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
이전 목록 다음

[희년이란 무엇인가11] ‘희년’의 두 가지 함의, ‘제도 변화’와 ‘공동체적 돌봄’ 김근주 교수

작성자 : 관리자 (175.211.189.***)

조회 : 2,260 / 등록일 : 19-03-01 17:27

[희년이란 무엇인가? - 희년함께 연재 기획 인터뷰11]

 

 

 

희년’의 두 가지 함의, ‘제도 변화’와 ‘공동체적 돌봄’

‘공평과 정의’의 전도사, 김근주 교수 인터뷰

 

 

 

김근주 / 희년함께 자문위원

 

자기 소개 및 하시고 계신 사역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해 학교 내 전횡에 대한 문제제기로 올 해 초 파면되었습니다. 교육부에 복직소청을 해서 파면취소 결과가 나왔고 현재는 그 다음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 외 하고 있는 일은 푸른뜻교회에서 목회사역을 하고 있고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하시고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경제학에서 신학으로 바꾸시게 된 계기와 신학 중에서도 구약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부시절 경제학은 참 재미있는 공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 격변의 시대였고 학생운동이 그야말로 절정의 시대였었기 때문에 그때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은 ‘내가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그 고민과 갈등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밖에 나가서 시위하던 학생들도 그 고민들을 거쳤죠. 그 때는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마음 편하기 쉽지 않았던 시절인 것 같습니다. 저도 생각 없던 고등학생이었는데 대학에 와서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진상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때에 ‘예수대축제’라는 전도집회가 당시에 대학마다 유행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예수대축제를 했었는데 그 와중에 어떤 학생이 분신자살하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 일이 당시 대학기독학생들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찬양하고 경배하고 캠퍼스를 밟고 다니는데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자기 생명을 버려요. 그 사건으로 인해 아주 복음적이고 보수적이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하면서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하는 그런 움직임들이 꽤 많았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문화연구회(기문련)라는 단체였고 기문련이 생기던 처음부터 저도 거기에 같이 참여해서 열심히 배웠죠. 그때부터 저는 주류경제학은 거의 놓다시피 하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저희 교회 전도사님들이 참 진지하고 열심이셨던 분들이어서 그분들의 제안으로 산동네 판자촌인 봉천5동에 가서 기초공동체로 살았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봉천5동에 살았는데 기초공동체에 있으면서 계속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여했습니다. 기초공동체 자체가 그 지역에서 빈민활동을 했고 기문련에서도 농활을 하고 공장으로 위장취업을 간 경우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사회과학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었지만 그 시절 저에게 신앙적으로는 참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문제에 한발을 디디고 참여하는데 어린 나이였다 보니 신앙과 현실의 적정한 거리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때는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얼치기 사회주의자인지 헷갈리는 경지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ac51073b3ed5a20849b0195798693247_1551428 

 

그리고 1989년 즈음 제가 있던 기문련이란 단체가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겪게 되었고 또 그 시기가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동구권사회주의 붕괴가 당시 학생운동 전체에 미친 영향이 엄청나게 컸었기 때문에 그 사정으로 기문련이 해산하게 되었고 저 역시 개인적으로 신앙의 파산 같은 경험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녔던 교회에 계셨던 분이 교회를 개척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그분과 인연이 닿아서 그 교회를 1989년 후반기부터 다니면서 새삼스럽게 기도하기, 성령충만을 구하기 등 신앙의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배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과거의 기문련 활동 때문에 징역을 잠깐 살았어요. 수원구치소에 4개월을 있으면서 그 기간동안에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징역을 살기 전에는 경제학과 대학원을 가려고 대학원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징역을 살게 되면서 거기서도 기도하고 성경보고 아픈 사람을 위해서 같이 기도해주고 하다보니 일반죄수들이 저에게 목사님이라고 그랬어요. 그래도 나가면 경제학과 대학원에 가리라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제가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신학을 하는게 어떻겠냐 했을 때 너무 쉽게 그래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1990년에 출소를 한 후 신대원 준비를 해서 91년부터 장신대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신비적인 은혜가 센 분, 그래서 흔히 말하는 방언, 통변, 예언, 신유, 말씀의 은사가 다 나타나시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분은 철저하게 삶에 충실하신 분이었어요. 제가 유학가기 전까지 목사님과 거의 10년 넘게 같이 있었어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기 때문에 목사님 사택에 방 하나를 얻어서 지내기도 하고 10년 넘게 저희 가정이 굉장히 가깝게 지냈는데 목사님에게서 인격적인 흠을 발견한 적이 없었어요. 그분은 전형적인 목사님으로써 사회적인 의식은 없으시고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이었지만 삶이 너무 정갈하고 온전하신 분이셨어요. 그야말로 삶에 철저하신 분이셨고 그러다보니 구약을 참 강조하셨어요.

