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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이란 무엇인가12] 희년, 한국사회, 하나님나라,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김회권 교수

작성자 : 관리자 (175.211.189.***)

조회 : 4,653 / 등록일 : 19-03-01 17:34

[희년이란 무엇인가? - 희년함께 연재 기획 인터뷰12]

 

 

 

희년, 한국사회, 하나님나라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김회권 교수

 

 

 

김회권 / 희년함께 지도위원

 

희년이란 무엇인가 열두 번째 인터뷰는 숭실대 교목실장을 맡고 있는 김회권 교수님입니다. 구원론 중심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자애로운 돌보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나라 신학을 강조하는 김회권 교수님의 인터뷰를 통해 ‘예수믿음’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자기 소개 및 하시고 계신 사역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숭실대 교목실장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복음주의 선교단체에서 12년 동안 간사생활 하면서 신학에 입문하게 되었고 목회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역하던 그 시기가 1983년부터 1994년까지인데 이때가 유신독재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군부독재 과도기 시대와 거의 겹칩니다. 그러니까, 83년부터 87년까지가 유신독재와의 형식적인 단절이라면 88년부터 92년까지는 군사적 잔재가 있는 정권의 종결시기와 겹쳤고요. 그래서 실제로 제가 우리나라의 운동권, 요즘 말하는 NL(민족해방계열운동권: 우리나라의 근본모순이 민족분단에 있다고 믿는 입장. 이정희, 권영길 계열)과 PD(민중민주주의 계열운동권: 우리나라의 모순이 민중과 억압적인 자본가계급의 갈등이라고 보는 입장. 심상정, 노회찬 계열)계열 등이 각축하던 캠퍼스 현장에서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고전적으로 믿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의식이 굉장히 발달한 기독교 신앙 전통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사회에 답을 주지 못하고 바람직한 공동체 생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즉,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전을 이 지상의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민중의 아편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독교 신앙들의 유산을 연구해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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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1994년까지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꿈꾸던, 일종의 복음주의 서울대 단체 간사 생활을 하던 시절이 제 사역 여정에서 가장 핵심입니다. 간사 생활을 마치고 나서 거기서 얻었던 깨달음과 실천들을 가지고 영어로 논문을 쓰러 간 것이 유학생활이었습니다. 새삼 유학을 가서 엄청 공부를 많이 했다기보다는 이미 제가 공부하고 깨달은 것들을 영어로 표현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2001년에 귀국했고요. 2003년부터 숭실대 교수를 하면서 2006년까지 일산두레교회를 개척해서 풀타임 목회를 했습니다. 그때는 숭실대 교수 중에서 초임교수였기 때문에 행정의 짐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의 배려를 받아 가면서 풀타임 목회를 사실상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4년 동안에 교회도 성장하고 또 행정업무 감면(holiday) 시기가 끝나서 학교 행정에도 이바지해야 했기 때문에 학과장 직무대행 등 일을 맡으면서 목회를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가향교회에서 신학지도목사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가향교회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향교회는 지난 해 5월 1일에 개척했는데 양진일 목사님이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난 청년들과 제가 일산두레교회를 사임하면서 저와 함께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를 같이 섬겼던 10여명의 어른 교우들이 함께 세운 교회죠. 양진일 목사님이 담임목사님으로 수고하고 계시고 제가 신학지도목사로 함께 하면서 저는 한 달에 2번 정도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가향교회의 뜻은 십자가 향기 교회라는 뜻도 있고 가나안을 향해 가는 교회라는 뜻도 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교회라는 뜻이 보다 공식적인 의도와 해석이고요. 청년이 80여명, 어른이 40여명 정도로 재적인원은 120여명 됩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을 이 땅에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였고요.

