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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할 두 권의 책 연재1] 지금의 위기는 기둥이 흔들리는 위기다

작성자 : 희년함께 (219.254.37.***)

조회 : 1,237 / 등록일 : 22-06-22 16:57

[세계를 구할 두 권의 책 연재1] 지금의 위기는 기둥이 흔들리는 위기다

 

세계를 구할 두 권의 책

- 김회권의 자비 경제학과 강인태의 하비루의 길비교 서평 -

 

 

 

 

. 지금의 위기는 기둥이 흔들리는 위기다

 

 

남기업(희년함께 공동대표/토지+자유연구소 소장)

 

 

기독교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비판은 무엇일까? 마르크스가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하는 글에 남긴 짧은 문구가 아닐까? 마르크스는 그 글에서 종교, 즉 기독교가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고 민중의 계급 투쟁의 의지를 마비시킨다고 일갈했다. ‘계급 투쟁이 역사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보는 변증법적 유물사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기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 비판은 오늘날에도 적확하다.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급 투쟁의 의지대신에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을 넣어보라. 바로 수긍하게 된다. 김회권은 자비 경제학서문에서 인민의 아편이 기독교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오해라고 말하고 있지만, AD 313년 공인된 이후 기독교는 한 번도 저 비판을 제대로 극복한 적이 없다고 본다.

 

한편 한국 사회에서 주류 기독교가 가장 불의한 정치 집단에 친화적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대 사회적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1) 기독교는 이제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을 제공하지도, 어두운 역사를 밝히는 동력을 기대할 수 없는 종교로 전락했다. 입으로는 평화와 긍휼을 말하나 실제 행동으로는 갈등과 혐오를 증폭시키고 긍휼히 여길 사람들을 양산하는 정부에 열과 성을 다해 부역하고 있다.

 

그렇다. 오늘날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기독교는 위기다. 그렇다면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행함의 부족, 즉 믿음이 있지만 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원인일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그렇다. 구약의 이스라엘도, 신약에 등장하는 1세기 유대인들도 행함은 대단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열심을 가진 신자들이 교회에 상당수를 차지한다. 유언비어가 가득 담긴 카톡을 공유하는 데 열심이고 성서가 지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막겠다며 국회의원들에게 전화는 물론 광화문에 나가서 목소리를 높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결국 위기의 원인은 성서와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 혹은 그릇된 해석일 수밖에 없다. 행위 뒤에는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생각이 있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기독인의 행위는 결국 성서와 역사에 대한 일정한 이해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신학이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성서와 역사를 해석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 내생이 아니라 금생이고 장소도 저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말은 기독인 사이에 두루 공유되는 것이어서 어찌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구할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허망해진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두루뭉술하다. 모든 걸 말한 것 같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여기서 구해야 할 하나님 나라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전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교회를 버젓이 세습하는 목회자도, 북한을 타도해야 할 악마로 규정하는 교회도, 미국과 이스라엘을 숭배하는 교인들도 하나님 나라를 구하자고 소리를 높인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려면 머릿속에 뭔가 떠올라야 하는데 지금까지 교회는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고민하지도 않았고 그런 까닭에 제대로 된 이행 전략도 있을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지금은 성서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해야 할 때다. , 기독교의 양대 기둥을 다시 세울 때다. 세계 역사 전체에서 쉼 없이 전개되어온 공평과 정의의 움직임을 넉넉하게 보듬어 안을 수 있는 해석, 점점 심해지는 경제 불평등으로 인한 민중의 아우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해석, 우리와 후세대가 함께 누려야 할 생태환경의 파괴에서 비롯된 피조물의 신음을 들을 수 있는 해석, 파편화된 세계의 현실을 하나의 전체 문맥 속에서 파악하도록 도울 수 있는 해석,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작은 순종이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해석, 그러면서 내면의 변화가 의미 있는 실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원론을 담은 해석이 등장해야 한다. 우린 기억해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것이 성서에 대한 루터의 새로운 해석이었다는 것을.

 

이런 문제의식으로 아래의 두 권의 책과 저자들의 사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회권 교수의 신간 자비 경제학과 이미 2004년에 한국 사회에 제출한 강인태 목사의 하비루의 길이 그것인데, 필자는 이 책과 그들의 사상을 통해 올바른 역사 해석과 성서 해석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신학자가 아닌 필자가, 어찌 보면 주제넘게 이런 글을 쓰냐고 할 것 같아 동기를 밝히고자 한다. 지금의 기독교는 기둥이 흔들릴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데, 필자의 눈에는 아무도 그런 말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건물로 치면 지금의 위기는 지붕이 낡아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페인트칠이 벗겨져서도 아니다. 지금의 위기는 성서 해석과 역사 해석이라는 양대 기둥에 금이 쩍 가고 흔들리는 근본적인 문제다. 그렇다고 필자가 양대 기둥을 새로 세울 역량이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기독인으로서 이 문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지금 소개할 두 권의 책을 만났고, 숙독해 가면서 이 책에 들어있는 재료로 성서 해석과 역사 해석의 기둥을 새롭게 세우자고 제안하고 싶은 열망이 생기게 되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서평과 재구성에 들어가도록 하자.

 

1)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2년 3월 31일부터 4월 4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독교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조사’ 결과 한국 교회 신뢰도는 18.1%로 나타났는데, 이는 2년 전보다 13.7% 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가 38.9%,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가 36.9%다. 국민 10명 중 8명은 교회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다(국민일보 2022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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