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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년을 꿈꾸며 산다 / 김효경

작성자 : 희년함께 (220.121.145.***)

조회 : 1,090 / 등록일 : 21-05-10 16:27

 

 

 

그래도 희년을 꿈꾸며 산다. 

 

 

 

김효경 / 산돌교회 목사, 이태원 ‘레미제라블’ 대표 

 

 

친정 아빠의 부재중 전화가 두통이나 와있다. 전화를 드리려던 찰나, 친정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대뜸 명의를 빌려줄 수 있냐고 물으신다. 두 분이 사시는 아파트 앞 동에 좋은 조건으로 아는 집이 나왔는데 부동산 매물로 나오기 전에 사두면 좋겠다고. 세금 때문에 자식 중 유일하게 무주택자인 내 이름이 필요하신 모양인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시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설명을 다 듣지 않아도 부모님 마음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남동생이 아버지 은퇴 후 부모님의 적지 않은 생활비를 다달이 대고 있고 진담 반 농담 반, 부모님 소유로 된 사시는 집은 돌아가시면 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시집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기 소유의 작은 집도 있고 안정된 직장도 있는 맏딸과 시부모님 소유이긴 하지만 자기 명의로 된 집을 가지고 있는 둘째 딸 걱정도 걱정이지만 아무래도 제일 골치는 막내딸인 나인 것이다. 중심지에 있는 비싸고 평수 넓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동네에 지하철도 곧 뚫린다고 하니 사두면 값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고 그 사이 전세 내어주다 아파트 값이 오르면 훗날 팔아 딸들 몫으로 얼마간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으신 게 부모님 마음이다. 아들이 옆에서 듣고 있는 것도 아닌데 수화기 너머로 소곤거리시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한숨이 나온다. 행여 돈 때문에 형제들 의 상할까봐 날 받아놓으신 것처럼 마음이 급하신 모양이다.  

 

1.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 신학교에 다니던 무렵, 재테크가 신조어처럼 유행했다. CMA, 펀드, 변액보험, 거기에 부동산 투자까지. 적금을 넣으러 가면 은행 직원이 펀드를 권했고 다달이 납입해서 만기에 찾는 방식은 같지만 이자는 예금, 적금보다 더 높을 거라고 했다. 실제로 펀드로 목돈을 만들고 이 목돈을 깨기 아까워 재테크를 했다가 돈이 한참 불린 가까운 지인도 있었다. 저축이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다며 TV마다 경제 전문가들은 ‘투자’는 돈이 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 활동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교육 전도사로 첫 사역을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전도사 사례로 50만 원, 선교 단체 전임 간사로 5만 원 받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학비를 보충했고 처음으로 학교 은행이었던 국민은행에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1회에 뽑을 수 있는 현금은 30만 원이었고 최대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은 200만원이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올 때 즈음, 친정 부모님은 사업이 파산하여 한동안 카드 돌려막기로 근근이 버티셨다. 한 번은 내게도 전화하셔서 200만 원 정도를 일단 쓰고 갚겠다 하셨는데 나는 단칼에 이를 거절했다. 소득 없는 신학생으로서 갚기도 어렵고 다른 대출도 쉽지 않은 데다 이자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원망 섞인 말은 들었지만 별 대꾸 없이 빚지는 것은 죄라고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부모님 지원받지 않는 대신 내 소신대로 살게 해달라고. 

 

취업문은 좁아지고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보증금, 생활비 마련하느라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에 시달리는 청년대학생들을 생각하면 종종 그때 내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앞에서는 관심 없는 듯 말하고선 쇼핑 사이트에 담아놓은 위시리스트와 최저가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하나씩 지워가던 모습. “나 돈 없어”라고 말하지 못해서 교내 식당이 아닌 도서관으로 향하며 쌀쌀맞게 바쁜 척했던 내 모습. “돈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라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지안의 대사에 격하게 공감했던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면서 너그럽기란, 또 가난하면서 자기 주관대로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정직한 노동으로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현실로 인해 청년들이 불로소득으로 재산을 증식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은 재앙이다. 그래서 희년은행에서 고금리 부채, 주거 빈곤 문제로 시달리는 청년들을 상담해주고 무이자 전환대출로 급한 불을 꺼준다고 할 때 참 고마웠다.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희년의 복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으로 알리고 돕는 것이 중요하다.

 

2.

