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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그래도 내가 가야 할 길은 간다 / 임기헌

작성자 : 관리자 (175.213.122.***)

조회 : 1,719 / 등록일 : 19-11-12 09:41

 

 

 

활동가, 그래도 내가 가야 할 길은 간다

 

 


임기헌 / 희년함께 운영위원


초등학생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 거의 30분 정도 걸렸는데 하루는 내 앞에서 고물을 잔뜩 실은 리어카를 삐뚤빼뚤 위험스럽게 끌고 가는 고물상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 분들을 보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늘 대신 밀어드리거나 도움을 드렸다.


그런데, 때마침 그 옆을 지나가시던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학생아, 저 사람 너거 아부지가?’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당연히 ‘아닌데예’ 라고 대답하고는 계속 리어카를 끌었고 그 아저씨는 내 옆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고물상 아저씨는 술에 취해서 고주망태가 되어있었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불쌍한(?) 마음에 그 고물 가득한 리어카를 밀고 또 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아주머니가 안타까워서 나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초중학생 시절. 나는 막연하게 사회복지학과를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내 인생의 정해진 길처럼 말이다. 대학생 시절, 시민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던 ‘간사’라는 말이 항상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요즘에는 그렇게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 단어인데 ‘간사’라는 말이 왜 그렇게 동경의 대상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다시 고쳐 말한다면 그 말은 ‘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웃의 어려운 모습에 늘 마음이 끌렸고 그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마음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지금까지도 활동가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졸업할 무렵 통일여행을 떠난답시고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예수원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을 만나게 되었다. ‘희년’을 알게 되었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에 대한 놀라운 경험은 이웃의 어려운 모습에 늘 마음이 끌렸던 내 마음을 더욱 강하게 진동시켰다.


일반 직장생활을 거쳐서 부산시 강서구 지역자활센터 자활 활동가로 일하면서 ‘가난’이라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결핍이 아니라 문화, 교육, 가정, 알코올, 인간관계 등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킨 것이라는 것을 주민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빈민의 벗, 고. 허병섭 목사님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자활 활동가의 삶 속에서 부산에서 주거권 운동을 하고 있던 부산반빈곤센터를 알게 되었고, 기초생활보장법의 문제와 수급자 주민들과의 상담, 장애인 인권운동, 노동운동, 재개발 반대 투쟁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 인연은 이제는 나의 삶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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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가난한 자들을 향한 나의 마음은 더욱 진동하였고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이런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는데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활 활동가 시절 빈민운동의 맥을 이어오고 있던 한국주민운동교육원(코넷)을 만나서 ‘자활공제협동조합’, ‘주민운동’, ‘주민조직가’라는 새로운 삶의 전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민운동의 교과서와 같은 ‘CO 교육학’책을 활동가의 성경처럼 여기고 애지중지하면서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또 하나의 나의 가야할 길을 발견한 것이다. 주민운동!!


자활 활동가의 삶 또한 한계에 봉착한 것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길, 마을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마을만들기(운동)’라는 것을 통해서 마치 양 발에 날개가 달린 듯이 지역자활센터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마을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해 나갔다. 주민들과 만남들.... 골목길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신발이 구멍이 날 정도로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가 약 6년 전 부산에 ‘부산주민운동교육원’이라는 이름으로 주민 운동을 전파하고 교육하는 단체가 서울에 이어서 생겼다. 거기서 주민조직가 기초과정, 심화과정을 거쳐서 주민조직가 트레이너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이런 훈련과정을 통해서 주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주민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그들에게 숨어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주민 스스로 발견하도록 촉진하고 가난한 그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결국 그들이 스스로 ‘주민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민 운동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부산반빈곤센터 반상근 활동가의 삶을 동시에 이어가고 있다. 특히, 부산반빈곤센터에서 부산지역 쪽방주민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해가면서 사회구조적인 빈곤의 현장, 적나라한 관계의 빈곤 문제를 몸으로 경함하고 있다.


  진정 이웃을 사랑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주민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의 부족함이 느껴졌고,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주민지도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기다리고 기다리는 그 마음이야 말로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민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하지만 배신당하고 실망스러운 일들은 흔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주민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잘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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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가난한 처지에 놓여있는 주민들과 가족 같은 관계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그래서,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자체가 곧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운명적인 삶의 모습과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자신들의 가능성과 힘으로 자신의 문제와 지역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그것을 위해서 공동체인 주민조직을 만들도록 촉진하고 안내하는 것. 이것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길이며, 그래도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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