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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12] 초대 교부들이 가르친 기독교 경제 윤리 / 고영근

작성자 : 관리자 (210.178.67.***)

조회 : 2,769 / 등록일 : 19-03-04 20:59

 

 

 

초대 교부들이 가르친 기독교 경제 윤리
기독교 경제 윤리(12) 초대 교회의 희년 실천으로 돌아가라

 

 

 

고영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탄생한 초대교회는 자발적인 경제적 코이노니아(Koinonia)를 통해 예수님의 희년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토지와 자본을 공유로 하고 공동 생산, 공동 분배하는 공산주의 공동체가 아닌 필요가 있을 때마다 땅과 집을 스스로 팔아 나누는 자발적인 희년을 실천하였다.


이런 초대교회의 경제적 코이노니아는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기독교는 점점 돈과 권력을 추구하면서 타락하게 된다. 그러면서 초대교회의 자발적인 희년 실천과 경제적 코이노니아도 점차 사라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희년과 경제적 코이노니아를 외쳤던 사람들이 바로 초대 교부들이다.


김유준 교수는 <희년, 한국 사회, 하나님 나라>(홍성사)에서 초대 교부들은 4세기까지 이어진 수많은 박해와 역경 속에서도 순교의 신앙으로 참된 제자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며 로마제국 당시 교부들은 거대한 로마제국의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탐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정의로운 삶을 살도록 외치면서 선지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대박해가 지난 후 많은 교회 성직자들은 지주 계층에 속하게 되었고 교회는 3세기 초부터 재산을 취득하기 시작했다고 김유준 교수는 설명한다. 또 초대교회의 성직자는 성직과 함께 다른 직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야 했지만 점차 전임 사역자가 생기고 성직록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4세기에는 황제나 후원자들의 유산과 헌금으로 교회가 대토지를 획득했다고 김유준 교수는 말한다.


초대 교부는 희년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한 선지자


초대교회는 희년 말씀을 어기면서 많이 가지고 있던 땅과 집을 자발적으로 팔아 나눔으로써 부흥한 것과는 정반대로 교회가 땅과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부패하였다. 자발적인 희년 실천이 교회에서 점점 사라지던 시대에 초대 교부들은 토지를 독점하여 인간을 노예화하는 당시의 불의한 경제체제를 정의로운 희년 사회로 개혁하도록 설교 강단에서 외치면서 삶의 모범을 보였다. 초대 교부들은 한마디로 희년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한 선지자였다.


초대 교부들은 토지사유제를 정당화하는 당시의 제도와 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토지와 자연 자원의 사적 소유는 무신론 혹은 우상숭배라고 가르쳤다. 초대 교부들은 토지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생득권(birthright)을 주장하면서 토지 독점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경제적 코이노니아를 강조했다. 교부들이 외친 것은 다름 아닌 초대교회의 자발적인 희년 실천과 경제적 코이노니아로 돌아가자는 말이었다.


김유준 교수는 초대교회의 경제적 코이노니아의 이상은 4세기 기독교 공인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갔지만 수도원 생활을 통해 새로운 장이 열렸고 금욕과 청빈의 삶을 강조한 수도원 운동은 물신 숭배를 거부하였으며 암브로시우스,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같은 4세기 교부들은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공동생활의 모범을 보였다고 말한다.


또 초대 교부는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공동체 안에서의 참된 풍요로움이 무엇인지 삶을 통해 보여 주었고 토지에 대한 소수의 독점적 권리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천부인권으로서 희년 사상을 강조하였다고 김유준 교수는 말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 부의 목적은 소유와 축적이 아닌 사용과 자족, 코이노니아


