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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이란 무엇인가7] 희년사건의 현재화, 농도(農都)상생 마을공동체,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최철호 목사님

작성자 : 관리자 (175.211.189.***)

조회 : 2,730 / 등록일 : 19-03-01 16:45

[희년이란 무엇인가? - 희년함께 연재 기획 인터뷰7]

 

 

 

희년사건의 현재화, 농도(農都)상생 마을공동체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최철호 목사님 인터뷰

 

 

 

최철호 / 희년함께 자문위원

 

희년이란 무엇인가 일곱 번째 인터뷰는 아름다움 마을 공동체 최철호 목사님입니다. 장차 올 하나님나라를 오늘 여기에서 만들어가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하나님나라를 보게 됩니다. 역사의 등대와 같이 세상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어야 할 교회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 소개 및 사역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름다운 마을공동체에서 좋은 친구들과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구요.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역은 청년 교육입니다. 청년사역은 제가 청년 때부터 일관되게 가지고 있던 관심입니다. 제가 청년 때 큰 변화를 겪었고, 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거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경험을 청년 시절에 했었기 때문에 청년시기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큽니다.

 

최근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사역은 기초공동체, 마을공동체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 주로 공동체지도력훈련원을 통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또는 지역교회나 선교단체 내에서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합니다. 또 곳곳에서 소규모 형태로 공동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돕기 위해 목회적으로 조언할 수 있는 것은 조언하기도 하구요.

 

초/중등 대안학교를 하고 있는데 대안학교 교사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고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도상생 마을공동체, 도시와 농촌이 따로 분리된 공동체 형태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 사이에 어떻게 상생하는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반도생명평화공동체 운동을 위해 기도하고 모색하고 있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닌데 최근 가장 진지하게 기도하며 묻고 있는 주제입니다. 한반도에서 모든 전쟁무기를 폐하는 운동이죠. 남북만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쟁을 했던 모든 나라들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지 않기로 국제적으로 약속하는 그런 운동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청년 때의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큰 변화를 경험하셨나요?

 

저는 부산에서 살며 고신교단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매우 가부장적인 문화에 익숙했고,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신대학교를 가려고 준비하다가 집에 어려움이 있어서 부산을 떠나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목사님께서 소개해주신 학교가 총신대학교였습니다. 대학에서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한국근현대사와 교회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큰 충격과 고뇌에 빠졌습니다.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교회는 매우 기만적인 모습이었죠.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진보적 교회들을 비판했지만, 실상은 늘 정치참여를 하고 있었던 거죠. 4.19민주혁명을 반대하고, 5.16군사쿠데타를 지지하고, 80년 광주항쟁을 반대하고, 신군부를 지지하고, 87년 6월항쟁을 반대했죠. 반역사적이고 비민주적인 세력을 암묵적으로나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참여를 하면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정치참여를 반대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무지 혹은 거짓과 기만입니다.

 

그리고 신학교 교수님들과 이사들 대부분이 다 목사‧장로인데 그분들이 학교를 운영해가는 것에 대한 문제들을 보게 되었어요.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부조리한 학내 재정운영상황, 이사회의 전횡, 교수들 간의 반목, 교단의 눈치를 보며 소신 있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 등을 보면서 굉장히 실망하고 분노했습니다.

 

1학년 때는 도서관에 아침 일찍 나와서 불을 켜고 저녁 늦게 불을 끄는 것을 즐기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80년도에는 전경들이 학내까지 들어와 최루탄을 터트리곤 했었는데, 최루탄 때문에 도서관에 있을 수 없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곤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세상과 역사의 질곡에 눈감고 무심한 제가 부끄러워지더라구요. 학교 뒤편에 당시 유명했던 사당동 철거현장이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있다가 최루탄 때문에 학교 뒷산으로 넘어가는데 거기서 철거민들과 용역깡패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되고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저희 학교에 와서 출정식을 하고 철거현장에 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일단은 누가 옳으냐의 문제를 떠나서 아무 관심없이 살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러워졌어요. 그래서 무슨 얘기인지, 무슨 사건인지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해서 관련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과 이 땅의 여러 가지 비극들이 발생한 이유가 일제와 분단문제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터전 위에 교회가 무기력하게 세워져 있다는 것, 이 땅의 아픔과 비극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한 채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면서 교회에 가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교회가 진정 무엇인지, 현실교회가 성서에서 증언하고 있는 교회와 왜 이렇게 큰 괴리가 있는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교수님, 목사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질문했습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분을 찾아가서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와 제가 지금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역사가 너무 다른데 근현대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들었던 답은 ‘내 전공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교회론 전공이 아니라서...’ 이런 말이었어요. 이런 대답을 들으면서 공부를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교회, 역사, 사회적 질문을 동시에 직면하면서 당시 어린 청년이었던 저는 깊은 고뇌와 방황을 겪게 되었습니다. 6개월 정도 교회를 다니지 못했어요. 다 너무 가증스럽게 보여서 갈 수가 없더라구요. 신학교 다니면서 6개월 정도 교회를 가지 않고 방황을 하면서 그동안 하지 말라고 교육받았던 것들을 의도적으로 다 했던 것 같아요. 자기를 해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러나 비록 거칠었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정직하고 절실한 질문을 집요하게 붙잡고 하나님과 함께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방황을 하다가 하박국서를 읽으면서 돌아왔어요. 하박국의 절규가 제가 가지고 있는 절규와 같았고 하박국에게 주셨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했던 그 말씀의 의미, 하박국의 마지막 고백인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찬양한다’고 했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실존과 역사, 영적 고뇌와 희망을 동시에 품고 신앙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밤마다 학교 강당에서 기도하며, 실존적 회심, 소명, 하나님나라, 공동체, 생명평화와 통일, 희년 등을 묵상했습니다. 깊은 절망과 고뇌 속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죠.

