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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선지자 헨리조지를 만나다 / 조도경

작성자 : 희년함께 (58.120.230.***)

조회 : 1,815 / 등록일 : 21-03-08 16:33

 

 

 

19세기의 선지자 헨리조지를 만나다

-헨리 조지의 연설문을 읽고-

 

 

 

조도경 / 희년함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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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는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대천덕 신부님은 성경적 토지법과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시면서 생전에 역대 한국 대통령들에게 공의로운 토지 정책 수립을 제안하는 서신을 수차례 전달했다는 이야기도 보았다. 대천덕 신부님은 성경의 정신에 기초하여 쓴 헨리 조지의 뛰어난 경제학 저서인 ’진보와 빈곤‘을 읽고, 경제문제의 해결책을 성경 가운데 찾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셨다. 그 후 성경의 토지법과 헨리 조지의 이론을 연구하며 조지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표하기도 하였다. 

 

나는 대천덕 신부님의 글을 통하여 성경적 토지 정의와 헨리 조지의 사상에 대해 접하게 되었지만 헨리 조지의 글을 직접 읽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 방대한 양과 내용의 ‘진보와 빈곤’ 대신 ‘간추린 진보와 빈곤’을 구입하였지만 몇 년간 책장에 꽂아 두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참혹한 실패로 부동산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토지보유세’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진보와 빈곤’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래서 헨리 조지의 이론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희년 함께’에서 헨리 조지 연설문 ‘헨리 조지에게 듣는다’로 독서 모임을 개설하였다. 연설문은 주제별로 9편의 짧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구어체로 기술되어 있어 쉽게 이해되었다. 주옥같은 내용들로 가득 찬 문장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며 다음 연설문이 기다려졌다. 또한 다양한 배경과 연령, 지역에 계신 분들과 의견을 나누며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에 함께 읽고 나눈 연설문 중 인상 깊었던 몇 편을 나누고자 한다.

 

‘경제학 연구’는 187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한 강연으로 헨리 조지는 경제학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경제학의 직접적인 고려대상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지만, 경제학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의 번영과 쇠퇴 안에서 개인의 삶이 안락과 행복 그리고 기회를 얻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경제학이 추구하는 법칙은 인간의 물질적 상태에 관한 법칙일 뿐 아니라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경제학은 억압당하는 노동자들이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보려는 노력을 무산시키는 ‘불경한 이론’이 되고 말았다. 헨리 조지는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지적인 용기를 가진 위대한 경제학자조차 기득권을 제어할 원리를 강조하지 못했다”고 한탄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들은 자본의 자유를 주장하고, 효용을 근거 삼아 이기적인 탐욕을 부추기고, 끝없는 부의 축적을 정당화하며, 고통당하는 이들을 외면하는 자신의 인색함을 합리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헨리 조지는 이 연설에서 경제학에 필요한 연구 방법과 화폐 가치의 왜곡, 부와 분배의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지가 이해관계와 결합하여 욕심에 의해 강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을 구별해내는 능력을 함양해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부를 다루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피력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경제학을 연구하는 자세와 목적’은 근대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21세기를 위한 미래 교육 담론과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다. 이 위대한 19세기 경제학자가 주장한 경제학의 진정한 효능은 모든 학문을 포괄하고 또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본질적인 가치와 철학을 담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의 결합에 의해 형성된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대와 세대에 유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고결한 소망을 가질 때 가능하다고 호소하였다.

 

‘자유 예찬’은 1877년 미 독립기념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연설이다. 헨리 조지는 이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는 생명과 빛을 베푸는 태양과도 같고, 시대마다 자유의 증인들이 일어나 자유의 순교자로 고통받은 것으로 아직도 충분하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진보는 자유가 이룩한 결과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도 불평등을 낳고 자유를 파괴하고자 하는 숨은 세력들에 저항하여 자유를 신뢰하고 완전히 받아들이며 자유가 빛을 거두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진보의 결과로 생긴 힘이 파괴의 힘으로 변질되어 암흑이 찾아올 것이다.” 

