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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16] 노동운동의 시조는 웨슬리의 감리교회 / 고영근

작성자 : 관리자 (210.178.67.***)

조회 : 2,399 / 등록일 : 19-03-04 21:23

 

 

 

노동운동의 시조는 웨슬리의 감리교회 

기독교경제윤리(16) 성화의 증거는 경제적 청기기의 삶

 

 

 

 


고영근


존 웨슬리는 감리교회의 시조로 잘 알려져 있다. 말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뜨거운 전도자의 삶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교회에서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웨슬리가 경제에 대해 가르친 것을 교회에서 들어 본 적 있는가?


웨슬리가 돈에 대해 가르친 유명한 세 가지 원리(열심히 벌어라, 열심히 저축하라, 열심히 주어라)는 아마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존 웨슬리와 그로 인해 만들어진 감리교회가 전 세계에서 노동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했고, 노예해방과 여성해방운동 등 수많은 사회경제 변혁 운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웨슬리는 엄격한 경제적 청지기의 삶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살라고 가르쳤다. 웨슬리는 평생 동안 3만 파운드를 벌었지만 매년 28파운드로만 생활하면서 나머지는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웨슬리는 평생 동안 수입의 10분의 9를 선교와 구제를 위해 썼다고 한다. 그가 죽을 때 남긴 것은 은수저 한 벌과 몇 페니였다. 이렇게 웨슬리는 청빈한 삶의 모범을 몸소 보여 주면서 복음 전도와 사회경제 개혁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불태우다가 불꽃처럼 하늘로 돌아갔다.


완전한 성화에서 나오는 웨슬리의 경제윤리


먼저 웨슬리의 경제윤리 형성에 영향을 미친 그의 신학에 대해 살펴보자. 김홍기 교수는 <존 웨슬리의 경제윤리>(대한기독교서회)에서 웨슬리의 경제윤리에 영향을 미친 그의 신학은 복음적 신인협조설, 행동주의,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 성화, 은총의 낙관주의, 희년사상(현재적 천국으로서의 희년, 우주적 성화의 회복으로서의 희년)이라고 요약한다.


루터와 칼뱅이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해 얻는 구원을 강조한 반면 웨슬리는 이신칭의를 인정하면서도 완전한 성화를 강조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두 가지 문제에서 신학자들은 입장이 엇갈린다.


루터와 칼뱅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대체로 죄를 짓는 방향으로 굽어 있는 노예 의지에 불과하다고 보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얻는 구원과 구원 이후 성령을 통해 인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화를 강조한다. 루터와 칼뱅은 중세 교회의 공로 사상에 반대하여 인간에게 공로의 여지를 남기려 하지 않았다.


반면 웨슬리는 이신칭의를 인정하면서도 성화에서는 성령이 먼저 역사하지만 인간도 자유의지로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협조를 통해 성화가 이루어진다는 웨슬리의 신인협조설(Synergism)에서 웨슬리의 경제윤리와 행동주의(activism)가 나온다. 즉 구원의 출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되지만 완전한 성화에는 믿음과 함께 인간의 선한 행동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웨슬리가 주장하는 완전한 성화는 그의 구원론과 인간론에서 나온다. 웨슬리는 성화의 삶을 살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는다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웨슬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신칭의로 얻는 구원보다 구원 이후의 성화된 삶이다. 즉 성화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다. 즉 웨슬리의 구원론은 성화론과 한 몸이다.


개인과 사회가 함께 성화되어야


웨슬리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성화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즉 성화는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성화는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웨슬리는 생각한다. 개인이 성결하게 사는 것이 소극적인 성화라면 세상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적극적인 성화라는 말이다.