 

아름다운 마을공동체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는 1991년에 첫 모임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여러 주제로 함께 공부하던 후배들, 함께 학생회 활동을 했던 후배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총체적 구현과 대안적 교회공동체 운동을 졸업 후에도 일관되게 해가기 위한 모임을 함께 하자고 제안해서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사역 현장에서나 결혼‧임신‧출산 과정을 거치며 청년 때의 순수하고 정직한 공부, 고백에 일관되게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습니다. 처음에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구나’ 라고 개인에 대한 평가와 실망에 그쳤는데, 그런 모습이 반복되는 현상을 보면서,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말한 것처럼 살지 못하도록 하는 강한 힘이 현장에 있는데 그 힘이 뭘까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당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일단은 서로가 어깨 걸고 큰 물살을 헤쳐 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서로 지켜주고 위로하고 도전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미지의 거센 물살이 흐르는 사회에 진출하자는 겁니다. 그 때부터 작은 방을 얻어 함께 살기 시작했죠.

  

그렇게 해서 공동체를 시작했는데 공동체를 하고 나서 10년쯤 지나니까 결혼‧임신‧출산‧육아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 시기에 소위 청년 때의 혁명가들이 추풍낙엽이 되는 것을 봤어요.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삶이라면 모르겠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 거라면 결혼하기 전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신념의 진정성은 결혼‧임신‧출산‧육아 과정을 어떻게 자기 신념대로 통과해낼 수 있느냐라는 생각으로 모아졌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청년 때는 원거리에서 모여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는데 결혼‧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는 ‘마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 2000년 전후부터 ‘마을공동체’에 대한 소명이 생겼어요. 그래서 서울의 여러 지역을 두고 물색을 하다가 수유리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수유리로 들어오면서 몇 가지 기준이 있었는데 우리가 청년운동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청년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으로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 지역의 청년운동을 활성화하자는 것이었구요. 또 하나는 1990년, 2000년도가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새롭게 중요한 선교적 현장으로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지역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으로 가서 공공적인 활동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최소한의 생태적인 교육이 가능한 곳을 찾으면서 수유리로 오게 되었습니다. 2000년 이후 사람들이 수유리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180명 정도 공동체 구성원으로 같이 지내고 있어요. 여기 수유에서 마을 공동체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을밥상, 마을찻집, 공동육아 어린이집, 초등대안학교 등을 하면서 마을공동체로 살고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재산을 다 함께 공유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기초생활공동체라고 해서 그 사람들은 모든 재산을 공유해요. 저희 공동체는 재산을 다 공유하는 사람과 각자 자기 재산을 관리하면서 필요한 대로 물질을 공유하고 나누는 사람 등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 필요와 정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은 공동생활을 합니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데 거의 대부분 다 하고 나서 결혼을 합니다. 이 정도가 저희 생활공동체에 대한 설명이구요.

 