 

하나님나라 운동을 우리가 꾸려가기 위해서는 급진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안양 비산동에 60여명의 형제자매들이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마을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인들이 함께 사는 수준과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가향교회의 신학적 지향점을 의식하면서 공동체생활을 훈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에서 이상적이고 작동 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생활, 공동체 생활을 가능케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해보는 거죠,

 

하나님나라 신학연구소를 세우셨는데 하나님나라 신학연구소에 대해 소개부탁드립니다.

 

하나님나라 신학연구소는 일산두레교회를 제가 사임하면서 거기에 있는 교우들과 교회가 일산두레교회와 저와의 계속적인 동역관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그 교회에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재정지원도 많이 해주었고 지금도 교회 교우들이 헌금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신학연구소의 가장 큰 목적은 이 땅의 모든 교회에 하나님나라 신학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의 목회는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실험하고 실행하고 확장하는 데 투신된 목회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 신학은 교회성장학보다 상위개념이고 기독교윤리실천 등의 하위 분과운동 등을 포함하는 상위적인 개념입니다. 우리가 받는 구원도 하나님의 다스림에 복종하기 위한 것이므로 교회와 기독교신앙의 모든 활동을 하나님의 통치에 자발적으로 복속시키는 데 두어야 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일선의 목회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중심 목회를 돕기 위해서 저술 활동을 하고, 성경 강좌도 열고, 워크숍이나 컨퍼런스 등을 열고 있습니다. 올해 가을에는 10월 말과 11월초 주간(10월 29-30, 11월 1-2일)에 김세윤 교수님과 제가 종교개혁 기념 절기 즈음해서 나흘 동안 특강을 하려 합니다. 저는 모세와 예언자의 하나님 나라 복음, 시편과 묵시문학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강의하고(10월 29-30일), 김세윤 박사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바울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각각 강의할 것입니다. 교우들의 접근이 용이한 교회를 빌려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하나님나라 신학의 관점으로 계속해서 성경을 주해하고 계시는데 하나님나라 신학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나님나라라는 말을 쓰신 분은 예수님이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가진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나라에요. 예수님의 관심은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다, 이렇게 보는 거죠.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우리의 목적인 구원에 목적을 두는 신학, 즉 구원론 중심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자애로운 돌보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신학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창한 신학, 바울이 주창한 신학이 하나님나라 신학이라고 보고요.

 

이 하나님나라 신학은 성경의 중심을 붙들자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모든 종교적 관심 – 구원, 내세, 천국,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와 열매 – 들이 하나님이 우리 개인과 공동체와 가정과 사회와 우주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예비적이고 전략적인 단계의 사건이라는 거죠.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충만하게 지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거죠.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하나님나라 신학은 하나님의 개인적․공동체적․세계적․우주적 통치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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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의 자애로운 통치, 그 통치에 기반하여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목회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 우리의 직장 생활, 우리의 직업, 전공 공부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의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거죠.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고 경외하는 거죠. 우리의 직장 생활은 하나님의 통치를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내 양심을 팔고 내 기독교 신앙의 일부를 훼손하는 것은 직장생활이 아니라 노예살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나라 신학에서는 직장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우리의 도덕성과 우리의 신앙적 세계관을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생계의 일터, 이것이 직장인거죠. 만약에 생물학적 목숨은 부지하도록 돈은 주지만 우리의 도덕성과 우리의 신앙의 큰 원리를 희생하면서 어떤 일을 요구하는 것은 직장생활이 아니라 노예노동이죠. 그래서 저는 일터 - 을지로, 충무로와 테헤란로 등 사무실 - 의 그 은밀한 의사 결정 과정, 예산의 집행과 기획,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과 기독교적인 덕목에 맞게 기획되고 집행되고 사용되는 것을 저는 하나님나라 신학의 실천이라고 보는 거죠.