그렇다면 초대 교부가 말한 기독교경제윤리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스는 부와 재산의 목적을 한마디로 자족(autarkeia)과 코이노니아(Koinonia)로 요약했다. 또한 부의 목적은 사용이며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클레멘스는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의 코이노니아 속에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인간들과 함께 코이노니아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부도 다른 사람들과 코이노니아 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클레멘스는 가르쳤다. 또한 클레멘스는 인간의 소유권은 본질적으로 코이노니아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클레멘스는 물질적 재산이 악하며 가난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반대했다. 클레멘스는 절대적 소유권에 대해서도 반대했지만 절대적 무소유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클레멘스는 물질적인 부는 공급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며 부의 진정한 본질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절대적 소유권에 관한 로마법 철학을 거부하면서 물질적인 부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며 대다수가 빈곤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소수가 사치스럽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선포했다. 클레멘스는 오히려 부를 나눔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고 부를 생산하는 원천인 토지는 모든 사람이 사용하도록 공유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 : 토지에 대한 권리는 숨 쉬는 권리와 같다


가이사랴의 감독 바실리우스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세속을 떠났다가 370년에 가이사랴의 감독인 유세비우스가 죽자 후임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바실리우스는 모든 사람이 숨 쉬는 공기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바실리우스는 토지의 생산 소득은 존재하는 만물을 몸소 직접 보전하시며 살아 있는 만물의 생존을 위해 땅을 생산적으로 만드시는 하나님 덕분에 생긴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님의 섭리가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며 이런 불공평은 틀림없이 인간의 죄악이 가져온 것이라고 바실리우스는 생각했다. 바실리우스는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아버지이시며 공급자이시기 때문에 소수의 부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사용하도록 만드신 토지에 대한 약탈과 강탈을 멈추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바실리우스는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하면서 인간이라는 한 가족 안에서 동일한 공동 자연에 참여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 토지를 가로채 공유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미친 짓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는 수사학과 법률을 공부해 변호사로 일했다고 한다.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개혁을 추진했고 밀라노의 감독이 되자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암브로시우스도 386~389년경에 토지사유제를 비판하는 <이스르엘인 나봇>을 저술하여 땅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선포했다. 또 <6일간의 천지 창조>에서는 잠언22:28절 말씀을 언급하며 지계표를 옮기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면서 재산에 관한 개인의 사적 소유권은 공동의 목적에 의해 제한되어야 하며 참된 필요가 소유권의 한계를 결정한다고 가르쳤다.


암브로시우스는 자연에 따르지 않고 무제한적으로 토지를 가로채 땅으로부터 자연의 동료 공유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일갈했다. 암브로시우스는 자연은 원래 모든 사람을 위해 공유물로 만들어졌다고 가르쳤다.

 

암브로시우스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공동으로 소유하도록 창조하셨고 자연은 공동 권리의 원천이며 사적 권리는 공동 권리를 강탈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또 자연 안에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과 함께 자연의 평등한 혜택에 대한 인간 존재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다.


암브로시우스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줄 때 진정한 의미의 재물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을 채무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암브로시우스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다시 되돌려 주는 반환 행위로 보았다. 또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어 있는 것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천부인권을 박탈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암브로시우스는 재산과 부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선하거나 악하다고 보았으며 소유권의 본질은 천부인권을 박탈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부여받은 권리를 즐기도록 돕는 수단이라고 가르쳤다. 암브로시우스는 어떤 사람이 재물을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때 오히려 우리가 공유하는 재물을 잃게 된다고 역설했다. 또 무제한적인 축재(蓄財)를 합법화하여 탐욕을 조장하면 오히려 빈곤을 가져오게 된다고 가르쳤다.


콘스탄티노플의 요한 크리소스톰 : 공기, 물, 불, 태양, 토지는 인류 공동의 것


요한 크리소스톰은 안디옥 교회의 설교자였다가 후에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되었다. 감독으로 임명된 그는 곧바로 많은 개혁에 착수하여 감독직의 사치를 금하고 자신의 소득을 병원 설립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크리소스톰은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부자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것을 금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교구의 재산 관리업무를 재편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빈곤한 사람이 있는 가운데서 사치를 누리는 것을 거부한 크리소스톰은 동로마제국 황제의 아내 유독시아를 나봇의 토지를 강탈한 이세벨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여 오크 총회에서 감독직이 해임되어 추방되었다가 대중의 인기 덕분에 다시 복귀되었지만 계속 부자들에 대항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다가 추방된 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크리소스톰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대해 주석하면서 자신의 소유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강도 행위이며 부자들이 상속받은 재산은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부를 부자들이 강탈했기 때문이라고 크리소스톰은 말했다.