사역공동체에 대한 설명을 드리면 가장 오랫동안 해왔던 사역이 기독청년아카데미입니다. 원래는 청년성서연구원이라고 해서 저희 내부의 지도력 교육을 하던 프로그램을 기독청년아카데미로 확대시킨 것입니다. 현재는 수강생 출신이 중심이 된 운영위원회, 정책기획팀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공동체지도력훈련, 생명평화연대, 대안학교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과 초등 저학년은 수유에서, 초등 고학년과 생동중학교는 홍천에서 운영합니다. 그리고 강원도 홍천에서는 농(農)생활연구소+농생활 소농연대를 만들어 토종종자를 보존하고 우리 지역에 맞는 토종종자를 심고 유기농업, 생명농업으로 농사짓고 연구합니다. 생태건축 ‘흙손’은 공동체 생활과 사역에 필요한 건물을 짓고 교육합니다. 흙과 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생태건축입니다. 그 외 마을밥상과 마을찻집, 마을신문, 청소년 생명평화학교, 공동체 희망연대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공동체를 설명 드리면, 저희는 희년마을, 꿈꾸는 마을, 홍천의 생명평화마을 이렇게 3개 마을교회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배는 기초공동체 단위로 예배를 드려요. 기초공동체는 7-8명 정도이구요. 조직론에서는 셀이나 가정교회와 유사하지만, 소 공동체의 독립성이 훨씬 강해요. 한 기초공동체가 예배, 목회상담, 영입탈퇴 등 보통의 개별 교회 역할을 다 합니다. 주일예배의 중심적인 시간도 기초공동체에 할애 되어있습니다. 기초공동체 목회 담당하는 기초공동체 목회자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은 인근 학교 강당을 빌려 기초공동체 연합예배로 드립니다.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는 기초공동체 연대체입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재산을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 사람들은 교회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재산을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사람들에게 충격적일 것 같아요. 그런 시도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수정이 하나 필요한 건 재산을 공유하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형태는 역사적으로 끊어진 특이한 형태가 아니라는 겁니다. 교회사 2000년 동안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초대교회 공동체 형태는 200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많아졌어요. 2000년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초대교회공동체와 같은 형태는 2000년 전 초대교회에서만 가능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구현되고 있어요. 중요한 건 2000년 전에도 예수와 성령 사건을 통해 생성된 초대교회 공동체 현상을 사람들이 무시, 외면했고, 2000년 교회사동안 그 흐름은 계속 무시와 외면을 당해왔어요. 1700년 동안 국가교회 신학과 문화에 의해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거죠. 예수운동은 제국의 유력한 자들, 세상 정사와 권세에 의해 길들여진 종교인들에게는 주목되지 않을 뿐 아니라 미련하거나 거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형태만이 가치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교회공동체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사건을 박제화 시켜 애써 외면하고 소외시키는 것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려는 세련된 기만과 왜곡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겁니다.

 

부자청년과 예수님의 대화가 끝나고 나서 부자청년이 떠난 후에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뭐라고 질문하냐면 ‘그러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냐?’ 이렇게 얘기해요. 그런데 예수님 답변이 재미있죠.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고 그랬거든요.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하다는 겁니다. 성령사건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관계 생성의 사건입니다. 혹자는 공동체는 훈련이 잘 된 사람들끼리라서 가능하다, 너희는 젊을 때부터 시작해서 가능한 거 아니냐고 합니다. 젊어서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지고한 훈련이나 결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많이 배운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늙으나 젊으나, 도시에 있으나 농촌에 있으나, 예루살렘에 있으나 갈릴리에 있으나, 성령이 임하면 이루어지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신앙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총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 가치를 두고 그 힘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현실적인 우려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것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죠. 제가 소공동체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 사람들은 지금 뭔가 새롭게 하려고 모여 있는 사람들인데도 어떤 기운이 지배하고 있냐면 걱정과 근심이 지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잘 안 되는 거예요.

 

저희는 오히려 재산을 모두 함께 하는 기초생활공동체를 처음 시작하면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하고 저런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한 게 별로 없어요.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 그냥 다 공유, 너무 깔끔했어요(웃음). 복잡한 것도 하나 없었고.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런 형태가 특별한 헌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굳이 재산을 공유하는 형태를 띠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재산을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의 기운 속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사유’를 전제로 하게 되면 ‘재산을 공유한다’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굉장히 다르지만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게 분명하면 재물을 모아서 관리하나 개인이 관리하나 사실은 똑같거든요. 그러니까 공동체 내에서 재산을 공유한 사람들이 특별한 헌신을 더 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헌신이 안 된 것도 아니에요.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정직하게 붙잡고 각자 자기의 영적 정황에 맞게 다양한 소유형태를 갖는 것이죠. 물론 물질의 소유가 조장하는 유혹의 강도가 소유형태에 따라 다른 건 분명합니다.

 

재산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가능하냐는 의문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많이 회자됨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단 그 내용이 성서가 증언하는 성령사건이라면,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그것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사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하는 삶에는 두려워 할 실패나 자랑할 성공은 없습니다. 말씀을 따라 그냥 정직하게 살면 됩니다. 말씀을 따라 성령에 의지해 자꾸 도전하는 것이 중요해요. 어차피 인간사에는 희노애락, 생사고락이 있죠. 도전하지 않아도 어려움이 있는 건데, 말씀을 따라 도전하고 자기를 더 수련해가면서 겪는 고난, 어려움은 오히려 유쾌하고 감사한 일이지요.