 

하나님나라 신학으로 보면 그동안 우리가 개별적으로 이해했던 성경의 주제가 다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28장 18절부터 20절에 나오는 세계 선교 구절,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충만 경험,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20절에 나오는 희년 설교,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통치의 시각에서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성령충만한 이유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계급적, 계층적 기득권을 분해하여 거룩한 코이노니아를 만들기 위해서 성령충만한 것이거든요. 또 개별적으로 일어난 성령충만 운동이 사회적으로 집체적인 표현을 하면 희년이 되는 거에요.

 

우리 모두가 원주인에게 귀속되어야 할 행복을 일단 놓아주면 모든 행복의 정량들은 원주인을 찾아가요. 집착과 소유와 배타로 이루어냈던 기득권을 놓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이 땅에 누려야 될 기업의 땅을 찾게 되기 때문에, 즉 행복 추구권을 충족시키게 때문에, 성령충만하면 희년이 오는 거죠. 그래서 누가복음 4:16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사 성령으로 나를 충만케 하신 까닭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주의 은혜의 해, 즉 희년을 선포하게 하심이라’고 합니다. 성령충만하는 목적은 뭐에요? 신과 개인이 만나서 접선해가지고 저기 어떤 혹성 같은 신비한 세계로 탈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희년이 선포되고 축제의 공동체가 창출되는 것이 구원받고 성령충만받는 목적이죠. 하나님 나라의 신학으로 봐야만 우리 신앙의 모든 세부적인 주제들이 다 통전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고 대천덕 신부님께서도 20세기의 복음이 분열된 복음이었다고 하시면서 통전적인 복음을 강조하셨는데 하나님나라 신학도 통전적인 복음을 강조하는 신학인 것 같습니다.

 

예. 저도 1981년에 대천덕 신부님을 만나서 설교를 직접 들었습니다. 그 분이 천천히 하는 한국말로 ‘마태복음 28장과 누가복음 4장이 분열되어 있는 것’을 걱정하셨는데 저는 너무너무 옳은 말이라고 봐요. 그래서 제가 1986년 ESF 전국수련회에 대천덕 신부님을 초청합니다. 그때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어요. 대천덕 신부님의 잔잔한 메시지가 대단했고 그 분은 성령충만의 사회적 성격, 정치적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셨죠. 대천덕 신부님은 신학적으로 가장 균형잡힌 분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정의하시는 희년이란 무엇인가요?

 

성경에서 희년은 농업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농토가 가장 큰 재산이었던 농경사회에서 희년이 가지는 함의는 생존의 토대인 땅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오늘의 상황에서는 모든 가정이 자기 존엄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갖는 게 희년사상의 적용점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가정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일터를 갖는 게 희년사회입니다.

 

그리고 일터가 있더라도 천재지변이나 전쟁이나 질병을 통해서 삶의 기반이 무너지면 사회가, 마을이, 친척이 돌봐 주는 사회, 즉 삶의 기반이 무너진 사람들을 공동체가 돌보아 주는 것이 희년 사회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 500가정이 나오는 교회에 약 10가정이 삶의 터전을 잃었을 때 500가정으로 충분히 돌볼 수 있다고 보거든요.

 

희년사회는 행복의 총량이 제일 많은 사회입니다. 각 사람들이 그 사회에 소속되어서 기쁘고 각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안겨주는 공동체적인 안전망이 튼실한 사회, 이것이 희년사회죠. 그런데 자본주의 복지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도 희년사회를 자신도 모르게 지향합니다. 쿠바나 초기의 북한 사회주의, 망하기 전의 동독도 그런 사회를 꿈꾸었고 핀란드 등 기독교사회민주주의 계통의 국가도 사회 전체가 더불어 살아가려는 성숙한 마음들이 다 있죠.

 

공산주의와 우파 사회복지사상의 공통점은, 사회에서 낙오되어 소속감을 잃어버린 개인이 많이 발생하면 옳지 않다고 보는 것,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 국가에서는 국가의 세금을 가지고 차등적으로 했고, 스탈린 시대나 모택동 시대나 북한 초기 사회주의 국가시대에서는 계획 경제를 가지고 하려고 했죠.