 

저희 목사님과 그 교회에 있으면서 ‘한국교회가 망한다면 로마서, 갈라디아서 때문이다, 엉터리로 이해된 바울서신 때문에 교회는 망하고 말것이다’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교회에서는 학생운동은 완전히 접고 교회사역자로 평생을 살겠다고 다짐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은혜받고 다시 성경보고 기도하고 그러다보니 우리 한국교회가 구약의 말씀과 구약의 세계를 너무 홀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저희 목사님은 구약성경의 배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다거나 전혀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이분에게 배운 건 구약은 신약만큼이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에요. 제가 신학교 갈 때가 25살이었으니 어렸죠.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구약의 깃발을 들리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옳은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여전히 한국교회는 신약 때문에 망한다고 봅니다. 은혜가 사람을 살게 하지만 잘못된 은혜야말로 한국교회를 가장 더럽히고 추하게 만드는, 지금 현재의 꼴을 만들어 버린 것이 줄기차게 교회가 가르쳐왔던 로마서, 갈라디아서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다 싶어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파면되는 등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시는데 근황은 어떠신지요?

 

지난 6개월은 우리 교우들 덕택에 잘 지내온 것 같습니다. 푸른뜻교회를 기반으로 여기저기에서 불러주셔서 강의를 다니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수님, 신현우 교수님, 이필찬 교수님 모두 연구역량이 엄청나신 분들인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큰 손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현우 교수님이나 이필찬 교수님도 그렇겠지만 이 기간 동안 연구를 못하는 것 같아요. 일단 책이 없어요. 책이 연구실에 다 있기 때문에 연구실을 뺄 수도 없기 때문에 연구하기도 힘들고요. 저는 최소한 신현우 교수님은 어느 상황으로든 꼭 학교로 돌아가셔야 된다 싶어요. 신 교수님은 정말 괜찮은 학자에요. 저는 여러 가지 관심사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신 교수님은 우물을 깊게 팔 타입이기 때문에 이분은 굉장한 학문적인 성취들이 있을 것 같아요. 이분의 기본 성향이 있다 보니 그 성취들이 우리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서도 굉장히 큰 기여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신 교수님은 꼭 어느 자리든 연구의 자리로 돌아가면 좋겠어요.

 

우리 한국교회가, 혹은 복음주의 개혁교회 진영에서 신 교수님의 자리를 마련해내지 못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저는 학자이진 않다 싶어요. 학자는 아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한 것들을 우리 그리스도인 대중들 가운데 잘 풀어서 나누는 것이 제가 할 영역이다 생각해요. 학문적인 연구들도 계속하고 원래 전공인 70인경도 계속 연구하겠지만 저는 여전히 현장에 관심이 있어요. 학문이란 완전히 집중해야 하는 건데 관심사가 많다 보니 제가 학문에서 아주 깊은 곳까지 가기는 한계가 있다 싶기는 해요.

 

그런데 신 교수님도 현실 관심사가 있지만 이분은 현실이 이렇게 심란하구나라는 열정을 학문에 쏟아요. 신 교수님은 정말 자리가 생겨야 해요. 학문적으로 정말 아까운 분이에요. 마가복음에 있어서는 정말 세계적인 수준인데 참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생계에 신경 쓰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연구할 수 있도록 정말 사람을 위한 펀드들이 필요해요. 신 교수님도 선교 현장에 대한 관심이 있지만 50대 중반까지는 이분은 공부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근 한국교회에 대한 대안으로 ‘작은 교회’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시는데 ‘작은 교회’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어쩌다가 제가 갑자기 작은 교회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해보니 저는 백 명 넘는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작은 교회에 대해서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대형 교회들을 보고 신광은 목사님의 ‘메가 처치 이야기’에서도 배우고 그러면서 ‘교회의 크기’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푸른뜻교회를 시작하면서 함께 모이는 일곱 작은 교회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 모임 목사님들에게 제가 많이 배웠어요. 각 교회들이 작은 채로 존재하면서 활동들을 열심히 해나가시는 것들을 보면서 제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생각은 작은 교회라는 건 없는 거고 그냥 교회다우면 되는 것 같아요. 교회다운 것, 교회의 본질이 뭐냐는 질문은 기존 조직신학으로도 얼마든지 답을 할 수 있다고 봐요.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 이 세 가지로 대체로 정리하는데 이것만으로도 교회가 무엇이냐는 것이 잘 드러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이런 본질을 가진 교회의 사명이 복음증거이지요. 3+1인 셈인데 교회의 본질 세 가지와 복음증거, 이것만 가지고도 저는 교회로서의 존립에 대한 점검 기준은 충분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걸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몸집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교회는 변하는 상황에 얼마나 기동성있게 응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가령 나라의 상황이나 교우들의 상황들이 변화되어 가는데 교회가 얼마나 기동성있게 응답할 수 있는가가 교회의 몸집에 대한 핵심인 것 같아요. 지금 생각에 저는 숫자는 아니다 싶어요. 3-40명의 작은 교회인데도 잘 안 움직여지고 상황에 대한 적응과 대응이 늦은 교회라면 그건 작은 교회이지는 않다 싶어요. 몸집이 비둔해져버려서 유지에만 자꾸 급급해지게 되면 이미 거기는 숫자가 몇 명이든 작은 교회이지는 않다 싶어요.