 

농도상생의 마을공동체운동을 지향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지향점을 설정하신 계기와 이유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처음에 도시에서 시작한 거죠. 도시공동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도시에 있던 사람들이 부름을 받고 소명을 받은 거죠. 우리가 살았던 도시에서 하나님나라 공동체,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삶, 생명평화의 가치를 구현하는 삶을 좀 더 철저하고 진중하게 따라가다 보니까 ‘생산’과 만나고 ‘농촌’과 만나게 되더라구요. ‘결혼‧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고 마을에 함께 살면서 ‘식의주 생활양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일상의 삶 중 가장 중요한 먹거리에 있어서의 생명성, 먹거리의 자립과 대안에 집중하게 되었죠. 그건 바로 먹거리를 생산하는 공동체의 필요에 닿게 되었어요. 도시문명의 수많은 문제들이 농촌을 수탈해서 만들어진 기형적 과정에 그 원인이 있고, 그런 도시문명은 지속불가능한 문명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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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생명평화마을 예배 후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고 있고, 우리가 부름을 받았던 도시라는 현장의 의미와 가치들도 그대로 있기 때문에 농촌과 생산에 대한 가치를 깨달았다고 다 농촌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는 농촌을 수탈하지 않고 농촌은 도시를 피해의식을 가지지 추종하지 않고 서로를 살릴 수 있는 그런 마을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농도상생 마을공동체가 우리의 새로운 소명이 되었습니다.

 

부동산, 학벌, 자본 등 우리 시대의 중요한 우상들을 생각하다 보면 이것이 권세를 가지게 되는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죠. 이런 흐름을 국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가면서 추구했던 정책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이농, 즉 농촌을 떠나게 하는 것이었어요. 농촌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 노동자, 도시빈민이 되었죠. 도시빈민들로 구성된 산업예비군을 중심으로 저임금 노동정책이 가능했죠. 그게 나중에 도시빈민문제, 강제철거문제,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권문제 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게 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외국인 노동자나 새터민들에 대한 저임금 노동 인권 문제 등으로 이어지고 있죠. 또한 과잉된 사교육시장, 허구적인 학벌문화 등과 맞물려 청년실업문제로 이어지죠. 청년실업 사태 속에서도 청년들이 소비문화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부동산, 투기자본 등 불로소득에 토대한 고용 없는 성장과 이로 인한 부의 거품현상과도 연관되어 있죠. 실타래처럼 얽힌 도시문명의 반생명적 문제들 속에 농촌문제가 은폐되어 있는 겁니다. FTA뿐 아니라 그동안 이어진 자유무역협정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착취를 당해온 직종, 삶의 자리가 있는데 그것이 농업이고 농촌입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노인은 폐기물 취급을 당합니다. 원래 마을에서 노인은 지혜의 보고입니다. 노인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 그 자체가 마을의 박물관이에요. 미래세대가 지혜의 보고처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죠. 근데 도시에서는 그게 불가능해요.

 

이렇게 도시문명이 초래하는 여러 문제들을 그 패러다임을 그대로 둔 채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왜 운동하는 사람들이 계속 공허해질까라는 고민을 옛날부터 많이 했었는데 그게 운동과 삶의 전망 속에서 생명평화의 토대인 농생활(農生活)을 망각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농(離農)에 대한 거대한 반대 흐름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목적의식적인 귀농과 귀촌이 필요하다는 거죠. 귀농‧귀촌이 어렵다면 도시에 살면서 텃밭을 일구며 농촌 생산현장과 연대를 모색해야 합니다. 생산자와 다양한 형태의 사귐을 회복해야 합니다.

 

도시에 있든, 농촌에 있든 농생활, 농(農)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기조가 구성이 되어있어야 공허해지지 않을 수 있어요. 도시인들이 겪는 많은 정신적 육체적 위기도 농생활 현장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밭의 생명들을 돌보고 땅의 수많은 생명들과 만나고, 산과 들의 생명들과 만나며 땀 흘려 노동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수련이고 치유이며 기도입니다.

 

청년실업을 양산하는, 88만원 세대를 만들어내는 경제질서의 부정의에 저항하는 운동도 필요합니다. 동시에 88만원으로 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훈련하고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더 중요하고 실제적인 운동입니다. 청년실업을 양산하는 이러한 구조에 대해서 도시에서 저항하는 운동과 동시에 청년들이 농촌으로 자기 삶의 지평을 넓히는 운동을 같이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귀농‧귀촌의 정착률이 많이 떨어지는데 공동체 일부가 귀농을 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저희는 농촌으로 가면서 공동체 귀촌전략을 가지고 갔어요.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귀농‧귀촌한 사람들은 정착률이 굉장히 떨어져요. 지금은 귀농‧귀촌이 꽤 많아졌지만, 정착하는 게 쉽지 않죠.

 

공동체가 귀촌을 할 때 직업을 바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들, 공무원, 선생님 등 이런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자원을 했어요. 그래서 10여명 정도가 처음에 자원을 했어요. 몇 사람은 농사를 배우고 몇 사람은 건축을 배우고 몇 사람은 터전을 찾아 다니고, 이런 역할을 나누어서 한 후 터전을 정하고 나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들어갔죠.

