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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1] 기독교경제윤리란 무엇인가 / 고영근

작성자 : 관리자 (210.178.67.***)

조회 : 3,249 / 등록일 : 19-03-04 19:54

 

 

 

물신숭배 시대, 기독교경제윤리가 필요하다
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1 : 기독교경제윤리란 무엇인가

 

 

 

고영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지금 이 시대는 돈이 최고인 물질만능주의와 물신숭배의 시대라는 사실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되는 세상이다. 심지어 기독인들마저도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고, 비교하고, 질투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렇다. 우리 기독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이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 매일 오락가락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돈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못 박아 말씀하셨다. 이처럼 물질적인 경제문제는 신앙의 핵심을 차지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교회에서는 "모여라, 돈 내라, 예배당 짓자"는 돈 얘기는 많이 하지만, 신도들이 구체적인 삶의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이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는 기독교경제윤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목회자들도 신도들이 겪는 구체적인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할지 모를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물신숭배 풍조 속에서 우리 기독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경제윤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


또 교회와 목회자, 신학자는 현대사회의 여러 경제문제에 관한 성경 말씀과 기독교경제윤리를 가르침으로써 기독인들이 세상 속에서 성경 말씀과 기독교경제윤리를 실천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물신숭배의 시대, 지금 한국교회는 기독교경제윤리가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


물질적인 경제문제가 영적인 신앙과 무슨 상관인가


기독교경제윤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 어떤 기독인들은 물질적인 경제문제가 영적인 기독교 신앙과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한다. 교회 잘 다니고, 봉사 잘하고, 성경 잘 읽고, 기도 잘하면 됐지 무슨 경제얘기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작 현실적인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면서 살고 있을까?


사람이 돈을 벌거나 쓰면서 사는 한 모든 사람은 경제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또한 현실의 경제문제에 있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경제학과 경제 윤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지금 돈을 벌거나 쓰면서 살고 있다면 자신만의 경제학과 경제 윤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설립한 고(故) 대천덕 신부는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홍성사)>에서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문제는 기도와 영적 전쟁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영적인 문제는 현실의 삶 즉, 실제적인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성(聖) 베네딕트는 이를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라"고 짧게 표현했다.


많은 기독인이 대천덕 신부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대천덕 신부가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비단 대천덕 신부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비롯해 열두 사도와 속사도, 교부들, 종교개혁자들이 경제문제에 대해 수없이 말하고 가르쳤지만, 정작 대부분의 기독인은 안타깝게도 이를 잘 모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신도들이 깨어나 기독교경제윤리에 대해 배워야 한다. 교회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찾아서라도 배워야 한다.


이원론과 영지주의의 덫에 빠진 한국교회


예수님을 비롯해 우리보다 앞서 간 수많은 신앙의 증인들이 가르쳐 왔듯이, 기독교 신앙은 물질적인 경제문제와 영적인 신앙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분리된 이원론이 아닌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하나로 통합된 일원론에 가깝다. 즉 물질적인 문제는 영적인 문제다.


이원론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닌 고대 헬라 철학(헬레니즘)에서 온 이단적인 것이다. 초대교회도 바로 이 영지주의 이원론과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유대 헤브라이즘과 기독교는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선하신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강조한다. 기독교는 물질세계와 육체, 노동을 천시하고 경멸하는 헬라 철학이나 영지주의 이원론의 창조 신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은 영지주의 이원론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은 영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결국 물질을 추구하게 되고 물질의 포로가 된다.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이 딱 그렇다. 한국교회도 점점 맘몬의 포로가 되어 돈, 권력, 섹스를 숭배하면서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곳곳에서 교회 재산을 둘러싼 분쟁과 성(性) 추문이 들려온다. 한국교회는 지금부터라도 영지주의와 이원론에서 돌이켜 물질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다스릴지 배워야 한다. 기독교경제윤리 교육이 시급하다.


인간은 영혼육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영혼육이 하나로 통합된 존재이듯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다. 육체 없이 영혼만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런 존재는 귀신에 가까울 것이다. 반대로 영혼 없이 육체만 있는 인간도 없다. 그런 존재는 좀비에 가까울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인 육체와 영적이고 정신적인 영혼이 통합된 존재다.


