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학교 졸업 이후 지난 7여년의 시간이 그 전까지 당연하게 체화했던 태도와 사고방식들을 버리는 과정이었습니다. 혼자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서로 신뢰하고 격려하는 학습공동체를 이루는 것조차 감히 꿈꿔보지 못하는 깊은 고립, 개인주의적인 태도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와 의식에 이르기 까지. 중학교를 졸업하면 불과 16년의 세월을 마쳤을 뿐인데, 지금 돌아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습관들을 몸에 붙였지요. 몇 가지 사건들이 떠오릅니다.
1. 경쟁과 질투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민들레공동체에서 하는 초등학생 캠프를 갔습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20명 남짓 모인 조촐한 캠프였습니다. 농사에 대한 강의도 듣고, 물놀이도 하고, 천연 염색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마을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듣고, 고구마를 장작에 구워먹는 ‘노는’ 캠프였습니다. 그 중 조별로 연극을 준비해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저는 고학년이었기에 조장을 맡았고, 열심히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을 독려해서 연극을 만들었죠. 그런데 발표시간! 아뿔싸, 다른 조의 3학년짜리 저보다 어린 여자 아이가 동화구연을 너무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극은 소위 말하는 액자 구조로 연극 속의 동화구연이었어요. 그 아이의 감칠맛 나는 이야기 솜씨로 인해 그 조가 연극에서 상을 탔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어요. 옆에 있던 4학년, 5학년 그 곳 공동체 아이들이 그 동화구연한 여자아이에게 가서 ‘잘했다’며 그 아이의 재능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해주는 것이었어요! 저는 저희 조가 상을 못 탄 게 속상하기도 하고, 내심 질투나기도 했거든요.
그 때 저는 저나 제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내면에 뭔가 일그러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때만 해도 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붙어 다니는 친구가 실은 저의 가장 큰 적, 제가 시험 점수를 2~4점만 잘 받아도 질투심으로 저를 못살게 굴던 친구였거든요.
그 후로의 시간은, 학교 교육에서 나도 모르게 무조건 1등을 해야 하고,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벗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한 1등인지, 모두를 위한 승리인지, 아니면 나의 불안한 존재감의 근거를 세우기 위한 수단인지, 다른 사람의 재능을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하고, 나의 모습과 재능 그 자체를 경축해주지 못하고 질투심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구하는 1등인지.
2. 참여는 배제, 역사는 그냥 ‘당하는’ 거야
초등학교 때 자발적인 기획과 참여가 좌절당한 기억이 몇 개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인지 성탄절 카드를 직접 만들어서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팔았어요. 내가 작품용으로 개성 있게 만들었으니 문구점에 파는 카드처럼 팔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친구들은 신기해 가며 사갔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나타나서 ‘학교는 장사하는 곳이 아니란다’,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장사를 하니’ 막으셨어요. 저는 풀이 죽어 카드를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학교 수업에서 ‘고아원’, ‘불우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반친구들끼리 모여 그러면 우리가 조금이라도 의연금을 보내자 하고 거리 모금에 나섰어요. 상자를 하나 만들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어른들에게 설명 드리고 동전을 받았지요. 한 어른의 제보로 이 사실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께서 저희를 불러서 타이르셨어요. 물론 ‘거리 기부상자’가 초등학교 4학년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거지처럼 그렇게 청하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은 풀이 죽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좋으신 분이셔서, 나중에 사비를 털어 저희들이 직접 초코파이와 과자를 사 들고 고아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셨지요!)
그리고 시간이 훌쩍 지난 2009년 10월,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치면서 제가 받은 역사공부 또한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서 받았던 역사공부에서조차 참여를 억제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장려하는 관점들이 녹아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발견했거든요.
근현대사 파트에서 년도와 사건으로 요약된 암기용 수험서를 들여다보며 화들짝 놀랬었지요! 동학 운동이면 동학 운동,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면 만민공동회, 국채보상운동이면 국채보상운동, 모든 개혁적 성격의 운동마다 한계를 붙여놓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 사건들을 배웠던 당시 제 정서를 추적해보면, ‘아, 다 힘에 의해 무산되었구나. 해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런 생각이 마음 속에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아니, 전봉건의식에서 근대민권의식으로 사람들의 자각이 바뀌어 가는 것은 알깨기처럼 녹록치 않은 과정이었겠지요.