 

들어가서 마을 사람들한테 인사하고 마을 일들을 돕고 배우면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영성수련을 담당하던 친구, 마을학교 교사들, 그 지역 공교육 교사로 있는 사람도 있어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도 갔고 서울에서 ‘한살림’ 활동가로 있던 친구는 그 지역 한살림으로 옮겼구요. 그 다음에 건축하는 친구들, 그리고 서울에서 지역복지 관련해서 NGO활동하던 친구는 홍천에 내려가서 그 일을 그대로 합니다. 노인들 글자 가르쳐 드리고 다민족 가정들 돌보고 그런 역할들을 하죠. 그러니까 도시에서 하던 그 역할들을 농촌에서 그대로 할 수 있는 그러면서 농촌이라는 특이성에 맞게 농사와 건축이라는 것을 병행해서 여러 사람들이 같이 내려가서 하죠. 이게 공동체 귀촌전략입니다.

 

농도 간 생명 순환하는 삶입니다. 서울 수유리 마을에 있는 밥상 부산물과 오줌을 모아 홍천에 가지고 가서 농사에 퇴비로 활용합니다. 화학비료나 비닐 등 화학제품이 투입되지 않는 농사를 해요. 개인이 귀농해서 이렇게 철저한 생명농법으로 농사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함께 문화를 만들고, 협력하고 생존을 서로 도우면 힘들지만 재밌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 있는 공동체 지체들이 다양한 의미를 두고 며칠 혹은 몇 달씩 홍천에 가서 노동하고 기도합니다. 자기가 필요한대로 기도하러 간다든지 농사일 바쁠 때 도와주러 간다든지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초공동체가 돌아가면서 1박2일로 홍천으로 갑니다. 12개 정도 기초공동체가 있으니까 부담되지 않습니다. 농촌 생활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일손을 도우러 오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도 부정한 채 살던 농촌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삶의 정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있다는 것이 주는 보이지 않는 힘과 위로가 있죠. 이런 과정들을 통해 농도상생 마을공동체를 진중하고 재밌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 사상가인 자끄 엘룰 같은 경우는 도시문명 자체가 하나님께 범죄한 문명이라고 보고 있고 빈민운동의 대부이신 허병섭 목사님 같은 경우도 도시에서 공동체운동을 하시다가 도시에 한계를 느끼고 시골로 가셨는데 농도상생 마을공동체를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잡고 계신건지 최종적으로는 농촌공동체를 지향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농도상생 마을공동체입니다. 모두 도시로 가야한다는 것도 허구고, 모두 농촌으로 가야한다는 것도 허구입니다. 가능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개인이라면 도시와 농촌의 삶이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할 것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나 공동체라는 집단 인격을 주체로 할 때 그건 동시에 가능합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농생활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농촌에 살면서도 도시를 추종하는 삶을 사는 경우도 있어요. 지역적으로 농촌이냐 도시냐가 핵심이 아니라 농생활의 삶을 사는 가가 핵심입니다. 농생활의 삶은 도시에서도 가능해요. 물론 많은 한계가 있죠. 농도상생 마을공동체라는 관계양식을 통해서는 그 한계를 많은 부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생활에 기반한 삶의 양식들을 만들어 가는 것을 배제한 도시문명 자체로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받고도 스스로 자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이 도성문명을 만든 것입니다. 도시문명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나 자본의 질서가 중심이 되어 있는 도시문명, 농촌을 수탈하는 것을 토대로 형성된 한국사회의 도시문명 이건 지속불가능한 문명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생명평화연대라는 단체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생명평화연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생명평화연대는 한국사회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기구)운동이 점차 GO(governmental organization 정부기구)화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금 내듯이 무심하게 회비 내고, 활동가들은 공무원처럼 일하고, 운동은 활동가들이 하는 형국이죠. 회원들이 활동가들이 뭘 하는지 모르고 활동가 중심으로 활동을 하는 것, 이게 GO 구조입니다. 그리고 민주정부 10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나치게 정부나 기업 지원 프로젝트 중심의 운동을 전개하다 보니까 정부가 바뀌면서 모두 휘청휘청했죠.

 

몇 년 전에 현재 서울시장이 되신 박원순 변호사님께서 공동체 취재차 오셨다가 마을을 둘러보시면서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 하나하나마다 이건 어떤 지원을 받느냐고 물어보셨는데 저희는 거의 지원받는 게 없다고 말씀드리면서 현 시민사회 단체의 프로젝트 지원 중심의 운동 방식에 대해 얘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부 지원 프로젝트는 운동의 자생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받든 안 받든 상관없는 수준에서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야건강합니다. 프로젝트를 통해서 인건비를 해결하겠다 또는 운동의 주력을 프로젝트를 통해서 해소하겠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시민사회단체의 생명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충분한 자생력을 가진 채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진행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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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졸업식및마을잔치
  

생명평화연대 같은 경우에는 프로젝트는 최소화하고 회원들이 운동에 필요한 충분한 주체적 책임을 지자라고 하는 의미에서 형성됐고 그러다 보니까 전임활동가를 최소화해요. 거의 안두는 때가 많고 공동체가 이런저런 활동에 집중이 많이 되는 시기에 잠깐잠깐 둬요. 기본적으로는 회원이 전부 활동가이며 자기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하나님나라운동은 생명평화와 통일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명‧평화‧통일이라는 주제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과 다양하게 연대합니다. 그리고 그걸 지역에서 풀어가자라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최근 중요한 과제로 집중하는 것은 농도상생 마을공동체 만들기 운동입니다. 이와 관련된 지원을 하고 연대합니다. 그리고 도시 텃밭, 대안에너지 등의 자율모임, 마을신문을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학교폭력 때문에 공교육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과 평화교육 하는 것, 그 외 지역 복지 및 정치 현안 등에 함께 참여합니다.