 

그러니까 인간의 마음 속에는 완만한 합리성이 있어요. 사회 위기를 막아보려는 완만한 합리성은 각성한 개인의 마음에 들만큼 민첩하진 않지만 매우 느리게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갑니다.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토지문제도 결국은 완만한 합리성으로 해결될 거라고 봅니다.

 

희년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초에 대천덕 신부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토지와 자유>를 읽으면서 희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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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 출세하게 되면 악한 사람으로 바뀌더라고요. 저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어요. 그러니까 성실하고 유능한 것이 악한 건 아니에요. 대개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성실하고 유능하고 책임감이 많죠. 이건 악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성실하고 유능하고 책임감이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출세를 하게 되어 있어요. 출세를 하게 되면 반드시 권력 남용과 부패를 범하게 되고 패가망신하는 죄를 범해요. 이러한 악순환을 막으려면 개인적인 도덕성과 결단에만 맡기지 말고 법과 제도가 개인의 결단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과도하게 탐욕을 부리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는 법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희년사회는 개인의 창발성, 사유재산, 개인의 편차를 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편차와 자유가 다 인정되지만 공동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음의 땅으로 몰아낼 만큼 특정 개개인이 ‘무한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사회, 그렇게까지 개인이 탐욕적일 수 없는 사회, 그러한 사회가 희년사회입니다. 이러한 희년사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국가가 각각 그 자체의 모순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모두 지향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거죠.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 신앙 이전에, 나의 양심과 이성에 의해서도 지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범람하는 에너지를 가진 초과 지성, 초과 능력자들, 사자같이 용맹무쌍한 엘리트들이 풀을 먹기로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먹고 우정을 나누는 사회, 이런 사회가 희년사회입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교회나 개인이 희년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개인이 할 수 있는 희년 실천은 자신도 모르게 원 주인에게 돌아가야 될 기업, 땅을 다시 돌려주는 운동입니다. 대한민국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엄을 누릴 수있는 터전(직장, 집 등 사회안전망)을 나누자는 운동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무한 소유, 탐욕적이고 배타적인 소유욕을 극복해야 희년실천이 비로소 시작됩니다. 우리 스스로는 각자 내가 너무 많이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의 행복의 터전을 내가 앗아가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고 탐욕적으로 많이 소유하는 부를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부를 하늘에 쌓는다는 건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넣는다는 거거든요. 나에게 우상이 되어 있는 부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께 갖다 바치는 거죠. 다시 말해서, 부자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저는 이것이 가장 큰 희년실천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것은 성령이 충만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희년운동이 성령운동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희년운동이 성령운동이기에 하나님 주도적인 운동입니다. 은총이 왕노릇하는 운동입니다. 2000년 교회사를 되돌아보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희년실천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자기 재산을 바친 사람이 아주 많아요. 우리 교회사에는 자기 재산을 바쳐서 가난한 사람을 도왔던 미담이 끊임없이 있기 때문에 교회가 존귀해요. 교회는 보석처럼 빛나는 사랑의 실천이 끊임없이 수놓아져 있어요. 그게 희년 실천이에요.

 

