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최대 연합단체이자, 한국 기독교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한다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가 해체 요구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도대체 한기총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요? 그리고 과연 우리는 마냥 한기총을 욕할 수 있을까요?
사회주의자이자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그랬어」 발행인을 맡고 있는 김규항 선생은 ‘이명박’을 욕하지만, 실상 그와 똑같은 삶의 태도를 가진 현대인을 ‘우리 안의 이명박’이란 논리로 고발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의 제목을 김규항 선생의 것을 빌려 ‘우리 안의 한기총’이라 정해보았습니다. 즉 먼저 하나님과 한국교회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한기총의 모습을 살펴보고, 실상 그 모습이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돈으로만 가는 한기총
최근 몇 년간 한기총 대표회장을 뽑는 선거에서 돈을 주고받는 일이 있었음이 기어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그동안 한기총 대표회장이 되려면 구체적으로 얼마가 필요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거를 치루며 한기총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양측이 서로 폭로함으로써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돈을 돌렸다는 사람, 그리고 받았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과거 체육관에 모여 대통령을 뽑던 군부독재 시절, (일부)교회는 민주화투쟁의 든든한 후원자요 방패막이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청년회 등에서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또한 한편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부패한 선거문화를 바로잡고자 하는 ‘공명선거운동’을 벌이기도 했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세상은 더 이상 가짜 선거도, 부패한 선거도 용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를 부르고 가르치는 한국교회의 연합기관이라 자임하는 한기총은 씁쓸하게도 ‘돈으로만 가는 한기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만의 한기총
한기총에서 하는 여러 일들은 일반 시민은 물론이요, 지역의 목회자와 성도들과는 너무 동 떨어진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도들은 단 한 번이라도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청와대에 들어가 장로 출신 대통령에게 힘내라고 기도해주는 한기총, ‘4대강 정비사업’이라고 불리는 일에 찬성하는 한기총,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영어로 대표기도를 읊조리는 한기총에 대해 동의를 표한 적이 있나요?
결국 한기총은 일부 정치목사들의 명예욕을 배설하는 창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기총의 회원교단 및 단체가 부담하는 회비 비율은 미비하며, 모자란 대부분을 대형교회들이 부담하는 구조가 이를 증명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초창기의 한기총이 순수한 의도에서 출범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한기총은 과잉된 대표성을 남발하며 하나님과 한국교회를 망신시키는 '그들만의 한기총'으로 전락했습니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한기총 해체 운동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예전부터 ‘한기총 개혁을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를 조직해 줄기차게 한기총의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금권선거 사태를 바라보며, 한기총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 이름을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로 변경하고 본격적인 한기총 해체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기총 해체 운동은 폭넓은 지지를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기총 해체를 촉구하는 서명에 동참했고, 한기총의 회원단체 일부는 탈퇴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총은 여전히 폭주와 분열을 거듭하면서 주어진 운명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과연 결말은 언제, 어떻게 나게 될까요?
돈으로만 가는 교회
사실 남을 비판하는 일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더욱 아픈 것은 한기총의 모습이 비단 그들만의 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 총회에서는, 총회 아래 노회에서는, 그리고 내가 다니고 있는 지역교회에서는 어떤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교회의 안수집사나 장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돈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참회하고 나누는 삶을 살기는커녕 오히려 교회의 지도자로 등극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만의 교회
그리고 교회의 거의 모든 결정은 '그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성도들은 그 결정에 묵묵히 따르는 것이 순종의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아무개가 교회의 지도자이므로 그의 의견과 결정이 좀 더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사람이 약하고 악한 존재임을 망각한 채 완전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기웃거리는 가증한 일입니다.
성도들에게는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며, 그래서 설령 '그들'의 결정이 잘 이해되지 않아도 따라야 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개혁교회의 전통을 훼손하는 일이며 오히려 교회 지도자를 유혹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성도들이여, 들불처럼 일어나자
슬프게도 지금 하는 이야기는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어제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시대적 사명을 다 한 채 더 이상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상실한 한기총을 비판하고 해체를 요구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돈을 섬기고,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의사결정을 내리며, 그것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우리 안의 한기총’을 제거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한기총을 해체하자고 하면 일단 화들짝 놀랍니다. 속은 시원하지만 과연 그래도 될지 걱정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기총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장은 교회를 폐하자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완성하자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한국교회에는, 가난한 자를 찾아가 함께 살면서 바른 길을 찾고자 했던 예수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나이의 적음이 곧 ‘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있기에, 지루한 희망 찾기를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