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케익이 어떤 거예요?” 고심하고 고른 블루베리요거트 케익을 들고, 청평을 넘어 있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향했습니다. 6월 중반, 찌는 듯한 날씨. 버스에서 내려 설렁설렁, 굽이굽이 들어간 마을 중턱에 아버지가 몇 년 전부터 살고 계신 집이 보입니다. 멀쩡한 셔츠를 입은 허수아비도 보이고, 초롱꽃들이 가득한 꽃담이 넘어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아버지” 나지막이 불렀습니다. 헉! 10m가 훨씬 넘는 거리였는데, 아버지가 뒤돌아보시며 놀라시고 반기십니다. 환갑을 훌쩍 넘기신 후 전원생활을 선언하신 아버지, 벌써 시골쟁이 5년차이시네요.
서울에서 2시간 벗어났을 뿐인데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무채색 빌딩에 익숙해서인지 저어기 파란 하늘과 수분을 머금은 공기, 산소를 잔뜩 뿜어내는 숲이 어른거리며 어색해 합니다.
태양열 발전으로 데워진 따듯한 물로 씻고 나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냥 긴 의자에 널부러져 이번 달 세미나1) 도서를 꺼내듭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 ‘대한민국 지식인들, 노무현의 질문에 답하다‘라는 부제의, ‘이정우 외 38명의 필자가 5가지 큰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는 따끈따끈한 신간서적입니다.
한국의 진보와 시민사회, 보수의 시대와 진보의 시대, 보수와 진보의 쟁점, 현실정책의 쟁점, 진보의 미래와 전략. 책의 앞부분부터 익숙한 구절을 만납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생활이 특히 곤궁해진 것은 영세 자영업자 층이었다. IMF사태에 따른 구조조정의 여파로 자영업자가 늘어났고, 소비 위축으로 매출이 부진해졌으며, 통신판매나 대형마트가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선 사회보장 제도를 대폭 확충해 영세자영업으로의 진입 필요성을 낮춘다든가, 선진국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사회서비스업 비중을 높인다든가, 임금체계를 개편해 회사 퇴직 연령을 높인다든가 하는 근원적인 대책을 그다지 강구하지 못하고 ‘재래시장 활성화’등 지엽적인 정책을 내놓았을 뿐이다. - 47쪽
밑줄 쫘악 긋고 있는 때, 아버지께서 “뭣 좀 먹어야지~?”하고 밭일 마무리 짓고 들어오십니다. 포도 줄기를 솎아주는 일손 도우러 포도밭에 가셨다는 어머니 대신 아주 늦은 점심을 차려주시려나 봅니다.
수출자유지역, 외인회사에서 말단 직원부터 시작하여 CEO 자리까지 오르셨던 어린 시절 아버지. 30년간 입으셨던 흰 와이셔츠를 벗고 중소규모 제조업 공장들이 많았던 평택 근교에서 주유소를 시작하셨던 대학 시절 아버지. IMF, 문민정부와 참여정부시절. 거래처들은 기업환경이 어렵다며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큰 과수원 몇 곳은 평택미군기지이전으로 강남부자가 되던 때도 묵묵히 주유소 앞 도로를 부지런히 쓸고 눈을 치우시던 아버지.
1990년, 노조와의 협상은 멱살잡이로 끝나기 일쑤였고 “회사가 살아야 직원이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설득은 당시 민주화 바람을 타고 각성(?)하기 시작한 일반직원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으며 일본 본사는 중국 청도로 회사이전을 감행했던 2000명 규모의 중기업. 1997년 12월 이후 국가경제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던 ‘파이를 크게 한 다음 자르기’ 예화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께 늘 들었던 얘기였습니다.
올 설 연휴에 아버지와 ‘名家’라는 드라마를 같이 봤습니다. 기근이 들어 생계수단인 토지를 팔아버리는 양민들을 찾아가 ‘땅을 함부로 사고 팔아서는 안 된다“며 토지의 천부성을 얘기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주인공-차인표 분- 을 보며 그 때 읽고 있던 <토지와 경제정의- 대천덕 저>를 드렸었네요. 9살에 6.25를, 고등학생 때는 마산에서 4.19를 겪으신 아버지. 고개만 끄덕이실 뿐 별 말씀 않으시는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저녁에 어머니께서 포도밭에서 돌아오셨습니다. 종일 포도줄기 쳐다보느라 뒷덜미가 아프다하시지만 속 얘기 한바탕 풀어내고 오신 듯, 얼굴은 한껏 밝으십니다. 까끌까끌한 현미밥과 밭에서 뜯은 야채들로 저녁을 먹은 후 아버지를 위한 생일축하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음날 새벽 5시 찬송가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이사야서를 3장 읽고 아버지께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에 감사와 찬양, 우리들의 하루를 위한 간구, 그리고 나라를 위한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을 발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땅 곳곳에 침투해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 전날 참여연대가 UN에 천안함재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한 기사를 보신 모양입니다.
아침밥을 먹고 세 갈래 길로 흩어집니다. 아버지는 텃밭으로, 어머니는 포도밭으로, 저는 서울로 향합니다. 아버지 집을 나서는 참에 나무 몇 그루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 나무는 체리, 저 아이는 복숭아, 보리수, 뽕나무. 쟤는 사과, 저 놈은 매실이었나.. 살구였었나... ’ 50그루 남짓한 나무가 뭐가 뭔지....... 아직은 생긴 모양이 다르다는 것 밖에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와서 아버지께 다시 여쭤봐야겠습니다.
자매님의 글에 순간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날도 더운데.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