 

작은 교회는 몸집이 가벼워서 언제든 기동성있게 응답할 수 있는 교회이고 그 이면에는 주님께서 부르시면 어디든 간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이 문제라면 문제인거죠. 건물이 생겨버리면 이게 폴짝폴짝 뛰어다니기 어렵고 기동성있게 응답하기에는 걸림이 되고 숫자가 너무 많아져도 결정하기가 너무 어려워지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기동성있는 반응에 방해가 될 때 숫자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 숫자 자체는 상관이 없다 싶어요. 그래서 저희 교회도 늘 그러한지를 되돌아보게 되고 그런 작은 교회는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나라의 희망이고 주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빛이고 소금이다 싶어요. 그 교회를 보면 정말 살 것 같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습니다.

 

ac51073b3ed5a20849b0195798693247_1551428 

 

목사님께서 정의하시는 희년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구약의 출발은 아브라함인 것 같아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사람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신다 약속하셨고 그걸 행할 공간이 필요하니까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으로의 부르심, 그것을 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땅, 주체로서의 사람. 이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불러내신 하나님나라 백성의 가장 기본적인 틀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땅이 없어져버리면 정의와 공의를 행할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고 사람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땅과 자손의 약속은 아주 중요한 약속이고 땅과 자손이라는 두 요소가 전면에 드러나는 핵심이 희년이지요. 레위기 25장에 희년이 되면 땅이 다시 돌아오고 사람도 희년마다 다시 돌아와서 땅의 자유와 사람의 자유, 두 가지가 획득된다는 점에서 희년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때의 기본적인 틀, 그게 희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희년은 목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희년이 되어서 땅과 자손이 돌아와야 그 땅 위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 그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가 세상에 드러나게 됨이 있는 거죠. 그 틀로써 희년이라는 것이 너무 중요한 틀인 것이고 레위기의 말씀은 이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일러주신다는 점에서 희년은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삶의 기본전제이며 기본틀이다 싶습니다.

 

때로 우리가 땅이 없는 채로 존재할 때가 있지요. 이것은 정상적인 상황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희년을 정하셔서 그 땅이 되돌아오게 제도를 만들어두셨다는 점에서 땅 없는 사람은 정상적인 상황이지 않고 때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기라든지 족장들의 시대라든지 땅 없이 살았지만 그게 정상은 아닌 것이고 회복되어야 할 시대입니다. 남의 종살이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우리도 역시 그럴 때가 있겠습니다만 반드시 되돌아와서 몸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싶어요.

 

이렇게 희년은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희년을 오늘 우리 시대에 적용한다고 할 때 숫자 50을 가지고 구약성경의 희년이 실행되었냐 안되었냐를 따지지만 그건 아니다 싶어요. 숫자 50이 의미하는 것은 상징이에요. 일곱 번의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는 상징적인 숫자를 통해 하나님의 모든 완전하심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지 숫자 50에 매여서는 안 된다 싶어요. 그래서 예수님도 이 말씀이 오늘 성취되었다고 하시며 희년을 50에 매이지 않고 확 당겨버리십니다. 느헤미야 5장에서도 희년의 조치를 행하지만 50년과는 아무 상관없이 지금 당장 실행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래서 구약의 희년이 실행되었는지를 50년을 가지고 찾으면 저는 실행된 적이 없다일 것 같아요. 대천덕 신부님은 생각이 좀 다르시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서 상징되는 50년을 오늘에 적용할 수 있는 함의는 ‘제도’인 것 같아요. 50년마다 무조건 다시 땅과 사람이 돌아온다는 점은 제도적 장치로서의 회복이라는 것이고 제도는 법이나 사회경제 구조의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누구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틀을 갖추는 것, 그게 숫자 50이 가진 의미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 희년제도의 또 하나의 축은 ‘무르기’입니다. ‘50’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바가 주기적인 제도적 회복이라면 ‘무르기’는 일상 속에서의 회복인거죠. 나나 친척들 가운데 형편이 괜찮아지면 언제든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니 제도적으로는 희년을 통해서 구조적인 변화를 실행해가는 것이고 일상 속에서는 ‘무르기’를 통해 회복이 가능합니다. ‘무르기’를 오늘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공동체인 것 같아요. 땅과 몸이 노예상태가 된 상황은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공동체적인 해결들은 우리가 지금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들이 있죠. 가령 아프리카를 위해서 우리가 돈을 모으거나 기부하는 것도 저는 ‘기업 무르기’라는 생각을 해요. 좀 남는 곳에서 모자라는 곳에 보내어서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령 저나 신 교수님이나 이 교수님이 이번에 웨신사태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수많은 분들이 십시일반해서 저희들의 생계를 도와주신 것이 있지요.