교회를 개척하고 이런 엇비슷한 고민이 또 한 번 있었다. 최근 암호 화폐가 다시 열풍이라는데 2016년 즈음엔 사람들은 신세계를 발견한 듯했다. 교회의 한 형제가 암호 화폐로 돈을 벌고 블록체인 ‘기술’을 몰래 전파했다. 당시 암호화폐는 '신분상승의 마지막 사다리'라며 주부, 군인, 대학생들 막론하고 몰려들고 있었고 특히 진입장벽이 높은 부동산 시장과 이율이 너무 낮은 금융시장으로는 목돈을 마련할 수 없던 20-30대들이 몰려들기 딱 좋았다. 채굴자였던 그 형제는 암호 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는 것은 정부가 근시안적인 판단이며 미래 기술의 싹을 자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암호 화폐에 대해 기술적 가치에 대해 설명했지만 암호 화폐 시장은 세금도, 아무런 실물적 가치도 없이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맞물려 이미 빠르게 투기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주식시장은 적어도 정부에게 세금이라도 내고 기업의 자본조달에 일조한다는 명분이라도 챙기는데 말이다. 교회 안에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형제는 결국 교회 공동체를 떠났다. 한국 청년들이 짊어져야 할 현실의 무게를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한 사건이었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을 주여 주여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믿으며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은 경건은 위선으로 여기고, 현실과 동떨어진 영성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종교를 추구하지 않겠습니다” (기도와 선교하는 공동체 산돌교회의 신앙 고백문 中)

 

우리 교회들은 매일 새벽 그리고 매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무엇을 빌었을까. 명성 교회는 한해 50~60억씩 남아 이월되는 헌금으로 무엇을 하였을까. 상위 1%가 우리나라 토지의 46%를 보유하고 상위 10%가 83.9%를 보유하는 이 미친 세상에서, 내 집 한 평이 없어 전월세로 살아가는 대다수 성도들의 피 땀 흘린 헌금으로 교회는 어떤 터와 성을 쌓고 있었을까. 

 

성경이 말하는 희년을 생각해볼 때, 교회가 지금의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빚이 너무도 크다. 돈을 사랑하는 이 시대에 투기는 죄이며, 토지 불로소득은 그리스도인이 지양해야 할 경제적 원칙임을 가르치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를 찾아볼 수 있을까.

 

 

3.

내가 일하는 곳 <레 미제라블>에는 출입문 창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서울인가 싶을 정도로 푸른 수채 색을 뽐내던 녹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거의 사라졌다. 뽕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울창한 나무들과 그곳에 깃들었던 새들의 소리, 봄에 향긋한 아카시아 향기도 올해부턴 맡을 수 없다. 이태원의 도시 한복판 이런 녹지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땅이 유엔군사령부 부지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이전됨에 따라 민간에 매각되었고 1조 552억 원에 건설사에 매각되었다. 그리고 이 곳에 3.3㎡당 1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고급 주택단지로 개발될 것이다. 이제 이 땅을 두고 돈놀이가 펼쳐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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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연예인과 같은 은행 VIP는 건물 가격의 80-90%까지 대출을 받아 건물을 사고, 기존 임차인을 내보낸 뒤 리모델링을 해서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 같은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는 임차인을 들여 건물 가격을 올려 다시 되팔아 시세차익을 본다. 은행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대한민국 1%에 해당하는 VIP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VIP는 건물을 사고, 여러 부동산 매체들은 연예들의 투기 소식을 자랑하듯 떠벌리고 대중들로 하여금 투기 심리를 자극하여 돈이 몰리게 한다. VIP가 건물을 샀다는 소식에 그 동네 부동산이 들썩이고, 이에 따라 동네 토박이들과 상인들은 그곳을 떠나야 하며 자본은 결국 VIP와 은행 주머니로 소급되는 상위 1%만을 위한 구조. 20억이 넘는 불로소득이 생길 때 과연 이들은 적법한 세금을 냈을까? 오히려 개인보다 세금 혜택이 많은 법인으로 건물을 구입하고, 서울이 아닌 지방에 법인 주소를 등록해서 절세를 하는 꼼수를 사용하지 않았나. 이 동네에서 몇 년간 자주 보았던 그림이다. 

 

이 한가운데서 문을 연 <레 미제라블>이 올해 5년째이다. 시끄러운 전기톱 소리와 풀 베는 냄새가 진동하며 나무들이 하나둘씩 잘려나가듯 우리도 언젠가는 이곳에서 떠나가려나. 

 

요즘 다시 ‘영혼까지 끌어 모아’ 주식에 투자한다는 영끌이 유행이다. 최악의 경제 위기라 느끼는 사람들의 체감을 비웃듯 새해 들어 코스피 지수는 최초로 3000을 넘었다. 어떤 사람들의 전쟁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축제인 세상. 부동산 불로소득 문제 역시 강도 높은 환수 정책이 없는 한 땜질일 뿐일 것이다. 정부가 고삐 풀린 자본을 통제하지 못할 때 돈이 제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남편과 의논하고 하루를 보낸 후 부모님께 어렵사리 다시 연락을 드렸다. 아이들이 받고 있는 대안학교 장학금 때문에라도 명의를 빌려드리긴 어렵겠노라고. 무주택자라서 받는 은혜도 많다고 말이다. 예전처럼 잘난 체하며 무 자르듯 얘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나도 엄마라서 그렇다. 그래도 우리 살 궁리 걱정해주시는 양가 부모님이 계셔서 나는 오늘도 희년을 꿈꾸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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