 

희년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성경을 읽다가 알게 됐어요. 성경을 보다가 참 재미있고 중요한 법이라고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공동체 시작하기 직전에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대안적 기독학생운동을 고민했을 때인데요. 1980년대 후반에는 학생운동 전반이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사회과학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사회과학적 영감과 논리 뿐 아니라 성서가 제시하는 가치와 원리 등에 관심을 가지고 기독운동론을 공부할 때 희년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또 한 번의 계기는 한국교회 통일희년운동을 통해서입니다. 분단 50년이 되는 해인 1995년을 한국교회가 통일희년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때 희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가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1995년 통일희년에 결혼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1995년에 결혼을 했거든요. 그런데 제 아내도 희년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갖고 기도하던 자매였어요. 우리 민족적 역사 속에서 희년의 의미를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이라는 실존적인 삶의 현장에서도 희년이 구현된 사건, 현재화된 희년으로 경험한 거죠. 그리고 공동체가 10년 정도 지나고 나서 마을교회를 개척했는데, 그 때 희년마을교회로 이름을 정했죠. 희년에 대해서 그런 관심의 계기들이 쭉 이어졌어요.

 

목사님께서 정의하시는 희년이란 무엇인가요?

 

희년이라고 하면 저에게는 동의어가 몇 가지 있는데 ‘예수의 하나님나라’, ‘생명평화’, ‘삶의 총체적 혁명’입니다. 저에게는 같은 의미로 체화되어 있습니다.

 

희년은 시내산 언약의 핵심입니다. 시내산 언약이 구조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안식일, 안식년, 희년으로 되어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게 선지자운동으로 이어집니다. 선지자운동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시내산 언약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희년이라고 하는 핵심적인 의미에 다시 서게 되는 것이지요. 성서는 예수님의 첫 강론을 이사야서의 ‘주의 은혜의 해’를 인용하는 것으로 증거합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희년과의 연계 속에 설정하는 겁니다.

 

시내산 언약, 선지자운동, 예수운동을 통괄하는 하나의 맥이 있는데 그게 저는 희년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희년 얘기를 하면 구약의 법조문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신약시대에 구약의 법조문은 법적 원리로 제시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건 하나의 상상력과 영감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건, 예수에 의해서 재해석된, 그리고 성령에 의해서 적용된 희년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의 은혜의 해를 말씀하실 때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주의 영이 임하시면’이라고 얘기했어요. 희년이 성령사건의 맥락에 서는 것이고, ‘이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응하였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성령사건을 통한 희년의 현재화, 이것이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입니다.

 

구약의 희년법은 사실은 지파공동체(준 국가적 시스템)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스라엘 멸망 이후, 예수시대에는 국가법으로서는 제도적으로 구현하기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그걸 핑계로 종교지도자들은 희년법의 정신까지 완전히 배제한 채 율법을 오히려 착취의 도구로 악용했던 겁니다. 성령의 임재와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예수님의 첫 강론은 듣는 사람들에게 기이히 보였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이어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하나님 사건을 해석하는 지점에서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 합니다. 한 번의 강론으로 죽음의 위기에 몰린 거죠. 그만큼 핵심을 건드린 겁니다.

 

예수의 첫 강론은 희년을 국가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가능하도록 현재화시켜버린 사건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성되는 관계 속에서 희년의 삶을 구현하라는 거죠. 예수와 성령사건을 통해서 재해석되고 적용된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삶의 원리가 희년인 겁니다. 성령사건을 통해 은사와 물질을 나누고 공유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과 관계가 희년을 구현하는 삶입니다.

