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람들의 가르침을 믿는 신앙으로,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신앙이며 종류가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낸 그 분에 대한 자신의 종속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은 모든 이들에게 오직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은 사람들의 삶을 이끕니다. 진정한 신앙에 중요한 것은 신이나 영혼, 또는 과거와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훌륭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다만 현재의 삶에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칸트)
선량한 삶의 대가가 있다는 해석은 참된 신앙에 꼭 들어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신앙과 거짓 신앙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거짓 신앙은 자기가 치를 희생과 기도에 대하여 신에게 대가를 바라지만, 참된 신앙은 오직 한 가지,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요?
쇠약해져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어지면, 우리는 영혼이란 것을 간직하고 있음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우리가 영혼에 의해 살아가고 있음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중요한 것을 떠올리지 않고 우리와 마찬가지인 인간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생명은 육체가 아니라 오직 영혼 속에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정욕이나 사욕, 두려움과 증오를 느낀다면 곧바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떠올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본체가 육체가 아니라 영혼임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마음을 어지럽게 했던 그 불순한 분자들이 단번에 진정될 겁니다.
선한 삶을 살려면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저 세상으로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조금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육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바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이제 당신이 어디에서 이 세상으로 왔는가 하는 것도, 그리고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도 알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제 과거라든가 미래 같은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완벽한 행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음식을 원하고, 음식이 없을 때 괴로운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사랑을 원하며 사랑이 없으면 고뇌합니다.
사랑은 누구나 타고 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을 깊이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그 사람과 내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사람과 나를 하나의 존재로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슬퍼해야 하는 할 것은 우리가 죽는 것이나 재산을 잃었을 때, 또는 집이나 땅을 갖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슬퍼해야 하는 것은 진정한 능력, 지고의 행복, 즉 사랑하는 힘을 잃었을 때입니다.(에픽테토스)
사랑만이 진정한 행복을 줍니다. 고통스러울 때, 세상 사람들이 두렵게 여겨질 때, 사람이 엉망이 되었을 때, 당신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기를 그만두고, 나와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도록 하자. 그러면 된다. 나머지는 될 대로 되라고 맡겨두면 된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시작하면 홀연히 모든 어려움은 풀리고, 두렵거나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신과도, 혹은 자기 이외의 온갖 존재와도 결합하게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으려면 그들의 뜻에 영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오로지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일에 전념하고, 세상 사람들의 저속한 견해에 연연하지 않을 때에,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한 뒤에는 기분이 좋을까요? 그것은 사랑을 담은 모든 행위는 참된 ‘나’가 우리의 자아에만 존재하지 않고,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속에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을 위해서만 산다면, 당신은 참된 ‘나’의 작은 한 부분으로 일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산다면 당신은 ‘나’가 확대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만 삶을 도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적에게 포위되어 있는 스스로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 이외의 개개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삶을 도모해 보면, 당신은 친한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 이외의 개개인의 행복이 모두 자신의 행복이 되는 것을 감지할 것입니다.(쇼팬하우어)
혹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을 사랑 할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사랑을 두려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기 내부에서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기 내부에서 인식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