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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자유에의 길 / 최치권

작성자 : 관리자 (210.179.32.***)

조회 : 1,530 / 등록일 : 19-05-07 20:43

 



희년, 자유에의 길


         
최치권 / 희년함께 운영위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주의 심으신 의의 나무 되게 하셨네
후략.... (좋은씨앗 7집 자유에의 길)

 

오랜만에 요청받은 희년칼럼을 구상하며 2000년 초반 즐겨듣던 CCM ‘자유에의 길’을 다시 들었다. 곰곰이 노래가 이야기하는 희년을 그려보다 이내 희년이 필요한 세상 아픔으로 눈을 돌린다. 다메섹과 안디옥의 국가로 유명한 시리아는 최근까지 7년의 내전을 지내며 37만에 이르는 사망자와 500만을 추산하는 난민들을 양산했다. 우리 주변엔 강원도 고성 산불에 여의도 면적의 녹지가 불타고 1000여명의 이재민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나왔다. 또한 최근 부활절에는 스리랑카 교회에 8건의 폭탄테러로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다양한 뉴스 속에 삶이 무너지는 분쟁과 아픔이 매일 우리의 일상 주변을 채우고 있다. 비단 우리의 삶의 많은 어두움이 통신기술의 발달과 초정보사회에 넘쳐나는 어두운 뉴스 때문일까도 생각해본다, 즐겁기 미안한, 사회 도처에 흩어진 아픔들에 대한 공감하기 급급한 현재의 자화상이다.

 

사회의 어두움 검찰청 고시 범죄비율 통계는 1990년 10만명당 500명에서 2017년 1900명을 상회하고 있고, 도덕의 도말(塗抹)에 개의치 않고 소위 갑질로 불리는 대자본의 전횡아래 인간성과 개성이 잠식되는 찰나 마음 속 희년마저 그늘이 드리우는 것만 같다.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가 더 갈급하게 부르짖는 희년과 나날이 점점 더 아파하는 세상의 대비는 비단 이 시대 우리만의 슬픔이 아니다. 대속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오복음서 28장에 부활 이후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평안하냐’고 첫마디 말을 건네어 주셨다. 그리고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도록 가르키며 나는 늘 너희와 함께 한다고’ 약속과 같은 두 번째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좇는 희년이 하나님 나라 회복에 대한 명령이라고 할 때, 과거 무너진 이스라엘에 하나님나라를 향한 앙망과 노래가 불러졌듯, 현대 그리스도인의 일상 속에도 자본의 통치를 부정하고 희년원리를 세우고자 하는 여전한 앙망함이 존재한다. 희년을 좇는 제자들은 동시에 이러한 평안과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좇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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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병합되던 18세기를 살아간 애덤스미스, 그는 2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빈민과 도시자본의 극심한 빈부격차 가운데 살았다. 그는 경제학자로 기억됙 보다 이전에 묘비에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남길 원했던 도덕철학자이다. 그의 두권의 유작 중 1759년 국부론 에 18년 앞서 발간된 도덕감정론 서문에서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보이지 않는 손과 인간에 이기심의 메타 이전에 사회에 동감하는 인간의 천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는 이기적인 존재로서 인간에 상반되는 천성으로 연민과 동정심이라는 동감을 제시하는데 이는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공감하는 감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동일한 ‘신이 인간의 내면에 심어놓은 대리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국부론에서 그린 자유시장의 바탕에는 개인구성원의 도덕감정이 있고 인간 본성에 내재된 사회적 동감과 양심을 기반한 사회적 자유가 있는 것이다.

 

다시 우리 앞에 있는 무수한 사회적 고통들 앞에서서 애덤스미스의 동감을 통한 자유를 생각해본다. 그가 살았던 18세기와 우리의 21세기 모습은 너무나 다르지만 또 너무나 닮았다. 만연한 실업과 무자비한 자본의 힘 앞에 무너지는 사회적 약자들, 이들에게 사회적 자유를 전해 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희년이 그리는 방향이다.   

 

2019년 오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맞는다. 어두운 세상에 예수님은 부활의 소식을 전하시며 어두운 세상에 두려운 이들에게 ‘평안하라’ 말씀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약속하셨던 예수. 오늘 우리는 우리를 둘러 싼 사회적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애덤스미스의 표현처럼 타인의 아픔과 기쁨에 동감하는 삶 속에 있다. 이 공감은 우리에 작은 세상, 우리가 활동하는 진보로 그저 스스로의 연약함에 머물며 아파하고 인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발 더 하나님의 희년의 명령을 향해 딛는 동력이다. 부활 이후의 작은 진보를 꿈꾸며 좋은 씨앗의 자유에의 길 후렴구를 생각하며 마무리 한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 놓이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게 하심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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