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도에는 세제개혁이 있었다. 1950년도에 농지개혁이 있었는데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라는 책에 유 인호 씨가 자세히 적어 두었다. 농지개혁을 주도한 사람은 맥아더 장군의 부하 번스, 앤더슨, 키니 세 사람이다.
세제개혁이나 농지개혁 같은 사회현상이 일어나는 때를 성경에서는 희년이라 한다. 하나님께서 희년을 설정하시고, 또,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이전의 모든 역사에서도 희년이 실행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역사책들을 찾아보았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18세기에 정약용에 의해 여전법과 정전법이 제시되었다. 신라는 722년에 정전제도를 실시했다고 한다. (오월, 조선통사) 이 정전제도는 중국의 하, 은, 주 시대까지 올라간다.
夏나라는 기원전 2070년에 개국하였고, 은(상)나라는 기원전 1600에 흥하여서 기원전 1046년에 주나라 무왕에게 멸망당하였다. 갑골문자를 사용하였고 동이족의 선조라고 한다.
주나라는 하나라를 계승했다 하며, 왕성으로 희와 한을 혼용하였는데, 夏와 韓은 음이 같다고 한다. 日+韋=히+위(아르)+ 기아르/가라에서 가라, 한, 위, 귀, 기 등의 음가가 모두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나라의 주공이라 하는 자는 공자가 추앙한 인물인데, 주공에 의해 주나라의 법제가 정비되었다. 주공의 ‘주례’에 정전법이 있는데, 야인을 제외한 장정에게 정전이 지급되었다. 정전은 사방 1리의 땅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9등분하여 8가구의 사람들에게 지급된다. (여호수아가 토지를 분배한 때는 주전1228년이다)
이때 국가로부터 배분받은 면적은 100모인데, (현3,000평) 중앙에 있는 땅을 공전이라 하고 나머지는 사전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주나라의 세금은 생산량의 1/10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것을 십일조라 부른다.
작업방식은 공동생산을 원칙으로 하되, 공전을 먼저하고 사전을 뒤에 하며 생산량은 공평하게 분배한다.
1가구에 3,000평이고 8가구면 24,000평이 된다. 가운데 공전은 공동우물과 작업장, 망루등 공공의 용도로 사용되는 부분이 600평이 되am로 3,000평에서 600평을 빼면 2,400평이 된다. 즉 24,000평분지 2,400평이니 세금은 곧 1/10이 된다. 이러한 세금방식은 은나라에서는 ‘조’라하고 주나라에서는 ‘철’이라 하는데 그 원리는 모두 같다.
다산 정약용이 제시한 균전제와 여전제는 정전제가 그 모체이다. 이러한 정전법은 성경의 토지법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당신의 법을 알리시고 주관해 오셨다.
2. 소도
소도는 <후한서> <진서> 등에 기록되어 있는데 제정일치였던 마한에서 매년 1~2차례제사를 드렸는데, 시께 봉사하는 제사장인 천군을 선발하여 특별 장소를 선정하여 제사를 지냈다.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삼한 사람들은 귀신을 믿어서 나라의 읍마다 한 사람씩을 세워 하느님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주관케 하였으니, 그 이름을 천군이라 하였다.” 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소도’라 하는데 신라에는 5곳이 있었다. 토함산 팔공산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이다. 지금까지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태백의 소도동뿐이다.
소도는 신이 내려오는 별도의 읍으로 신성한 지역이었고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하여 오더라도 돌려보내거나 잡아 갈 수 없는 곳으로 도피성과 같은 곳이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을 했을 때 피할 수 있는 곳이다.
로마의 아실리 (Asillie:그리스어의 불가침을 의미하는 asylos에서 유래하였고, 본래는 성역의 권리라는 뜻이다.) 또는 아실럼(Asylum)과 비슷하다.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북과 방울을 달았다고 하는데 새가 올라 앉아 있는 솟대와는 관계 없는듯하다.
한국에 도피성 같은 곳이 있었고, 십일조의 개념을 가진 정전법이 있었기에 마하지 않고 아직 건재 한 듯하다. 하나님께서 계속 우리나라를 어여쁘게 여기시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