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사역편지] 쪽방촌에 비치는 희년의 소망
조회 : 1,229 / 등록일 : 21-11-11 17:44
쪽방촌에 비치는 희년의 소망
희년함께 김덕영 희년실천센터장
비 온 뒤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성큼 다가온 겨울의 냉기에 몸이 움츠려 듭니다. 추운 겨울은 가난한 이웃에게 더욱 혹독합니다. 전기도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쪽방촌의 겨울은 한층 매섭습니다. 월 30만 원가량의 월세에 1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서 새로운 희망을 소망하는 것은 생각만치 쉽지 않습니다. 월세를 현금으로 따박따박 받아가는 건물주가 대부분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살며 온 가족이 명의를 돌려가며 빈곤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모습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지난 온라인 희년학교에는 희년의 심정으로 이곳 쪽방촌 이웃과 함께하는 연구자 탁장한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희년은 빈곤에 처한 존재가 가난할 만한 존재여서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희년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가난한 존재는 지금 우리의 사회가 반 희년 사회임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시대의 증언자로 서 있는 가난한 이웃과 가장 가까이 함께하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고백합니다. 가난한 이웃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지 온 몸으로 묻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반 희년 제도의 무게를 안고 홀로 침잠하고 있는 부채 청년들을 만나면서 이 친구들과 희년을 꿈꾸기를 소망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잔뜩 위축된 청년들에게 다가가 먼저 이야기를 듣고 부채 문제가 해결 가능하며 지금의 문제가 꼭 자기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청년들을 도울 수 있는 전문가 선생님들을 한 분, 한 분 만나고 청년들과 선생님들과 지속 가능한 회복의 길을 모색했던 순간들이 펼쳐집니다. 그 뜻이 한 방울이 되고 더 큰 뜻과 마음이 모아져 지금의 희년은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청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지금 우리는 그 마음과 마음을 모아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로 대하는 탁장한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소유권보다 생존권이 앞선다는 희년의 기쁜 소식을 주민들과 나누고픈 소망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올해 초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계획이 나오자마자 어느새 얼굴도 모르던 건물주가 쪽방촌에 나타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주거환경도 제공하지 않고 서울에서 평당 가장 높은 임대료를 받고 있었던 건물주에게 소유권은 절대적 진리입니다. 희년의 관점으로는 쪽방촌에 사시는 모든 분들에게 토지권이 있으며 무엇보다 존엄하게 살아갈 주거권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유권은 이러한 절대적 권리 앞에 소유의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이미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많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자문을 구하고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겠습니다.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쪽방촌 주민들, 이 시대의 주거빈곤 이웃들에게 희년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쪽방촌 주민들은 희년의 시혜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있는 희년의 주인공임을 믿습니다. 희년의 주인공들과 어깨동무하며 함께 희년의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