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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우리의 아저씨 / 이신근

작성자 : 희년함께 (210.222.103.***)

조회 : 1,996 / 등록일 : 21-01-10 23:23

 

 

 

나의 아저씨, 우리의 아저씨

 

 

 

이신근 / 희년함께 간사

 

같은 곳을 봐도 보는 사람에 따라 그곳의 아름다움이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희망과 기대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더럽고 추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어 절망적이다.

 

절망적인 세상에도 구원의 메시지는 곳곳에 잘 숨겨져 있다. 아니 어쩌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릴 향하신 하나님의 배려로 잘 드러나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통해, 혹은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상사를 통해, 잘 가꾼 화분에도, 혹은 쓰레기 가득한 분리수거장에도 구원의 꽃은 피어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도 가끔 기독교적 메시지를 발견할 때가 있다. 방영된지는 좀 됐지만, 최근에 우연히 본 드라마 한 편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보게 됐다. “나의 아저씨” 작가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쓴 거 같진 않지만, 드라마 곳곳에 잘 드러나 있어,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과, 그 내용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 등장인물 중심으로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1. 성공한 인생, 실패한 인생

 

삼 형제 중 첫째 상훈의 삶의 목표는 부모 장례식 때 엄청난 수의 화환과 앉을자리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것. 성공의 기준은 자신의 경조사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냐로 결정된다. 하지만 처한 현실은 신용불량자에 채권자를 피해 도망 다니고, 이혼의 위기가 눈 앞에 있다. 그래도 건물 쓰레기를 청소하며 성실히 돈을 모아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결국 상훈은 그 돈을 친구나 친척 하나 없는 지안의 할머니 장례식을 좀 더 화려하게 꾸며주는 데 썼다. 누군가 의지할 곳이 없는 지안을 위해 쓴 돈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소비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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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자기 경조사 때 무조건 많은 수만 모이면 되는 가짜 관계보다 진심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깊은 위로를 전해 줄 수 있는 진짜 관계를 만나는 것,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진심으로 베풀 수 있는 은혜를 기쁨으로 베풀 수 있는 것, 상훈의 성공 기준은 바뀌었다. 

 

2.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배우 최유라는 연기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삼 형제 중 셋째 기훈이 영화감독 시절 연기에 대한 질책을 호되게 당하고 생긴 상처다. 술에 취하지 않고는 삶을 견뎌내는 게 힘들었던 최유라에게 구원과 같은 소식은 영화 실패 후 건물 청소일을 하는 기훈의 모습이었다.

 

삼 형제의 단골 술집이자 고등학교 동창들이 밤마다 모여드는 술집이 있다. 은행 부행장이었다가 모텔에서 수건 개고 있는 사람, 자동차 연구소 소장이었다가 미꾸라지 수입하는 사람, 제약회사 이사였다가 백수 된 사람, 이들 앞에서 망가진 사람이 좋다고 당당히 말하는 최유라. 평생을 실패하고 망가질까 봐 두려워 살았는데, 그녀의 눈에는 망한 기훈이나 모인 사람들이 망해도 아무렇지 않아 좋아 보였다.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그녀의 고백은 술집에 모인 사람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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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에 대한 꿈을 꾸고, 삶의 목표를 정하고 나가지만 그 꿈과 계획이 모두 무너져도 괜찮다. 내가 어떤 실패를 하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지지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으면 행복이 무너지지 않는다. 어쩌면 교회 공동체 존재의 핵심적인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3.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서!

 

지안은 빚 때문에 어려서 도망친 부모 말고 청각장애에 몸도 불편한 할머니 외에는 가족이 없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부모의 빚은 지안의 빚이 되었고, 지긋지긋한 폭력적인 채권추심에 시달렸다. 결국 할머니가 맞는 상황에서 참지 못하고 어린 지안은 충동적인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풀려나긴 했지만, 여전히 지속되는 부채의 압박과 폭력적인 채권추심, 살인자라는 낙인, 몸이 아픈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상황, 지안은 자신의 인생에 한줄기의 빛을 경험하지 못했다.