‘주체적으로 뭔가를 스스로 고민하고 반응했다는 사실에 더 박수를 보내주는 방향으로 교과서에 정리가 되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아, 한계는 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러한 정리라면.
1950년 농지개혁에 대한 몇 줄 요약에도 한계가 붙어있었습니다. 농지개혁 이전에 이미 지주들이 자체 땅을 처분한 면적이 40%가 넘기에 농지개혁은 성공적이지 못한 개혁이었다. 아니! 농지개혁을 실행할 것이란 의지가 단호해 보이니까 지주들이 알아서 땅을 팔았다면 개혁이 성공적이었다는 반증이 아닌가요? 저는 수험서에 공리처럼 정리되어있는 해석이 제가 최근에 배운 내용과 다르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학교의 지식교육이 수동적인 암기와 수용, 탈주체화된 인식(‘나’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사건을 해석할 테니까요)을 강제하고 참여형 사색과 고민은 좌절시키는 경향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현대 한국의 모습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친 뿌리와 같은 근현대 수많은 사건들을 성찰할 기회 없이, 그 과거와 지금을 이을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채로 수많은 역사수업시간을 지나쳐왔습니다. 그래서 88올림픽보다 한 해 일찍 태어난 저는 초등학교 내내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다 이루었고, 민주주의는 일단 대통령 직선제니까 다 이루어졌고, 우리 시대에 역사적 과제는 없는 줄 알았습니다.
만약 초등학교 때 ‘왜 3⋅1독립선언문을 작성한 1인이었던 최남선은 나중에 친일파가 되었는가? 그렇게 한 개인의 여정변화를 강제했을 법한 정치, 사회, 심리적 요인을 추적해보시오!’ 제게 이런 질문을 던져 준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지금의 뉴라이트 운동을 통찰하는 눈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요?
경쟁과 질투, 고립,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승리를 위한 배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신뢰와 상호책임, 사랑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배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에 역동적으로 호응하는, ‘나’에 대한 자각과 ‘주체의식’(북한의 주체사상 아닙니다. ^^;;;)이 있는 공동체적 배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관심이 참여로 바뀌기까지, 닫힌 마음을 계속 두드리고, 보듬어내는 배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인격이 역동적으로 부딪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서로의 지성뿐 아니라 의지, 정서까지도 가다듬어 주는 배움 공동체를 희망합니다.
사실상 근대 이후 지금까지의 공교육은 기득권의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매트릭스 안에서 길러지는 인간들처럼.. 기득권들이 보기에 다른 교육을 말하는 사람들은 매트릭스 안에서 깨어나 활동하는 에러나 버그처럼 없애버리고 싶은 존재들이겠죠. 흠~
"교육은 억압 계급에게 자신의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강력한 잠재적 힘이기는 하지만 지배 계급은 교육을 통해 순종을 가르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보통 교육의 실시를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은 지배 계급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독점적인 선전 도구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피지배 계급의 해방 수단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지배 계급이 교육의 특권을 일부 양보키로 했을 때 느꼈을 희망과 공포의 착잡한 감정을 이해하기란 그렇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제5장 특권 계급의 윤리적 태도 中,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문예출판사
빛나래 자매님! 2009년 10월에 쓴 글을 이제 댓글을 다는 무딤을 용서하세요. 이제 봤거든요... 자매님보다 나이가 한참 선배지만, 나이가 사실 무슨 상관있나요? 그저 나이 차이는 생리적 차이라고만 얘기하고 싶군요. 자매의 넘치는 신선한 사고가 눈부십니다. 역사에 대한 깨어있는 시각, 그 인식의 과정이 놀랍습니다. 그저 지배자들의 눈으로만 본 역사가 우리의 의식을 이제껏 일깨우지 못했고,그래서 많은 분들이 반성하며 쓴 좋은 역사지도서들이 많이 있음을 우린 압니다.아픔이 많은 역사.. 이 땅의 질곡들을 자매 같은 분들이 헤쳐나가려 애쓴다면 이 역사는 정말 가능성있는 열린 장이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생기넘치는 사고로 의심하고 비판하고 사색하며 주님의 삶을 일구어가시기 바랍니다. 아름답습니다... 샬롬!
대신부님 기획연재글-영원한 경계(eternal vigilance)- 멋진 글.. 댓글이 안달려서 여기 같이 남겨요. Eternal vigilance might be more cheaper than freed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