 

무르기의 현대적 적용이 많아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용기있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볼 수 있겠다 싶어요. 청년들이 직장에 가서, 그 살벌한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았다가는 엄청나게 깨지는 수가 있고 그럴 경우에 공동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면 그 형제자매들은 다음에는 내가 설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에 적응해나가게 될 거고 그러면 교회에서 아무리 정의와 공의를 말해봐야 전혀 소용없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 그 형제자매를 공동체가 뒷받침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공동체가 그럴 수 있으면 좋은데 모두 다 가난해서 만약 그게 안 된다면 그야말로 최소한을 버텨주면서 가는 거죠. 그러다가 50년으로 상징되는 구조적인 틀, 빈곤에 대한 국가적인 틀이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완전한 나락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하겠다 싶어요.

 

‘50년’과 ‘무르기’라는 두 가지 구약의 제도는 오늘 우리에게는 구조적인 변화, 공동체적인 연대로써 희년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일 것 같아요.

 

구조적인 틀의 변화는 좀 더 전문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이 가난문제를 어떻게 대물림이 되지 않게 할 것이냐의 핵심은 교육과 집이에요. 교육과 집도 정확히 아브라함의 그 틀이잖아요. 교육은 자손이고 집은 기업이기 때문에 계속 같은 문제가 가는 거죠. 교육과 주거라는 이 문제는 개인이 백날 붙어 싸워봐야 해결이 안 됩니다. 교육문제도 공동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고요.

 

지난 번 최철호 목사님 인터뷰를 보면서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가 이런 부분을 너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럴 때 공동체 사람들이 소신있게 살아갈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 상황에서 자꾸 용기내라고 요구하지 말고 용기내어 살다가 내가 뒤로 넘어지면 공동체가 받쳐준다는 믿음이 있으면 소신있게 살아갈 수 있어요. 하나님이 받치시지만 그 하나님의 사랑을 지닌 형제자매들이 받쳐주면 마음껏 넘어질 수 있지요.

 

이렇게 구조적인 변화는 시민으로서의 올바른 의무들을 다 하면서 모색하고 공동체는 교회단위에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50년’으로 상징되는 제도변화와 ‘무르기’로 나타나는 공동체적 돌봄은 ‘희년’에 내포된 두가지 중요한 함의인 것 같습니다. 귀한 통찰 감사드립니다. 희년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980년대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기독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발견한 게 희년이었던 것 같아요. 구약성경 안에도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해 훌륭한 답이 있다는 것을 당시 복음주의자들이 발견을 했고 저도 대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교회에서 희년강의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희년강의는 이걸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안들은 없었고 다만 성경에 이렇게 깊고 좋은 것이 있고 하나님이 사회정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한 것이 희년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희년강의를 통해 하나님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으시구나라는 도전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희년의 비과학성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자본론이 가지고 있는 정치한 체계,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틀에 비해서 레위기 25장을 가지고서 오늘의 복잡한 세상을 분석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이상적인 가치를 현대 자본주의체제에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단체가 깨지고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보면서 날 부르신 부름은 사회주의 운동 아니고 복음으로의 부르심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완전한 전향, 완전한 돌아섬을 했어요. 이 바닥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심을 하고 그 이후로는 교회에 들어가서 온갖 교회 일들을 다 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년 교회사역하고 갑작스레 유학을 가게 되었고 유학을 가서 이사야서를 전공하다 보니 제가 깨닫게 된 게 ‘공평과 정의’였었어요.