웨슬리는 인간의 죄를 보면 성화의 완성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인간의 죄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 크기 때문에 죽기 전에 이 땅에서도 완전한 성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성화는 죽음 뒤 영화(Glorification)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며 완전한 성화란 죄가 전혀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평생 동안 해야 하는 과정이며 무의식적인 죄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개인의 완전한 성화뿐 아니라 사회의 완전한 성화 즉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믿는다. 웨슬리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하나님나라는 미래적이고 초월적이지만 상대적인 하나님나라는 이 땅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웨슬리는 미래적 하나님나라와 현재적 하나님나라의 근거를 희년에서 찾는다. 이런 웨슬리의 생각은 그의 희년 사상으로 연결되어 노예해방과 여성해방, 노동운동, 사회 변혁 및 제도 개혁 운동으로 발전한다. 웨슬리 신학과 경제윤리의 핵심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완전한 성화로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성화가 없으면 구원도 없다


그렇다면 웨슬리는 어떤 경제윤리를 가르쳤는지 살펴보자. 웨슬리도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대로 경제윤리의 근거를 청지기 의식에서 찾는다.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도덕적 형상(의로움과 거룩함), 본성적 형상(지정의), 정치적 형상(만물을 돌보고 관리하는 청지기)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형상 중에서 도덕적 형상은 완전히 타락했으며 본성적 형상과 정치적 형상은 부분적으로 타락했다고 웨슬리는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타락한 도덕적 형상(의로움과 거룩함)을 회복하면 부분적으로 타락한 본성적 형상(지정의)과 청지기로서의 정치적 형상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고 웨슬리는 믿는다.


여기서 웨슬리의 경제윤리는 청지기로서의 정치적 형상과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은 완전한 성화의 삶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경제적 청지기로서의 삶도 새로워진다는 것이 웨슬리 경제윤리의 핵심이다.


웨슬리는 성화의 삶 중에서 경제적 성화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의 성화된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사와 물질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즉 가난한 이웃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웨슬리는 가르쳤다.


웨슬리는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면서 경제적 청지기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완전한 성화를 이룰 수 없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가르쳤다. 즉 청지기적인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은 성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경제적 청지기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삶이라고 웨슬리는 가르쳤다.


열심히 벌고 저축하여 주어라


웨슬리는 돈 사용의 3대 원리로 "열심히 벌어라, 열심히 저축하라, 열심히 주어라"를 강조했다. 제1원리인 "열심히 벌어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재능을 사용하여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을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즉 건전한 직업과 근면한 노동을 웨슬리는 강조했다.


제2 원리인 "열심히 저축하라"는 자신과 가족의 필요를 채우고 남는 것은 사치나 방종, 향락을 위해 쓰지 말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저축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웨슬리가 금욕주의를 가르친 것은 아니다. 검소한 생활을 하라는 말이다.


제3 원리인 "열심히 주어라"를 웨슬리는 가장 강조했다. 열심히 버는 것과 저축하는 것은 바로 열심히 주기 위한 것이라고 웨슬리는 가르쳤다. 웨슬리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 16:9)"는 말씀에 근거하여 남는 부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자신을 위해 돈을 벌고 저축하지 말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하라고 웨슬리는 가르쳤다.


웨슬리는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은 가장 많은 것을 나누어야 할 책임이 있으며 자신과 가족의 필수적인 의식주와 편리한 생활을 위해 돈을 사용하되 그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청지기가 되라고 가르쳤다.


또 웨슬리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는 말씀을 많이 인용하면서 돈 사랑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웨슬리는 더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행복하거나 만족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웨슬리는 자신의 말년에 평생 동안 청지기적인 그리스도인을 50명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웨슬리는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고 봉사하는 운동을 평생 동안 했다. 웨슬리와 감리교회는 당시 영국의 수많은 가난한 사람과 고통 받는 사람을 찾아가 그들을 위해 일했다. 웨슬리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무료 진료소 및 공동체, 가난한 아이를 위한 기독교 학교, 홈리스를 위한 나그네 친구회, 빈민 무이자 대부 신용조합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회 구제 및 봉사 운동을 펼쳤다.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든 감리교회


웨슬리는 물질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돕는 사회 구제 및 봉사 운동뿐 아니라 불의한 사회제도와 법을 개혁하는 사회 개혁 운동도 함께 했다. 웨슬리가 살았던 당시 영국은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온갖 경제적 불의와 부작용이 발생하던 시대였다.


인클로저(enclosure)로 인해 땅을 잃은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와 날품팔이 도시 빈민이 되었고 이로 인해 발생한 주거 문제와 노동문제, 건강 문제 등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상황이었다. 이런 끔찍한 상태에서 웨슬리는 고통당하는 도시 빈민과 노동자, 광부, 농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면서 희년 운동을 했다.


