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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시대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부동산 / 김명훈

작성자 : 희년함께 (210.222.103.***)

조회 : 1,433 / 등록일 : 21-01-11 16:36

 

 

 

코로나19시대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부동산

 

 

 

김명훈 / 희년함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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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를 침공했다.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역사적으로 구분될 만한 시기를 함께 지나고 있다. ‘코로나19시대’의 기본자세는 마스크를 항시 착용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사회적 거리기준에 따라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마스크착용과 사회적 거리기준을 준수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위협의 정도가 크고 명확해지면 합의를 이룰 수 없을 것만 같던 사람과도 같은 방향으로 박수를 치고, 같은 곳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일본과도 협력해야하지 않겠냐는 한 정치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보면서 지구를 침공한 악당과 지구를 지키는 주인공 중에 누가 좋은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인지 토론 따위는 없었다. 다만, 논쟁거리라고는 어떤 주인공의 역할을 내가 차지할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언제 정체를 드러낼까 하는 것 정도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실로 명확해 보인다. 덕분에(?) 우리가 함께 박수치는 좋은 놈, 같이 손가락질하는 나쁜 놈이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부동산이라는 이상한 놈은 철갑을 두른 듯 ‘코로나19시대’에도 우리의 고민거리라고 한다.  

 

‘코로나19시대’의 좋은 놈은 기꺼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나와 내 이웃 그리고 개개인의 위기대응을 지원하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이다. 겨울철 감염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짧지 않은 시간을 꽤 괜찮게 서로를 지켜주며 위기를 극복해 가고 있다. 반면, 영웅들의 노력을 무력화 시키는 나쁜 놈은 비말(침방울)이나 접촉으로 전파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상 모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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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87년 종로, 2) 2002년 종로, 3)2016년 종로, 4)2020년 종로 

 

필요할 때면 언제든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고 촛불을 드는 한국 사람들만큼 모이기를 좋아하고 또 잘 하는 민족이 있을까? 그래서일까 한국은 모이기를 힘쓰는(사도행전2:46) 교회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교회는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집단감염 위험시설로 분류 되었고 모이는 것을 폐하게(히브리서10:25)하는 상황을 용인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의 교회들과 모임자제를 당부하는 정부의 방침은 갈등요소였다. 결국, 특정 기독교단체가 무리하게 주관한 집회가 감염 재 확산의 원인이 되면서 교회는 사회전체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나쁜 놈이 되었다. 그 후로도 교회와 관련한 집단 감염소식과 기독교에 대한 혐오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나쁜 놈은 좋은 놈과 늘 인연이 깊다. 그 사연도 구구절절하여 알고 나면 나쁜 놈과 좋은 놈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다. 

 

한국 의료시스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코로나19 의심환자들에게 비용부담 없이 진단을 받고 치료할 수 있다는 신뢰를 준다. 이는 조기진단과 조기치료가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역학조사의 자료가 되는 환자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으로 입원치료를 받은 사람이 110만 달러(한화 약13억) 청구서를 받았다는 기사가 화재가 되면서 치료비의 80%는 공단이 20%는 국가가 부담해 본인 부담금이 0원인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졌다.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전 국민적 인식은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전부터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한국의 정책과 제도들에 대한 청년들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간담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실효성이 없다.’ 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비판적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국민건강보험 이야기가 나오자 한 목소리로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매우 훌륭하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생활의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더욱 격하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집나간 세대의 발길을 돌린다는 국민건강보험의 수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늘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칠 때면 해외의 모범사례들을 본받아야 한다며 미국사례가 좋으냐, 유럽사례가 좋으냐 하는 이야기가 오고 가는 상황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장님이 문고리를 잡은 것일까? 한국은 어쩌다 튼튼한 외양간이 생겼을까?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공로가 제도를 시작한 박정희 정권, 전 국민으로 확대한 노태우 정권 또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한 김대중 정권에 있다는 다양한 시각들이 있지만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전부터 실효성을 갖출 때까지 주체적으로 외양간을 만들고 고쳤던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다.

