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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다. 이미 집에 있는데도 말이다. / 한신경

작성자 : 희년함께 (175.213.122.***)

조회 : 1,403 / 등록일 : 20-09-08 16:16

 

 

 

집에 가고 싶다. 이미 집에 있는데도 말이다. 

 

 

 

한신경 / 희년함께 회원

 

유난히 지치는 날, 엄마가 해준 집밥이 먹고 싶은 날, 남편이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처럼 느껴지는 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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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집에 대한 가장 오래된 첫 기억은, 인천의 한 저층 아파트로 이사를 들어오던 4살 어느 날의 기억이다. 나의 첫 집은 아버지가 일찍이 사우디에 가서 벌어온 돈 조금과 대부분의 융자를 받아 마련한 것으로, 내 유년기와 청소년, 20대 청년의 모든 삶의 기억이 녹아있는 곳이다. 아직까지 종종 꿈에 나와 돌아가신 아빠를 만나는 익숙한 배경이 되기도 하고, 또 눈을 감고 떠올리자면 아파트 앞 도로와 입구, 꼭대기층 우리 집까지 계단의 개수와 현관 모양, 그리고 집안 구조와 장판, 벽지 무늬까지 생생하게 재생된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오빠와 나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살았지만 내가 성인이 된 후 먼저 타지로 나가고, 다른 가족들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관계가 틀어져 눈치게임이라도 하듯 한 사람씩 빠져나갔다. 우리 집을 두고도 나를 포함해 아무도 그 집에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면서, 나는 거의 6년 만에 비어있던 그 집에 다시 돌아와 3년 정도를 혼자 지냈다. 네 가족이 거의 30년을 살았으니 가족 각자의 긴 세월을 떠안은 온갖 짐이 차고 넘쳤고, 돌보지 않아 성한 곳 없이 낡고 외로운 그 공간이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과 대조되어 더 외로웠다. 

 

결국 더는 지낼 수 없어 집을 정리하고 나왔다. 많은 짐들을 혼자서 정리할 엄두가 나질 않아 이사업체에 웃돈을 주고 모두 폐기해 달라 맡겨버렸다. 그리고 이사 전날 내 옷과 책 몇 권, 가족앨범만 챙기고, 이삿날에는 일부러 그 집에 가지 않았다. 내 첫 집의 마지막을 외면한 채 야반도주하듯 나와버린 것이다. 

 

이후 4년 정도 월세방을 얻어 자취를 하다가 작년에 결혼하여 남편의 동네로 이사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이 내 인생의 세 번째 집인 셈인데, 작지만 내가 지냈던 곳들 중 가장 깨끗하고 훌륭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보낸 첫 집을 제외하고는 두 번째 자취방도 지금 사는 이곳도 온전한 내 집이라는 생각은 아직까지 들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첫 집을 떠올린다.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은 그 집. 상처가 가득한 내 첫 집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누군가의 분노가 뻗쳐 주먹 크기로 부서진 문짝 이며, 습기에 삭아버린 화장실 문틀을 손보고, 세월이 쌓여 누렇게 변해버린 울퉁불퉁한 벽지위에 페인트를 덧발라 고운 얼굴로 화장해주고, 더러운 장판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싶다. 그래서 도망치듯 나왔던 이 집에 대한 마지막 기억과, 어울러 버려진 것만 같았던 나와 가족의 지난 시절을 안아주고 싶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행복했고, 나쁘지만은 않았던, ‘내 집’이라는 느낌을 주었던 내 첫 집을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온전한 내 집이라는 개념이 시간과 비례해서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의 안정감이나 즐겁고 따뜻한 추억으로 채워지는 것인지, 혹은 내돈내산, 전월세를 벗어나 매입을 해야 생기는 것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나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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