그리고 교회에는 십일조로 생기는 엄청난 자산이 반드시 축적되게 되어 있어요. 이걸 가지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가꾸어 줘야 해요. 교회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바로 이 엄숙한 책임감수를 전제한 말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교회에 계속 누적되는 십일조, 이것이 희년운동의 작은 토대가 됩니다. 그걸로 다 모으면 고용도 알선하고,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대출)도 하고, 주택, 의료 등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겁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 의지하지 않고도 교회 그 자체가 하나의 나라가 되어야 해요. 교회가 정부가 된다는 말이죠. 교회가 정부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 운동이에요. 폭압적이고 강제적인 행정기구로서의 국가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의 자발성에 모든 것이 맡겨져 있는 거룩한 무정부주의 상태, 즉 협동조합 상태, 공상적 사회주의와 같은 거예요.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이 없는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했지만 사랑에 모든 것을 기대는 공상적 사회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보다는 성경의 이상사회 이상에 좀 더 맞는 거예요. 프루동. 생시몽, 오웬 등 이런 사람들이 맞아요. 계급투쟁을 통해서 얻은 사회주의는 계급투쟁을 유발하는 증오심을 연료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박해하고 죽이는 살인기계적인 정치제제을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안 됩니다. 아무리 단기간의 성과가 크고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공동체적인 자산을 향유한다 하더라도 공산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거룩한 무정부주의 운동, 로마서 13장 8~10절에서 말하는 사랑이 율법을 대신하는 자발적인 사랑이 실천되는 사회, 교회가 국가를 대신하는 사회가 희년사회라고 봐요.

 

<희년함께>에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깊고 넓게 공부하고 그것에 입각해 실천을 해야 합니다. 계몽운동 +시위를 조장하세요. 광화문에서 시위하고, 가두 행진도 하시구요. 국회 앞에서 하시고, 광화문 앞에서 하시고. 오십 명 시위단을 모집해서 계속 시위를 하세요. 기도하시고 축제처럼 평화 시위도 하시고 희년이상을 사회적 상식이 되도록 광범위한 계몽활동을 꾸준하게 감당하세요. 그래도 감옥에 가지는 않을 겁니다. 피켓 들고 시위만 해도 대단히 홍보 효과가 큽니다. 거리에 나가서 외치는 사람이 역사를 바꿉니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하세요. 운동의 지휘부에서는 대학자가 나와야 합니다. 헨리 조지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해요.

 

한국교회에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교회에 하는 얘기보다는 제가 저에게 하는 말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더 신실하게 순종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더 사무치게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만약 하나님의 통치를 사무치게 그리고 진실하게 경험한다면 제 주변에 하나님의 통치의 혜택이 전파되리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남에게 다그치기보다는 저에게 더 다그쳐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구요. 또 하나는 낙관주의를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건설이 더딜 뿐이고 이 땅에 이미 하나님나라 건설공사는 시작되었다, 우리 예수님과 바울의 길이 결코 유야무야 끝날 것이 아니다, 희망을 갖고 낙심하지 말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오랫동안 청년사역에 몸담으셨고 학교와 교회에서 청년대학생들을 많이 만나실텐데 이 시대 청년들에게 필요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시대 청년들은 공민의식을 더 확보해야 해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운명처럼 바꿀 수 없는 고정불변의 실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직면한 대한민국체제는 날림공사로 지어진 건물과 같아요. 새로운 건물을 짓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불안정한 가건물과 같아요. 그래서 청년세대가 대한민국에 대해 고도의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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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우리 시대의 중심이슈들, 쟁점들, 공공의 문제에 대해 해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주택, 금융, 세계시장, 고용문제, 남북통일문제, 교육, 환경 및 생태계 문제에 대해 세밀히 공부해야 합니다. 지성이 발달하고, 주인의식이 많은 청년세대에 의해 이런 희년사회는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책을 싫어하고 지성을 경시하고 사색을 싫어하면 파라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채플에서 하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하기도 하고 상담 시간에 하기도 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지금 두려움의 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니아연대기’에 나오는 눈의 제국의 하얀 마녀가 지배하는 세상처럼 희망을 갖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봄이 온다는 걸 믿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기 어려워요. 하얀 마녀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시대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용감무쌍한 청년지성인들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있으시면 나눠주세요.

 

숭실대 교목실장 보직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12,000여명의 학우들과 630여명의 교직원들이 있는데 이들과 함께 우리 학교의 기독교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데 교목실이 잘 쓰임받을 수 있게 기도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지치고 피곤한 때인데 다시 한번 청년의 기상과 원초적인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말씀 통독, 말씀 묵상 등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새롭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201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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