 

1960년대 한국은 가난해서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료서비스는 소수의 개인적인 노력과 희생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수의 개인적인 노력과 희생은 가난과 질병을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려신학대학교 복음병원의 설립자인 장기려 박사는 평소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부산모임’에서 자신이 느끼는 어려움과 한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교육운동가 채규철이 덴마크유학시절 경험했던 공공의료보험제도를 이야기하며 정부의 지원 없이도 조합비를 적립하여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의료보험조합 설립 계획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1968년, 723명의 조합원들이 모여 최초의 민간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였다. 설립초기 가난한 서민들이 모으는 돈은 치료비에 비해 부족하여 기부금이나 의료진들의 희생으로 운영되었으나 1988년에는 조합원이 23만명, 가입병원이 150개, 자산이 30억 으로 늘어나면서 국민건강보험의 발단이 되었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전 국민 대상 국민의료보험이 국회에서 통과되던 1989년 공공의료보험에 귀속되어 국민건강보험이 체계를 잡는데 역할을 다하고 해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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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기려 박사는 1951년 영도의 한 공터에서 복음병원을 설립했다. (왼쪽)  

2) 1968년 723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다. (오른쪽)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마10:16)했던가? 서로 돕는 정신을 바탕으로 가난과 질병을 극복하겠다는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의 숭고한 가치만큼 돋보이는 것은 운영 전략이었다. 설립당시 시대적 상황은 모이는 것만으로도 공산주의 운동조직이라는 의심과 비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청십자’라는 이름은 미국의 의료보험조직인 ‘청십자 플랜’에서 차용해왔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하는 복지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미국에서도 하는 일 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식 때 했던 ‘인류최대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가난과 질병이다.’ 라는 말을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문구로 앞세웠다고 한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모이기를 폐하는(사도행전2:46) 시대적 상황에서 지혜롭게 대처했다. 지혜롭고 세밀한 전략들은 정부가 공공의료보험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보게 했고 정책화 하는데 까지 영향을 미쳤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의 성과는 다수의 기독교단체들과 교인들이 가난과 질병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사회문제에 공감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이기를 힘쓴(히브리서10:25) 결과였다. 

 

오늘날 기독교는 여전히 모이기를 힘쓰는 곳이지만 집단의 원칙만을 강요될 뿐 시대적 사회문제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코로나19시대’에 우리는 세계가 한 덩어리로 묶여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와 분리된 세계관을 갖고 있는 폐쇄적인 집단이 나쁜 놈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출생의 비밀은 경우에 따라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실마리를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뉴스거리가 코로나19 뉴스에 덮이는 상황에서도 부동산 이야기만큼은 독야청청(獨也靑靑) 그 존재감을 변함없이 과시하고 있다. 정부는 수많은 대책을 내 놓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은 안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집값과 임대료 불안정을 야기하는 부동산 문제는 질병의 문제만큼이나 생계를 위협하는 거대한 사회문제가 되어있다. 부동산 문제는 마냥 하염없이 견디고, 불평하며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기를 기다리면 되는 문제일까?

 

과거 가난해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나라가 부유해지면 해결될 일이지 개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치부되었다. 정말 그런 문제였을까?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의료시스템이 붕괴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유한 나라들을 볼 때 거대한 문제일수록 부유해지면, 기다리면, 좋은 정책이 나오면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가입을 권유할 때, 건강할 때 준비해서 병났을 때 치료받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아픈 이웃을 돕고 병났을 때 내가 도움을 받기위해 가입 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안녕을 위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공동을 위하는 이해심에 호소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뜻에 공감했고 청십자의료보험조합 조합원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 개인의 문제 뿐 아니라 이웃, 나아가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까지 기여하는 조직의 일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오늘날 부동산 시장 불안 문제는 과거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의 문제 못지않게 개인의 문제이자 이웃의 문제 그리고 사회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하자.

