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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재정관리’는 전투다 / 서경준

작성자 : 희년함께 (220.121.145.***)

조회 : 2,690 / 등록일 : 20-07-07 14:41

 

 

 

성경적 재정관리’는 전투다

전투적 성경적 재정관리론

 

 

 

 

서경준  / 희년은행 자문위원, 돈병원 원장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3~24절)

 

‘성경적 재정관리’가 무엇인지 말할 때 매우 조심스럽다. 재정관리 전문가로 소문난 유명한 몇 몇 크리스천이 하는 말을 듣다보면 내게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들은 틀리고 내가 맞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나에게 ‘성경적 재정관리’를 정의하는 일은 나의 오류를 드러내거나 자만을 드러내는 것이지 않을까 하여 망설이게 하고 틀렸을까봐 숨어서만 말하고 싶어지는 주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뱉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주장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인 사이에서 ‘성경적 재정관리’에 대한 정의가 맘몬의 영향력에서 조금 더 빠져나와 성경적으로 올바른 쪽으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맘몬과 싸워야할 우리가 ‘성경적 재정관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너무나 중요하다. 싸움 자체를 성립시키기도 하고 싸움의 방향과 방법까지도 여기에서 판가름 난다. 다만,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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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재정관리 전문가로 소문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그 분들이 성경구절을 아주 잘 인용하고 있지만 결국은 인간의 소욕을 충족하는 수준을 뛰어넘지 않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돈 관리 기술에 대해 설명하면서 성경구절을 인용하면 상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다 옳은 이야기’라고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정직, 성실, 청지기’ 등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큰 부자가 되는 것에 사람들이 열중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부자가 죄인은 아니지만 부자 되려는 마음은 죄다. ‘부자 되려는 마음은 죄로 이어지기 쉽다’라는 정도로 표현해도 될 만하지만 솔직한 생각을 그대로 적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면서 한 편으로는 돈을 추구하는 상태로 너무 오랫동안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맘몬과 혼합된 정신과 태도를 분리해내기 위해 지금 우리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단호한 이분법’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래서 ‘돈은 잘만 이용하면 좋은 것’이란 생각을 기독교인들이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생각은 적어도 지금을 사용할 때가 아니다. 

 

‘돈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거나 멀리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라고 하는 주장도 맘몬과 혼합된 우리를 분리해 내는 것에 별로 쓸모 있는 생각이 아니다. 부자 되는 것이 죄는 아니라거나, 하나님도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 주기를 원하신다는 등등 돈을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하데 사용되던 성경해석을 모두 멈추어야 한다. 그 말들이 틀려서라기보다는 맘몬과 분리되어야할 지금은 사용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흑백논리를 분리하지 말아야할 것에 사용하면 안되지만 분리해야할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흑백논리를 사용해야 한다. 맘몬과 우리를 분리하기 위해서 흑백논리를 사용하자.

 

사탄은 ‘성경적 재정관리’의 정의 단계에서부터 우리에게 개입하여 지혜를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 누가 돈에 대해 성경을 들어 말하거든 기독교인은 우선 ‘의심’하는 자세로 들을 필요가 있다. 필자의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성경적 재정관리에 대한 정의를 목회자나 재정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기독교인 모두가 맡아야할 일이다. 모두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목회자가 하는 이야기는 관념적인 것 같고 재정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다른 길로 인도 하는 것 같다. 다수 기독교인들의 집단지성이 작동되어 의심하고 정의해보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성경적 재정관리’가 제대로 정의되고, 기독교인 누구나 알게 되고, 생활에 적용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성경적 재정관리가 잘못 정의되는 것은 ①자기를 부인하지 않았고 ②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았으며 ③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 것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적 재정관리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 세 가지에 대해 짚어보자.  

 

⑴ 어떻게 하면 성경의 원리대로 하면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를 주로 생각한다.

⑵ 내가 부자가 되어 하나님 일에 돈을 공급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⑶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소유자이시고 나는 청지기라고 생각한다.

 

(1)번 견해와 같은 기독교인이 대다수가 아닐까 싶은데 이런 견해가 성경적 재정관리에 대한 바른 견해가 아니란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돈 버는 도구가 아니다’는 말로 짧게 맺음한다.

 

(2)번 견해는 하나님 일을 하는 것에 조건을 단 것이다. (‘하나님 저를 부자로 만들어주시면 내가 하나님 일을 할께요’) 부자가 되어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기 사명인지 냉철하게 따져봤으면 한다. 자기 사명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돈이 필요하다면 이미 부자인 다른 사람의 돈을 끌어다 공급해주실 수도 있을 텐데 왜 하필 내가 직접 부자가 되려는 것인지’, ‘내가 하나님 일을 하는 길은 부자 되는 길 말고도 있을 텐데 왜 하필 부자 되는 길로 가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잘 물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님일과 이웃에게 돈을 많이 쓰고도 넉넉히 남을 만큼의 부자를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바란다.

 

언젠가 부터 ‘하나님 나라에 보화를 쌓아두면 50배 100배 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재정원리다’는 이야기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 이면서 동시에 부자이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에 딱 맞아떨어졌기에 교리화 되어 번져나간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 교리에 심취한 사람을 몇몇 보았는데 내 눈에는 그 분들이 하나님 나라보다는 ‘나도 큰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에 더 빠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분들 입에서 ‘공평과 정의’에 대해서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더 믿음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3)번 ‘청지기론’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잘 밝혀 주고는 있지만 ‘그런데 무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청지기 역할은 십일조가 다 일까? 정직과 근면성실이 다 일까?