온전한 사람이시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로 이 땅에 오셨다. 이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선한 물질세계를 창조하셨고 성자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또한 성부 하나님이 노동하시니 성자 예수님도 노동하신다. 기독교는 물질세계와 육체, 노동을 천시하고 경멸하는 영지주의 이원론과 정반대다. 성부 하나님의 물질세계 창조와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 두 분의 노동에는 이원론과 영지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인간에게서 영혼육을 분리할 수 없듯이, 또한 하나님이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육체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같이 일하셨듯이, 기독교 신앙에서는 물질적인 경제문제와 영적인 신앙의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 물질적인 경제문제는 곧 영적인 신앙의 문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물질적인 경제문제에 대한 기독교경제윤리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경제윤리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기독교경제윤리라는 게 과연 무슨 뜻일까? 기독교경제윤리는 기독교, 경제, 윤리라는 세 단어가 결합된 말이다. 기독교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설명해 보라고 하면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 단어다. 마치 하나님이나 공기, 영혼, 사랑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매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국어사전은 기독교를 "성서를 경전으로 삼고 유일신인 여호와와 그의 아들 예수를 믿는 종교. 따라서 기독교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를 말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기독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경제윤리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자 예수님의 가르침인 성경 말씀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경제윤리라는 말에서 경제는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은 경제를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 세상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經世濟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경제에 대한 정의다. 기독교적인 경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정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적인 경제는 무엇일까?


경제(economy)라는 말은 청지기(집안 살림하는 사람, 집사)를 뜻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모스(oikonomos)에서 유래했다. 원래 경제라는 말은 청지기를 뜻한다. 집안 살림을 맡아서 살림살이하는 것과 세상의 여러 경제는 모양과 크기만 다를 뿐 사실상 본질은 같다. 기독교적인 경제는 소유(ownership)가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맡아서 살림살이하는 청지기(stewardship)적 소명을 뜻한다.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열린책들)>에서 경제를 "생명을 낳고 기르고 보존하는 모든 일"이라고 정의했다. 참 공감되는 정의다. 마지막으로 기독교경제윤리라는 말에서 윤리는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은 윤리를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을 뜻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기독교 윤리는 기독인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기독교적인 도리나 규범을 뜻한다.


기독교, 경제, 윤리라는 말의 뜻을 종합해 보면 기독교경제윤리란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여러 경제활동에 대해 하나님의 성경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인이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기독교적인 도리나 규범"을 뜻한다.


황봉환 교수는 <기독교경제윤리(예영커뮤니케이션)>에서 "인간의 경제 행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신학의 원리를 토대로 그리스도인의 경제활동을 도덕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기독교경제윤리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인이 하는 경제 행위의 목적이 하나님과 이웃과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자신의 경제 행위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인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물질적인 경제생활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다. 예수님께서 정의하신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 것처럼, 하나님과 이웃에 관계된 경제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핵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경제문제에 대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자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또 더 나아가 가정의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살림살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공통적인 경제문제는…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공통적인 경제문제를 생산의 3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으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토지문제인 땅과 집(부동산)문제에서는 땅과 집의 소유 양극화, 이로 인한 빈부 양극화, 부동산 투기와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경제/금융 위기,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주거 및 상가 세입자/철거민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


노동문제인 일자리 문제에서는 실업 문제를 비롯해 노동의 양극화(정규직과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 착취, 노사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 문제인 빚 문제에서는 가계와 기업, 국가의 부채 증가, 개인/기업/국가의 신용 불량과 파산, 사채/고리대금/채권 추심 문제가 수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성경에서는 토지문제에 대해 토지의 공평한 분배(민 26:52~56), 지계표 이동 금지(신 27:17), 토지의 영구 매매 금지(레 25:23), 토지 사용권을 희년까지만 한시적 매매 허용(레 25:15), 토지 무르기(레 25:24), 희년에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 회복(레 25:10, 28)을 말씀하고 있다.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안식년과 희년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품꾼과 종의 상태에서 해방하도록 말씀하고 있다(레 25:33~55). 자본 문제에 대해서는 안식년에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하고(신 15장), 가난한 동족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다(레 25:33~55).


이런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토지/주택(부동산)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토지와 주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노동/고용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노동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여 땀 흘려 열심히 일해서 만든 노동의 열매를 누리게 하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자본/대부에 대해서는 가난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이자를 받지 말고 꾸어 주고,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은 탕감해 주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경제문제에 관한 여러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현실의 구체적인 경제문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경제윤리다.


한국교회는 하루빨리 기독교경제윤리를 가르쳐야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금 전 세계의 경제 현실은 이런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돈을 제일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은 차치하고 기독인들마저도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기독교경제윤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기독인들이 경제문제에 있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하나님 말씀에 정반대되는 일을 할 때도 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와 기독인들은 하루 빨리 경제문제에 대한 기독교경제윤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와 기독인들은 경제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하나님나라에 점점 더 가깝게 만들어 가야 할 소명과 책임이 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힘써 이루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나라와 모든 국민이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변함없는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오히려 반대로 행한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고통과 죄악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특별히 신앙의 핵심을 차지하는 경제문제에 대해 우리 기독인들부터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기독교경제윤리를 배우고 실천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나라에 가깝게 만들어 가야 한다.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토지/주택(부동산)문제에 관한 성경 말씀과 기독교경제윤리를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오셔서 한국교회 모든 신도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기독교경제윤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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