 

주택을 주거공간의 기능보다 재산증식의 기능으로 인식하고 모두의 꿈이 건물주인 나라에서 부동산 시장 불안정은 당연한 결과이다. 즉, 땅은 본질적으로 그 공급량이 제한되고 사회전체가 그 가치상승에 기여하는 재화이다. 그런데 이러한 토지에서 발생하는 시세차익을 위해 주택을 매매하고 일하지 않고 돈을 벌기위해 건물주가 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늘어날수록 부동산 가격이 불안정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물가나 임금 상승률보다 높은 나라에서 주택을 재산증식의 기능으로 인식하고 건물주를 꿈꾸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일이냐고 말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든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사회전체가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마태복음25:26)하는 것은 마치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이익추구라는 논리를 앞세워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건강하기 때문에 숨쉬기 불편한 마스크를 돈을 들여 착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의 결과는 면역력이 낮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통 받는 것을 시작으로 종국에는 사회구성원 전체가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고통 받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소득이란, 생산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 생산적 노력과 기여함 없이 소득을 얻는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고 그 결과, 생산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절한 소득을 얻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 것을 시작으로 부의불평등을 일으키고 종국에는 생산력을 상실하여 사회 전반의 파탄까지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소득은 이미 GDP의 30%가 넘었고 한국은 빈곤율은 OECD 2위에 해당한다. 한국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산에 참여하고도 적절한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심각한 부의불평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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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동산소득, GDP대비 부동산 소득 추산결과. 토지+자유연구소 (왼쪽) 

2) 부동산 불로소득, GDP대비 부동산 불로소득. 토지+자유연구소 (오른쪽)

 

‘코로나19시대’에 우리는 왜 개인의자유와 이익을 기꺼이 제한하여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것에 동의할까? 그 이유는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의 안전에도 기여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택을 재산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주거공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모두를 위해 건물주가 아니라 노동자를 꿈꿀 필요가 있다.” 

 

모이기를 힘쓰는 마음이 질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보자. 종로나 교회건물의 차원을 넘어서 일상에서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회의 안전을 위해 실천으로 모이기를 힘쓸 때라고 생각해보자. 긴 시간동안 땅을 사고팔면 부자가 된다는 맹신이 한국전체에 흐르고 있다. 이러한 맹신에 반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우리는 조롱과 불확실성과 위험 가득한 시기에도 억압에 맞서고 진실을 말하고 결연히 걸어갔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부동산에 대한 뿌리 깊은 불합리적 맹신은 그와 똑같은 정도의 불합리함 즉, 본질적인 선을 향한 헌신으로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제도는 빠르게 큰 결과를 만들 수 있지만 되 돌이켜질 수 있는 기계적인 힘과 비슷하다면, 생각의 각성은 불가역적인 화학작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시대’에 우리는 제도와 생각의 각성 사이의 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한 후에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 되었다. 수많은 부동산 제도보다 위기의 상황에서 착한임대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결국, 부동산에 대한 생각의 각성과 개인의 삶이 변화될 때 땅을 통해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제도도 만들어지고 또 유지될 것이다.  

  

‘코로나19시대’ 이전의 우리는 개인의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왔다. 이웃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보호되는 개인의 미래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그러나 현재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개인의 안전이 이웃과 사회를 위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보호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19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이 마음이 사회 곳곳에 오래도록 남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사회개혁은 고함과 아우성으로, 불평과 비난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정당을 결성하고 혁명을 도모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각성과 사상의 진보를 통해 달성된다. 올바른 생각이 없으면 올바른 행동이 나올 수 없고, 올바른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올바른 행동이 나온다. 힘은 언제나 대중의 손에 있다. 대중을 억압하는 것은 그 자신의 무지와 근시안적 이기심이다. 

-『사회문제의경제학』 헨리조지


참고: 김은식 (2020). 장기려리더십,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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