 

당장 목돈이 필요해 지안은 직장 상사인 삼 형제 중 둘째 동훈을 도청하기 시작하고, 한없이 착하고 매너 있고 직원들에게도 평가가 좋은 동훈의 약점을 집요하게 찾으려 애쓴다. 모든 사람은 위선적인 모습이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동훈은 위선과는 다른 성격의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자기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이 뭔지 몰라도 가족이 행복을 위해서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동훈은 아내가 자신이 가장 싫어한 인물과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된다. 갑자기 찾아온 너무 절망적인 상황에 동훈은 극단적인 생각까지 생각하지만, 이후 어머니, 자녀, 형제와 이웃들이 받을 정신적인 고통을 생각하면 차마 실행할 수가 없다. 

 

아무도 모르게 넘어가려 했고,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광적인 비명을 질러댔다. 그 소리는 지안 만이 들을 수 있었다. 정신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상훈은 지안의 어려움을 알고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썼고, 지안은 처음으로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다. 우연히 동훈의 안부를 묻는 할머니에게, 지안은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훈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좋아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서”라며 얼버무리지만 지안의 내면은 동훈에 대한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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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이 동훈에게 끌렸던 건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깨끗한 사람이라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기 좋아하고,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의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의 내면, 세상에 부러울 거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자신만큼 이미 영혼은 죽음의 문턱에 걸쳐 있다는 것. 지안은 어쩌면 자신만이 도움이 절실한 존재 인 줄만 알았는데 역으로 죽어가는 동훈에게 자신이 숨통을 트이게 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처럼 구원의 통로는 일방적이지 않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구원의 통로가 되어주겠다는 건 착각일 수 있다. 구원은 언제나 상호적이다. 딸이 키워보니 더욱 확실히 알았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작은 아기와 함께 힘들고, 함께 성장하고, 서로 의존하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 구원의 과정에 동참하는 게 삶이라는 걸 알았다. 누구를 만나든, 예외가 없다.

 

4. 아무것도 아니야

 

좋은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변호사를 직업으로 둔 배우자를 만나도 동훈은 언제나 삶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자기 가족과 부모 형제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자신의 행복쯤은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이는 삶과 내면의 삶과의 괴리는 아내의 외도, 그것도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사람과의 불륜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하고 만다.

 

‘아무것도 아니야’는 동훈의 인생철학이다. 불행한 사건도 자기 혼자만 알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내면은 이미 지옥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잘 감췄던 실제 삶을 자신의 회사에 다니는 파견직 근로 직원 지안이 모두 알게 됐다. 이미 다 망가져 버린 자신의 삶을 다 알고도 진심으로 지지해 주고, 안아주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지안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진심으로 행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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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고 어두운 내면이 드러나도 내 삶이 지지받을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준다. SNS는 그런 본성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우울과 두려움은 잘 감춘 체 행복의 포장지로 자신의 삶을 감싼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희년은행에서 빚을 지고 힘들어하는 청년을 상담할 때 보면 대부분 교회에 이 사실을 숨긴다. 취업에 실패하고, 빚을 지고, 이혼의 아픔을 경험하고, 해고를 당하고, 고통 중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도 거리를 점점 벌린다. 어느 때보다 위로와 돌봄이 필요할 때 교회는 더욱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예수가 가까이 있던 많은 사람들은 당시 유대인들이 관계하기 꺼려한 사람들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 민족을 배반한 세리, 정신이 무너져 귀신에 시달리는 사람, 잡종 혼혈이라며 손가락질당하는 사마리아인, 생계 때문에 다수의 남편을 둔 여인, 예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이들과 함께 하는 것에서 찾았다. 내 직업과, 배경과, 재산이나 외모가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가 사랑받는다면 그곳은 이미 하늘나라다. 나와 타인을 끊임없이 분리시키려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넌 혼자가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복음의 핵심이다.

 

5. 돈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 되기 쉬어!

 

할머니가 좋은 사람 같다며 동훈을 칭찬하자, 지안은 돈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 되기 쉽다며 정색한다. 결국 돈 많은 사람에 대한 지안의 편견으로 결론이 났지만, 어느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경제기반이 무너지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나와 가족과 주변과의 관계는 결국 계속 후순위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여럿 목격했다. 최소한의 삶의 기반이 무너지면 관계도 허물어지기 쉽고, 우울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기 쉽다. 최소한의 삶의 기반은 사회 공동체가 책임져 주는 게 맞다.

 

때로는 내가 힘들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나의 아저씨가 필요하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내가 어떤 과거를 가졌든, 어떤 성격을 지녔든, 어떤 상황이든 기댈 수 있는 ‘우리의 아저씨’, 기본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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