 

희년의 내용이 무엇인가도 중요하지만 희년을 살아내고 실천하는 주체 역시 중요한 문제인데 이스라엘 열두지파 공동체를 현대적으로 적용한다면 오늘날에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내산 언약공동체는 열방의 군주국가 형태와 달리 지파공동체였습니다. 지파공동체라는 매우 독특한 주체를 생성하면서 주신 법이었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와 성령사건을 통해 재해석되고 적용된 희년을 구현할 주체는 성령사건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관계로서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은사와 물질을 함께 나누고 삶을 깊게 공유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 신앙하는 삶의 성숙을 도전하고 격려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그 신앙공동체, 기초공동체들의 연대라는 틀을 통해 지파공동체의 현재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는 정신적으로는 희년과 예수의 하나님나라에 기반하고, 조직론적 영감은 많은 부분 지파공동체와 초대교회공동체에서 얻었습니다. 신앙공동체와 괴리된 많은 신학자들은 성서를 해석할 때 모세오경을 다루면서도 지파공동체를 별로 의미있게 다루지 않아요. 지파공동체를 사사시대의 실패한 역사 정도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언약법도 이후에 잘 지켜지지 않았는데 언약법에 대해서는 계속 되먹임을 합니다. 언약법은 계속 재해석하고 적용하면서 지파공동체는 실패한 역사이기 때문에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일관성 없는 해석입니다. 세상은 예수운동이 십자가 죽음으로 실패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다고 예수운동을 따르지 않을 거냐? 그건 아니잖아요.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개신교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맹점이 있는 데, 그게 뭐냐면 교회론이 취약하다는 겁니다. 국가신학에서는 교회론을 새롭게 모색할 수 없거든요. 국가라는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경직된 체제의 안정에 복무하는 종교 조직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영감과 도전으로 시작되었던 종교개혁 운동조차 교회론에서는 그 이론과 무관하게 실제적으로는 국가교회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건 참 안타까운 한계입니다. 이를 운동론에 적용하면 조직론이 취약한 겁니다. 조직론이 취약하면 변혁전략이나 이행전략을 구체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늘 기독운동이 특히 보수신앙을 배경으로 하는 운동이 강령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뿌리 깊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니, 성서를 읽으면서 조직론적 영감에 주목이 잘 안 되는 겁니다.

 

지파공동체, 초대교회 공동체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조직론적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후에 우리가 희년운동의 실천주체를 고민하면서 희년운동을 할 때에도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희년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중심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단위 전략도 있어야 하지만 중심은 지파공동체 단위에 주어진 것, 그것의 현재화된 구현인 신앙공동체의 일상 속에서 희년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희년실천에 있어 국가전략을 자꾸 중심에 두게 되면 결국 자기 삶에서는 희년을 끝까지 유보하는 현상이 합리화 됩니다. 그러나 희년의 현재화를 중심에 두게 되면, 국가 차원의 전략, 국가가 그걸 계속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계속 해 나가되, 현재 자신의 삶에서 유보하지 않고 희년을 실천할 수 있어요.

 

예수운동의 희년전승에 있어서 핵심이 현재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성령사건에 토대합니다. 그래서 지파공동체의 현재화라고 하는 것은 군주제를 닮은 교회 형태가 아니라 지파공동체의 조직 형태와 연관된 신앙 공동체 운동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복음주의권의 조직론이 취약한 이유들이 신학적 배경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칼빈주의 신학 자체가 국가나 군주제와 매우 친화성이 높기 때문에 지파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지 않았나 생각이 들구요. 국가와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근대자본주의라는 틀이 흔들리는 이 시점에서는 지파공동체에 대한 영감이 대안적 체제와 틀을 모색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나 개인이 희년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작게라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기본적으로 희년이라는 메시지 자체가 개인에게 준 메시지가 아니라 지파공동체에게 줬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희년을 일상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냐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할 게 희년을 함께 구현할 관계를 만드는 것이 떠올라야 한다는 거죠. 프로그램을 당위적으로 제안해서 하느냐 안하느냐는 굉장히 파편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땅과 연대하는 겁니다. 어쨌든 희년에서 중심은 땅이라는 것이에요.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땅이라고 하는 것을 재산가치, 경제적 가치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땅 자체를 생명의 토대로 보고 땅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땅을 생명의 토대로 느끼는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텃밭농사를 짓든지, 농촌과 도시 간의 연대에 다양한 형태로 참여를 하든지, 식의주 생활양식을 바꾸어서 생협을 이용하든지, 생산자와 직접적인 교제권을 형성해 간다든지 하는 것들이 희년을 개인이나 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봐요.

 

예를 들어 하나의 도시 교회가 희년실천주일을 통해서 각성을 하고 각성된 것을 땅에 대한 관심으로 가져와서 생명농업을 하는 농촌마을이나 농촌교회와 자매결연을 맺는 겁니다. 자매결연을 맺는 형태도 열 교회에 10만원씩 주는 시혜자 중심의 연대를 하지 말고, 생명농업을 지켜가는 농촌교회나 마을을 온전히 책임지라는 거죠. 그 교회나 마을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도시교회가 다 사는 거죠.