웨슬리와 감리교회는 영국 노동자들의 끔찍한 상황을 보고 노동운동을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한국교회에서는 노동운동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면서 좌파 빨갱이로 바라보지만 전 세계 노동운동의 시조가 바로 존 웨슬리와 감리교회라는 사실을 알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웨슬리는 노동 영역을 기독교 윤리를 적용해야 할 하나님의 영역으로 보았고 노사 관계도 윤리적인 관계로 보았다.


웨슬리 당시 산업혁명의 진행에 따라 도시 빈민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최초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당시 최초로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바로 감리교회가 만든 것이었다.


노예해방과 여성해방운동도


웨슬리는 가난한 사람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다양한 형태의 가내공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는데 여기서 수많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나왔다. 당시 광부 노동운동 지도자 12명 중에서 9명이 감리교 설교자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 최초의 노동조합은 감리교회의 속회를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에서는 감리교회의 속회처럼 매주 1페니씩 노조원이 노조 지도자에게 헌금하면 노동운동을 위해 사용했다. 감리교회의 속회 지도자들과 지역 설교자들도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감리교회는 노조 조직화 기술, 협동 행동의 중요성, 친교의 기쁨 등을 가르쳐 주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보편화된 노동조합의 원조와 모태는 바로 존 웨슬리와 감리교회였다.


웨슬리는 노동운동뿐 아니라 노예제도를 공격하면서 노예해방 운동도 벌였다. 노예무역을 폐지한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존 웨슬리가 평생 동안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웨슬리의 감리교회는 노예해방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여성해방운동도 벌였다. 웨슬리는 지옥과도 같은 당시 교도소의 잘못된 제도와 인권 침해를 개혁하는 것뿐 아니라 죄수들을 돌보면서 교도소 목회도 시작했다.


부동산 상속과 토지 독점화에 반대


한편 웨슬리는 루터와 칼뱅처럼 사유재산은 인정했지만 사유재산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웨슬리도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대로 재산에 대해 소유가 아닌 청지기 의식을 강조했다. 웨슬리는 재산에 대한 권리는 올바른 사용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면서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겨 주되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웨슬리는 재산 상속과 부동산 상속에 반대하였고 토지와 농장의 독점화에도 반대했다. 웨슬리는 어떤 농장도 일 년에 100파운드 이상 임대료(지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웨슬리는 어떤 상황에서는 정부의 재산 공유 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부의 분배를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웨슬리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폐지하려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웨슬리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는 인정하지만 독점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통제, 부의 재분배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홍기 교수는 <존 웨슬리의 경제윤리>(대한기독교서회)에서 웨슬리는 자유방임 시장경제(laissez-faire)에 의한 독점화에 대해 분노하였으며 경쟁을 부추기는 자유무역과 자유방임 시장경제 체제를 거절하였고 그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돈과 식량을 재분배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산 웨슬리


김홍기 교수는 웨슬리가 아담 스미스와 아담 페르구손의 시장경제 이론을 비판하였으며 빈곤을 증대시키는 현상을 정부가 조절하고 분배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말한다. 웨슬리는 식량 궁핍의 원인이 고용 체제에 있다고 보았고 고용 체제의 개혁이 식량을 주는 것보다 중요하며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도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분배와 나눔, 평등한 사회구조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특히 웨슬리는 빈곤의 원인이 게으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악하고 악마적인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면서 가난과 실업은 사회적 불평등 체제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웨슬리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웨슬리는 영국의 부자들과 정치가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세금제도 개혁도 강조했다. 웨슬리는 국가 경제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발전해야 하며 가난한 사람이 세금 부담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처럼 존 웨슬리는 복음전도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사회 구제 및 봉사를 넘어서 사회제도 개혁 운동까지 모두 하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자신의 한 평생을 아낌없이 바쳤다.


이런 웨슬리의 공로로 인해 지금 전 세계에서는 노예가 해방되었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되었으며 노동조합이 생길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사회 복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웨슬리가 자신의 평생을 걸고 했던 사역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희년의 하나님나라'였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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