‘청지기론’은 성경적 재정관리를 정의하기에는 공백이 큰 것 같다. 이 공백을 채우는 데에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청지기는 무엇을 위한 청지기 인가? 창조주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제대로 일하는 청지기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성경적 재정관리’를 정의할 때는 ‘목적과 수단’개념이 필요해진다.

 

목적을 알아야 수단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숟가락은 어디에 사용되는 물건인지 이야기해보자. 배고픈 존재이고 목적이 식사이면 음식을 입에 떠 넣는데 쓰일 것이다. 죄수이고 목적이 탈옥이라면 땅을 파는데 쓰일 것이다. 배고프나 목적이 저항이라면 숟가락은 쓰이지 않을 것이고 죄수이나 죄값을 달게 받을 목적이라면 역시 땅을 파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수단’의 사용법이 완전히 달라진다. 목적을 이해해야 사용법이 제대로 정의된다. 그리고 ‘목적’은 ‘존재’와 직결된다.

 

‘목적과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아래 단어들을 목적과 수단에 연결 지어 보자. 

하나님(또는 하나님 나라)과 나. 이 둘 중 어느 쪽이 목적의 자리에, 어느 쪽이 수단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다음으로 나와 돈. 이 둘 중에서는 어느 쪽이 목적의 자리에, 어느 쪽이 수단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이제 다들 알게 되었으리라. 돈을 성경적으로 잘 다루기 위해서는, 기술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그의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핵심이요 출발점이다. 공의와 정의에 맞게 벌고, 쓰고, 모으고, 흘려보내는 것이 ‘성경적 재정관리’인 것이다. 즉, 성경적 재정관리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의 문제이고 존재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정의하게 되었다.

 

“①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②그에 맞게 나와 돈의 관계를 설정하고 ③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내가 되도록 벌고, 모으고, 사용하는 것” 한마디로 “나다운 내가 되도록 돈을 벌고 쓰고 사용하는 것”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역할을 사명으로 삼기 원하실까? 그 사명에 맞게 내 돈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알맞은 재정관리이다.

 

그런데 이런 정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탄의 개입으로 인해 ‘성경적 재정관리’를 변질시키게 된다. ‘성경적 재정관리’를 돈에 대한 내 필요나 소욕을 채우는 것으로 변질시키지 않고 ‘하나님 나라 원리’에 딱 묶어두는데 매우 중요한 단어가 두 개 있다. ‘이웃’과 ‘전투’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7~38절)

 

(1) 이웃

 

[주 ⇆ 나 ⇆ 돈] 

이 범주 내에서만 생각하면 자꾸 변질되어 ‘주님 나 돈 주세요’ 쪽으로 간다. 여기에 ‘이웃’을 넣어 생각해야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주 ⇆ (이웃) ⇆ 나 ⇆ 돈] 

이렇게 ‘이웃’을 넣어 물질을 관리해야 ‘공의’에 충실한 물질관리를 할 수가 있다. ‘공의와 정의’에 맞게 하는 것이라야 성경적 재정관리다. ‘공의’란 관계의 올바름이다. 창조주와 피조물로서의 관계가 올바르게 서 있는 것이 ‘공의’이다. 나와 이웃의 관계가 올바르게 서 있는 것이 ‘공의’이다. 

이웃을 위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마22:37~40) 따라서 이웃을 위하는 것을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하는 이웃을 위한 선행쯤으로 생각하는 것도 성경적 재정관리를 한 참 빗나가게 만든다. 그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야 한다. 이웃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 재정관리’의 핵심이자 척도라고 나는 감히 단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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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재정관리를 올바르게 정의하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인 ‘공의와 정의’에 착 달라붙어서 정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적 재정관리를 개인 인생차원의 돈관리 문제로 협소화 혹은 타락 시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성경적 재정관리의 정의를 개인과 가정의 행복 추구하는 것에 국한시키는 것은 역시 사탄이 바라는 바이다. 

 

만일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재물관리’라고 한다면 뜨거운 느낌은 들지만 ‘주를 위해’라는 대목이 추상적이어서 쉽게 변질될 수 있다. ‘돈을 버는 것도 이웃에게 유익하게, 돈을 모으는 것도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이웃을 위해’라고 해야 변질을 막을 수 있다. ‘나는 이웃의 필요를 채우고, 내 필요는 주님께서 채우는 것’이 성경적 재정관리의 핵심원리인 것이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누가복음 16장 9절, 12절)

 

(2) 전투

 

“돈은 단순히 중립적인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악마적인 힘이다...우리가 돈을 비인격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한 그 돈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 이외의 도덕적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이 권세들(power)에 의해서 생기가 돌고 활성화된다...지상의 통치자들과 사회제도와 다른 많은 일들의 배후에는 천사적이거나 악마적인 본성을 가진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권위와 세력이 있다.”

(리처드포스터 지음 ‘돈,섹스,권력’ 중에서)

 

돈은 오래전부터 인간을 침탈하는 사탄의 주요 무기였다. 이미 돈은 신의 자리를 차지했고 공급자가 되어 있다. 그런데 어찌 크리스찬이 그것과 싸우지 않을 수 있을까? 만일 ‘돈은 아무런 죄가 없고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적들을 숨겨주는 일이 된다. 싸워야할 대상을 ‘잘 이용해야할 대상’이라고 인식하면 적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 이런 실책이 주로 크리스천 재정전문가들 사이에서 빚어지고 있어서 정말 아프다. 사람들로 하여금 돈에 대한 경각심을 잃게 하는 말을 삼가야한다. 지금은 돈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워 하나님 일을 하겠다는 때가 아니라 돈과 싸워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돈을 끌어내려야 할 때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주도권 싸움이고 하나님 나라의 정부차원에서는 권력투쟁이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누가복음 12장 31절, 16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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