 

제가 옛날에 학생운동할 때조차도 ‘희년’ 하나 있었고 ‘공평과 정의’를 가르쳤던 사람들은 없었어요. 전혀 인식되지 않았던 점인 것 같습니다. 신학교에서는 공평과 정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이것도 역시 제대로 된 이해이지는 않았다 싶고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이 단어들이 있더라는 거고 한번 보고 나니까 여기저기에 있더라는 것이 느껴졌었어요.

 

그리고 이사야서 자체가, 예언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심란한 메시지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바닥 떠났다 생각했는데 그냥 말씀에 그런 것이 있고 2006년에 귀국해서는 누군가 저에게 공평과 정의에 대해 한번 알고 싶다고 해서 생각만 하던 차였는데 그때 한번 드디어 공부를 해 본거죠. 공부를 해보니 엄청난 거예요. 공평과 정의라는 게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임을 깨달았어요.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계속 나타나고 그 와중에 ‘희년’이 있었어요. ‘희년’도 ‘공평과 정의’와 함께 존재하고 신약으로 갔더니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구절에서의 ‘의’가 ‘공평과 정의’였구나라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제가 공평과 정의의 전도사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아마 2007년에 성경적토지정의를 위한 모임(구 희년함께, 이하 성토모) 토지학교에서 공평과 정의에 관한 첫 강의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희년함께와 인연이 닿았고 그때부터 제가 희년공부를 다시 또 했던 것 같아요.

 

ac51073b3ed5a20849b0195798693247_1551428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교회나 개인이 희년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가적인 차원을 생각하면 국가의 토지정책과 주택문제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서 올바르게 투표에 임하고 집회나 모임에 시민으로 참여해서 의견들을 제시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은 어떤 사람들은 정치를 하거나 정책을 연구하는 것이 소명인 분들도 있겠다 싶고요.

 

작은 공동체적 차원에서는 생각해보면 교회 안에서 할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먼저는 교우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정의를 구하는 삶인지에 대해서 늘 나누고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고요. 장기적으로는 우리 교회 안에서도 앞서 말씀드렸던 공동체적인 실존을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기대하면서 기도해보면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교회가 기본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면서 일상 속에서 정의를 구하는 삶을 살지만 동시에 실제적으로 교회가 가난문제가 대물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도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전체적으로 가난문제는 구조적으로 접근되어야 하지만 가장 세부적인 단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어요. 가령 그래서 우리교회가 지역아동센터나 청소년 공부방 등을 생각을 하면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어요. 그런 구체적인 일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각자 각자가 자기 삶의 현장에서 정의를 구하는 삶을 살고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국가적인 일에 참여하고 발언하는 게 있을 것 같아요.

 

희년함께와 긴밀히 사역해오셨는데 희년함께에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로 이런 운동 자체가 다 엉망이 되어버렸고 뉴라이트 등 많은 사람들이 변질되었는데 희년함께가 지금까지 지탱해 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2006년, 2007년에 제가 토지학교에 가서 본 성토모는 1980년대 보다 훨씬 저변이 넓어졌고 젊어졌어요. 그런 점에서도 대단히 잘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어떤 조직이건 갈등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고쳐나가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그리고 토지문제에 대해서 아주 집중을 해서 파고 들어가지만 동시에 나머지 고리에 대해 연대하면서 영역들을 넓혀가는 게 필요하겠다 싶어요.

 

한국교회에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교회는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교회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어요. 이미 역사는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고 사람들도 그걸 점점 알아가고 있고 깨달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새로운 역사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청년세대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상상력을 가지고 살면 좋겠다 싶어요. 이상화 시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마지막 구절이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입니다. 그렇게 끝나는데 뭐 ‘들’이야 뺏길 수 있겠습니다. ‘들’을 빼앗길 때도 있고 심란할 때도 있지만 ‘봄’까지 뺏길 수는 없어요. 저는 ‘봄’이 우리의 상상력, 정신, 마음인 것 같아요. 이 세상이 너무 각박해서 우리 교회 청년들을 봐도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다른 생각을 하면 바로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이 닥쳐오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까지 빼앗길 수는 없어요. 저는 우리의 상상력, 기대, 꿈까지 빼앗길 수는 없겠다 싶어요.

 

그것도 결국 선택이고 우리 청년세대들이 선택해버리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저는 길들은 있겠다 싶어요. 어느 직장을 가든, 어느 직업을 가지든 간에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하나님나라와 정의를 이루어 갈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꿈꿔볼 수 있다 싶어요. 그리고 그런 꿈을 가진 청년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 상상력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싶고 청년답게 상상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기도제목 나눠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 기도제목은 열심히 하나님말씀을 잘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는 것, 이건 에스라의 기도제목이었는데 저한테도 해당될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2012.7.13]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 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 됨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SITE MAP

팀뷰어 설치파일 다운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