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의 진리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이 되었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공평과 정의의 노래로 호흡하며 분단된 한반도의 회복과 구체적인 대통합의 비전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감격은 또 하나의 현실과 조우하며 새로운 도전을 기다려야 합니다. 숨죽이며 다가 온 진리는 지금 여기의 현실과 마주하며 저의 마음을 어지럽혔습니다. 저는 마침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온 우주의 하나님이며 또한 이 한반도를 구원해 낼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었지만 다시금 직면한 저의 존재와 한국사회는 깊은 한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상처로 가득한 한국사회는 협애한 이념적 스펙트럼 안에 갇혀 의미 있는 토론과 합의의 문화를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한국교회에게 희년은 여전히 어색한 단어이며 구약에만 존재하는 율법으로 인식됩니다. 가난한 자들의 신음소리는 귓가에 맴돌고 떠오르는 북녘 친구들의 얼굴은 마음을 조여 오는데 거대한 산 앞에 서 있는 저는 너무나 무력한 모습이었습니다.
2003년 10월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 당시 군복무 중이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청소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과연 희년을 지금 여기서 꿈꿀 수 있을까?’, ‘너무 머나먼 꿈이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은 감동과 회의를 반복하며 제 마음을 저울질 하였습니다. 마침 9시뉴스가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마음속 질문에 응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첫 번째 헤드라인 뉴스제목은 “토지공개념 도입 검토”였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연설을 통해 심각한 부동산 투기를 고려해 토지공개념까지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밝혔습니다. 희년의 비전과 지금 여기의 현실을 오가며 회의에 빠져있던 저에게 이 뉴스는 온 몸의 전율로 다가온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충격은 믿음의 소망과 꿈이 오늘 저에게 그리고 한국사회에 현실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분명한 확인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토지공개념 도입발언과 부동산 투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에 종합부동산세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종합부동산세의 도입을 희년사회를 향한 한 걸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저에게 모든 과정들이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이해관계자들의 강렬한 저항과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치열한 분투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가진 노무현대통령의 의지에 힘을 받아 종합부동산세는 결국 국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지만 보수언론들은 강렬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정권교체와 함께 종부세의 운명도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을 따라야 했습니다. 기득권의 강고한 저항보다 저에게 더 큰 당혹스러움을 안겨 준 것은 뉴타운 건설로 인한 집값 상승에 마음이 부풀어 국회의원을 찍어 준 국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부동산 자산에 잠식되어 있는 한국사회 기층의 의식과 문화가 곧 슬픈 종부세의 운명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슬픈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과 닮아 있는 슬픈 종부세의 운명을 먹먹한 가슴으로 지켜보며 지금 여기서의 희년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희년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켜낼 수 있는 의식과 문화가 저변에 확보되지 않은 제도적 희년은 불안정한 지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의 변화를 통한 제도적 노력과 함께 공론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아래로부터의 어울림이 조화를 이루어 내는 변혁의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의 자리는 가난한 자들과 호흡하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현장입니다. 희년을 꿈꾸지만 너무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바로 여기가 희년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땅이며 희년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차 보이는 무력한 내 자신이 그 꿈을 이뤄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 간 사도들의 발자취를 지켜보며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와 지금 여기의 현실과 조우한 사람들의 역동성을 발견합니다. 지금 여기의 한 걸음의 의미와 무게를 너무나도 정직하게 직면한 사람들의 믿음이 그들의 걸음에서 발견되는 신명의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처럼 지금 여기의 희년을 발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