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 연구회(당시에는 기독교경제학연구회라고 하였음)의 어느 분이 전화를 하셨다. 조상국 교수님이 아닌가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기독교인 교수들이 같이 책을 읽고 있는데, <진보와 빈곤> 축약본을 번역한 김 교수가 참여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를 잘 모르니까 그 책 중에서 헨리 조지 생애를 소개하는 부록을 맡아서 번역 발표하겠다고 하였다.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 대학교)에서 월 1회 토요일에 모여서 공부도 하고 테니스도 치고 세상 이야기도 하였다. 한번은 칼러가 가톨릭 신부복의 로만 칼러 모양으로 생긴 와이셔츠를 입고 갔었는데 그걸 보고 전강수 교수님이 신부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전강수 교수님은 내가 경건하게 생겼다고 표현하셨지만 그 옷이 인상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희년함께(전신인 한국헨리조지협회)와의 첫 인연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내가 1985년 1월에 발행된 대천덕 신부님의 저서 <토지와 자유: 성서의 경제원리>를 보고 4월에 대 신부님께 편지를 드렸더니 "헨리 조지 이론에 대한 한국에서의 적용을 위해 관심있는 자 몇몇 분들과 모임을 갖고자" 한다는 답을 주셨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또 대구에 살기 때문에 그 모임에 참여는 하지 않았다. 이 모임이 한국헨리조지협회가 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후 협회가 주최한 토지학교에 강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대 신부님의 소개로 미국 샬켄백 재단에서 구한 자료를 읽고 지공주의에 관한 첫 논문 <토지사유제와 지대조세제>를 학술지에 게재한 것이 1986년이다. 고왕인 박사님이 논문을 어디선가 구해서 보셨다고 했다. 내가 <진보와 빈곤>(축약본) 번역을 하고 이걸 고 박사님이 운영하시던 무실에서 1989년에 출판하게 된 연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