재물을 소유하는 목적은 간음과 술 취함, 폭식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함이며 필요 이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누어 주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크리소스톰은 선포했다.


크리소스톰도 다른 교부들처럼 모든 창조물의 선함을 인정했다. 크리소스톰은 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악이나 불법이 부를 이용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간이 재물을 이용하는 것이지 재물이 인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크리소스톰은 인간이 다스려야 할 물질이 오히려 인간을 다스리는 우상화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인간이 재물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물신을 숭배하는 우상숭배라고 지적했다.


크리소스톰은 막대한 재산 상속이야말로 불의한 것이며 부유한 소수는 모든 이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부자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부자들이야말로 게으름 속에서 엄청난 부를 즐기며 일하지 않는 것이 불의하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가난한 자들이 최선을 다해 일해도 가난한 건 강탈과 재난, 질병 등 수천 가지의 역경들 때문이라고 반론했다.


크리소스톰은 최초의 신적(神的) 분배 상태에서는 누구도 부유하거나 가난하지 않았으며 현재의 불의한 상태를 법이 정당화한다면 그 법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법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로마법에 근거해 토지에 대한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누구도 땅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크리소스톰의 설명이다.


토지에 대한 만민의 평등한 권리는 자연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이는 마치 모든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권리처럼 당연하다고 크리소스톰은 가르쳤다. 크리소스톰은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 공기, 물, 불, 태양, 토지를 열거하면서 이런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만드셨다고 말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 토지사유제는 하나님의 법이 아닌 황제들의 법


히포의 감독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밀라노의 교부 암브로시우스에게서 직접 세례를 받은 후 아프리카로 돌아와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당시 아프리카에는 노예를 기반으로 한 대토지 사유제(라티푼디움)가 있었으며 6명의 대토지 소유자가 아프리카 토지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클레멘스와 마찬가지로 부의 목적을 소유와 축적이 아닌 사용으로 보았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다른 교부들보다 더 금욕적인 자세로 '오직 하나님께만 즐거움(Solo Deo fruendum)'을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재물은 사용하는(uti) 것이지 즐기는(frui)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만 즐거움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재물이 평안을 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재물을 악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재물을 부정하게 소유한 것이며 부정한 소유는 다른 사람의 재산임을 의미한다고 가르쳤다. 즉 재산을 올바르게 사용할 때만 소유권의 참된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부자들의 남는 물건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필수적인 것이며 남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부자들의 남는 여분의 재산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의 뱃속이 곳간보다 안전하며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은 내세에서 상급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필요 없는 남는 재산을 추구하는 것은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즐기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자들은 자신의 소유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원래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토지사유제에 대해 반대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가진 것은 어디에서 나서 소유한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토지와 땅의 풍성함은 주님의 것이다.(시 23:1)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을 동일한 흙에서 만드셨고 그분께서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을 동일한 땅 위에서 기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법으로 '이 땅은 내 것이고 이 집도 내 것이며 이 종도 내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의 법에 의한 것이며 황제들의 법에 의한 것이다"고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네가 부자일지라도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너는 여기에서 모든 것을 발견한 것이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너도 빈 몸으로 태어났다. …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태어나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았음에도 왜 주님의 것을 나누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가난의 부담이 무엇인가? 가진 게 없다는 것이다. 부유함의 부담이 무엇인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가지는 것이다. …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자의 부담을 함께 지라. 또한 그로 하여금 네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부담을 덜게 하라. 그러면 너희의 부담은 동등해질 것이다. 너희 둘은 이 세상의 순례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이 부유함과 가난함을 함께 공유해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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