 빵과 포도주를 나눌 것입니다. 이 성찬에는 교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코이노니아의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제가 속한, 그리고 대신부님이 속해 계셨던 성공회 전통에서는 성찬을 ‘Communion’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코이노니아로부터 유래된 단어입니다. 성찬에서 손을 펴서 빵을 받고, 다시 빵을 집어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행동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우리 몸에 새기는 훈련의 순간입니다.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으로부터 거저 받을 때에, 그래서 그 한없는 은혜를 체험할 때에 우리는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통해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새겨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관계, 서로 유무를 상통하여 누구도 적게 받지 않고, 모두가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관계를 더 갈망하게 됩니다.


어쩌면 오늘의 예배는 우리를 충만하게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코이노니아의 경험은 우리를 더 목마르게 할 것입니다. 그 목마름은 완전한 코이노니아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이 목마름은 오직 하느님 나라가 우리 삶 가운데 도래할 때에만 충족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이 욕망, 기어코 하느님 나라를 맛보려 하는 욕망이 이제부터 우리의 삶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성탄절이 다가왔을 때, 완전한 코이노니아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눈앞에 계시되었을 때, 우리는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대천덕 신부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코이노니아에 힘쓸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인 코이노니아는 하느님 삼위일체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를 사랑하시며 서로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며 서로를 영원히 기뻐하시는 관계 안에 계십니다. 결국 코이노니아에 참여하는 인간은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원한 친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이 성찬의 식탁을 통해서 갈망하는 코이노니아는, 희년함께 예배에 더 어울리는 단어로 말하면 우리가 자발적으로 실천하게 될 그 희년은, 기독교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침묵
- 우리 안에 어떤 욕망들이 있습니까? 그 욕망은 무엇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 그 욕망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습니까?
- 잘못된 욕망에 이끌리어 이웃의 삶을 파괴하는 이들이 있다면, 혹시 그 사람이 여러분 자신이라면 잠시 중보와 회개의 기도를 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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