 

아울러 그는 “토지 소유자가 모든 이익을 취하는 사회의 기본 제도는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빼앗기고, 탐욕스러운 자가 부를 독점하고, 많은 이들이 궁핍하게 사는 가운데 소수의 사람만 배부르게 만들고 있다. 물질적 진보라는 축복이 정의가 부정당하고 자유가 무시된 사회제도 때문에 저주로 변하였다. 그 책임이 모든 인간이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선물을 주신 전능자이신 창조주가 아니라 정의를 행하지 않은 인간에게 있다”고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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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는 이 연설문의 말미에 지금이라도 정의에 복종하고 자유를 믿고 따른다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위험은 사라지고 사회에 해를 주는 기운은 발전의 동력으로 변할 것이라 주장하며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또 다른 연설문 ‘모세’, ‘도둑질하지 말라’, ‘나라가 임하시오며’에는 성경의 내용들을 통해 토지 독점이 가진 사회의 문제와 하나님 나라의 구현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헨리 조지는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제도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제도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람이 제도를 만든다는 것도 사실’임을 강조하며 성경 속 인물 모세에 대해 조명하였다. 억압과 구속의 이집트 전제정치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히브리 정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대중과 시대를 앞서 간 지도자 모세의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모세는 표면적인 결과 이면의 숨겨진 원인을 밝혀내고 시대의 흐름에 표류하지 않으며 확고한 목적을 향해 나아갔던 지도자였다.

 

모세에 의해 전수된 유대 율법서는 인간의 형제됨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라는 혈연적 특징이 있다. 모세가 세우고자 했던 것은 제국이 아니라 공동체였다. 공동체의 이상은 모든 사람이 학대받지 않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서로를 가족처럼 사랑하고 사회의 각 부분이 생동하는 하나의 거대한 연대를 이루는 것이다. 즉 재산 보호가 아니라 인간성을 보호하고, 강자가 부를 축적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궁지에 몰리지 않는데 공동체의 목적이 있다. 모세 율법의 바탕에는 개인이 토지를 독점하지 않음으로써 보장된 자유정신으로 인류가 더 좋아지고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이타적 소망으로 가득 찬 열정이 담겨있다. 

 

그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황금률과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실천된다면 모든 인간은 인류 공동의 유산에 대한 완전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외친다. “부요 속에 존재하는 빈곤은 도둑질을 합법화하는 제도의 결과이다. 부가 풍성한 시대에도 야만적 빈곤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의도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불리하게 해 가면서 땅을 독차지하는 것이 바로 그 합법화된 절도이다. 그것을 방조하고 그것에 대해 목청을 높이지 않는 우리 자신도 절도의 공범이 될 수 있다. 모든 시대의 정의롭고 선한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 투쟁에 동참해 왔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고 후손들에게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한 이 투쟁은 특권이며 기여이다.”

 

헨리 조지가 이 연설에서 표명한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이후 가는 또 다른 영역의 세계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지성적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세상, 기회가 평등하고 정의가 실현되는 현실이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가 틀림없이 도래한다고 믿는 사람이나 그 실현을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는 그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께로부터 큰 보상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위대한 사상에서 기쁨을 느끼면서도 세상에 대한 큰 근심으로 고통받았고, 엄청난 좌절의 쓰라림을 느끼면서도 내세에 대한 더 높은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표면적인 현실 문제의 원인을 파헤쳐 미래를 위한 법을 만드는 철인 정치가이자 개혁가로서의 모세. 그를 조명한 헨리 조지에게서 19세기의 영감 어린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환생한 모세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교회에 대한 불편한 기억도 있다. 미션스쿨인 여고를 다녔지만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과 가수 박인희의 간증집을 읽고 느낀 감동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고민은 늘 품고 있었다. 20대에 처음 교회에 가게 되었고 결혼 후 본격적으로 교회에 다니면서 다양한 활동과 봉사에 참여했다. 20여 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 불편함은 교회에서 설교를 통해 가르치는 내용과 내가 성경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조명하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지만 교회를 통해 보고 듣는 현실은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았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낸 사람들의 샘플을 제게 보여주세요. 만약 그런 사람들이 없고 한국 교회가 가르치는 것이 진리의 실체라면 전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협박 같은 고백을 했다.

 

말씀의 인도하심을 확증받으며 신중히 한 발 한 발 내디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의 벽 앞에 서있었다. 그때 믿음의 실험실이자 중보기도의 집인 예수원에 가게 되었고 대천덕 신부님의 삶을 만났다. 이후 레슬리 뉴비긴, 자크 엘륄 같은 오롯이 하나님의 진리를 믿음으로 실천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미약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헨리 조지를 읽으며 또 한 분의 샘플을 만난 감동이 물밀 듯 밀려왔다. 하나님은 연약한 이들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연약한 이들을 사랑하고자 애쓰는 이들을 귀히 여기신다. 지금 내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헨리 조지가 말한 불의한 세상에 투쟁하려는 연약한 존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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