 

이때도 중요한 것은 도시소비자의 왜곡된 입맛과 취향이 중심이 되면 안돼요. 대부분 농도직거래에서 농촌 사람들이 뭘 힘들어 하냐면 도시인들의 입맛이나 취향을 힘들어해요. 그건 완벽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그냥 나오는 대로 먹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농촌과 도시와의 연대는 도시 소비자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생산자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관계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해에 농사가 잘 되는 건 많이 먹고 잘 되지 않은 건 적게 먹고, 제철에 나는 것을 먹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자꾸만 땅이라고 하는 것에 자기 삶의 토대를 두게 될 때 ‘아 그 땅은 팔 수 없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인디언들에게 땅을 팔면 살려주고 안 그러면 죽이겠다고 해도 인디언들이 “땅을 판다는 것이 도대체 뭐냐‘라고 물었다죠. 옛날 시골 할머니들이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밖에 안 계신데도 자식들이 도시에 와서 사시라고 해도 이 땅을 떠나면 내가 죽는다고 그러지 않아요. 그러니까 땅의 생명력과 자기의 생명력이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이러한 생명적 가치를 토대로 해야지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땅은 사고 팔아서는 안된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계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제적 가치가 아닌 생명적 가치에 기반한 땅과의 연대’는 여러 가지 중요한 함의를 많이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희년함께에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희년운동은 굉장히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궤적을 걸어왔지만 운동사나 교회사에서 많이 소외되어 있었던 복원되어야 할 역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희년함께에서 오는 메일이나 홈페이지에 있는 글들을 보면서 이 땅 지식인들의 공통적 문제인 사대성을 간혹 느끼곤 합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 대학을 나왔으면 90%는 사대주의자, 대학원을 나왔으면 98%가 사대주의자라는 긴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동체에 대한 얘기도 그렇고, 공동체토지신탁에 대한 얘기도 그렇고 희년에서 다룰 수 있는 여러 가지 의제들과 희년적 사건들이 이 땅에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 역사가 복원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진 희년의 역사와 사건들에 대해 좀 더 주목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히려 땅과 인간의 몸, 자기생명의 유기성이라고 하는 것을 토대로 땅을 판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몸의 정서를 가진 채 땅에 대해서 소중한 가치를 두었던 이 땅의 많은 운동들, 이런 것들을 복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구요. 희년함께가 그런 작업들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운동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주체들은 그 삶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거든요. 희년함께가 땅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그렇다면 그걸 국가적인 차원에서만 얘기하고 자기 삶에서는 계속 유보할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희년함께를 통해서 희년을 구현하는 공동체운동을 실천해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한반도생명평화공동체운동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토지정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에 대한 여지는 남한 사회만을 놓고 보면 굉장히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통일이라는 과정은 토지정책과 관련해서 아주 근원적인 전환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의 남남갈등의 수위나 정신적 가치를 담보해야 될 종교인 기독교인들이 이념적으로 굉장히 오염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이 과연 왜곡된 자본주의 질서의 확대재생산 또는 갈등의 재생산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면 조금 더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조용기 목사님 같은 아주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분과 박형규 목사님 같은 진보적인 분이 함께 싸울 수 있는 운동이 바로 성서의 가치를 둔 희년운동이 아닙니까? 야훼의 날, 예수의 하나님나라, 전쟁무기를 폐하고 보습을 만들라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 보면 한반도생명평화 운동은 희년운동과 같이 갈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토지정의’라고 하는 구체적인 내용의 형태가 부의 패턴을 구성해가는 작업이라면 ‘토지정의’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어떤 평화체제로서의 운동이 함께 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두 주제가 굉장히 거대담론인데 그 거대담론의 현재화로서의 마을공동체운동, 이 세 가지가 맞물려 있다고 봐요. 이런 운동들이 같이 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후에 기회가 된다면 희년함께가 그런 운동에 같이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통일 이후에 토지정의를 구현해 가는데 정말 중요한 토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뭐라고 얘기하기에는 저는 어린 사람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총이 한국교회에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청년세대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만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개혁의 이미지에 속지 말고, 세상정사와 권세가 만들어 내는 허상에 속지 말고, 조장되는 불안에 속지 말고, 조작된 욕망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눅 들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주눅들지 말고 신앙과 삶의 모험을 감행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시대가 문명적 위기를 경험하는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명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청년들의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한 문명에 대한 청년들의 의무이기도 하고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주눅들지 말고 기만당하지 말고 과감하게 모험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동지를 만나길 바랍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동지를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청년 때 평생의 동지를 만나고 서로 좋은 동지로 훈련되길 바랍니다.

 

87항쟁을 겪었던 주역들인 현재 486세대들은 87항쟁이라는 성공의 경험이 있다보니까 주눅들지 않는 과감함이 있는 것 같은데 IMF를 겪었던 이후 세대들은 확실히 생존의 공포감이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대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는데 한편으로 염려되는 점은 청년들이 국가 단위의 변혁을 꿈꾸며 정치권에 들어가서 바꾸겠다는 꿈을 꾸지만 정치권에서는 20대를 얼굴마담 격으로 생각하고 있지 정치의 주체로 세우지는 않을텐데 그게 좌절되면 다 개별적으로 흩어지지는 않을까라는 우려가 됩니다. 작게나마 계속해서 공동체적 모색을 해본다면 지속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있으시다면 나누어 주세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하나님나라가 임하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201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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