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신정 연휴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동안 너무 심심해서 예전에 보았던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본 영화중에서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합니다.
굿 윌 헌팅을 자세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의 대사 중에 라마누잔과 카진스키라는 두 인물의 이름이 나옵니다. 두 사람 모두 수학의 천재들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수학천재 윌 헌팅은 천재 수학자였던 인도의 스리니바사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과 비슷한 모델로 나옵니다.
우리 안의 ‘라마누잔’
라마누잔은 인도의 매우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고급수학책의 난해한 수학공식들을 증명하는 천재였습니다. 라마누잔은 직관과 영감을 통해 수학을 하였는데, 그는 수학공식을 증명하는데 신이 영감을 주었으며 수학이 자신을 불렀다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라마누잔을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인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교수가 영국으로 초청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만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영국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라마누잔은 병에 걸려 다시 인도로 돌아가 32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짧은 생애를 살다가는 동안에도 라마누잔은 수학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라마누잔의 정리’는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응용된다고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윌 헌팅도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하버드대학의 수학교수들도 풀지 못하는 고급수학 문제들을 본능적으로 푸는 천재로 나옵니다. 하지만 윌 헌팅은 양부모의 잔혹한 학대와 여러 번의 입양과 파양(罷養)을 경험한 고아이며, 상처받고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아직 자라지 못한 ‘어른아이’의 상태에 머물러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윌 헌팅을 발견한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수학교수인 램보는 “제2의 라마누잔이 나타났다!”며 윌 헌팅을 자신이 데리고 있으면서 제2의 라마누잔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윌 헌팅의 심리상담사를 맡게 된, 램보 교수의 친구이자 심리학 교수인, 숀은 윌 헌팅이 제2의 카진스키가 될 수 있다며 윌 헌팅을 제2의 라마누잔으로 키우는 것에 반대합니다.
우리 안의 ‘카진스키’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는 16살에 하버드대학에 들어간 수학천재였으며 버클리대학 수학과에서 24살의 나이로 역사상 가장 최연소 교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철학 박사 학위까지도 받은 천재 지식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심각한 인간관계와 인격 장애로 인해 교수를 곧 그만두고 숲속에 들어가 은둔하면서 17년 동안 과학자와 지식인, 기업가 등에게 손수 정교하게 만든 우편물폭탄을 보내 3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신체절단 등의 중상을 입히는 폭탄테러범이 됩니다.
카진스키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며 반(反)문명주의자가 되어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이유로 폭탄테러를 저질렀습니다. FBI는 카진스키를 잡기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수사비용을 들였다고 하며, 주로 대학과 공항에 폭탄테러를 했기 때문에 FBI는 카진스키에게 ‘유나바머(Unabomber: University and Airline Bomber)’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합니다. 카진스키는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하더라도 인격과 인간관계가 잘못되어 있으면 인류에 공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살인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즉 ‘삐뚤어진 똑똑한 천재’가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카진스키가 인성교육을 무시한 미국교육의 실패사례라고 말하지만, 그의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아기였을 때 매우 위험한 전염성 피부병이 온몸에 발생해 어머니와도 격리된 채로 1년 이상 병실침대에 묶여 의사와 간호사만을 접촉하면서 아무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단지 음식만을 공급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카진스키는 똑똑하지만 무표정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차가운 아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카진스키는 윌 헌팅처럼 어려서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 인간관계와 인격에 장애를 겪는 ‘똑똑한 어른아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안의 ‘윌 헌팅’
다시 굿 윌 헌팅 이야기로 돌아가서, 숀 교수는 램보 교수에게 윌 헌팅은 라마누잔이 아닌 카진스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숀 교수는 윌 헌팅이 라마누잔처럼 살기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하고, 서로 관계를 맺고, 함께 울고 웃고, 서로 부대끼고, 인생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때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숀 교수의 진심과 사랑으로 인해 마침내 마음을 연 윌 헌팅은 숀의 어깨에 기대어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면서 거북이등껍질 같이 두껍고 무거운 자신의 상처를 벗어버리고 내적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숀 교수도 사랑하는 부인이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은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인해 새로운 여자와 다른 사람에게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윌 헌팅에게 열면서 내적치유를 받습니다.
결국 숀과 윌 헌팅은 사랑과 이해, 뜨거운 포옹과 눈물 속에서 서로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신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치유를 경험한 윌 헌팅은 이제 용기를 내어, 어려서부터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자신의 고향과 친구들 자신의 재능을 원하는 좋은 직장의 기회를 모두 뒤로하고, 버림받을까봐 두려워서 헤어진 자신의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찾아 떠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지금까지 이렇게 장황하게 영화 이야기를 했을까요? 이제 제가 하고 싶은 말의 결론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되었네요.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우리들은 카진스키도 라마누잔도 아닌 ‘굿(Good) 윌 헌팅’이 되어야한다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주를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
사실 우리나라에는 라마누잔이나 카진스키처럼 천재적이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카진스키처럼 폭탄테러를 저지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정부, 국회, 대학, 병원, 법조계, 언론사, 심지어 교회와 각종 단체에도 잠재된 수많은 카진스키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삐뚤어진 천재들은 진짜 카진스키보다 더 교묘하게 다른 사람들을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죽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런 사람들은 사랑을 받지 못해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들에 불과합니다.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가정의 파괴와 부모의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 특히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수많은 사람들. 잘못된 부모의 욕심과 왜곡된 양육과 교육, 비교와 질투, 두려움 속에서 경쟁과 이기심만을 배우고 자란 사람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고 자신과만 관계하면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거짓자아를 만들어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모두가 카진스키이자 윌 헌팅입니다.
우리 성토모에도 천재성을 가진 정말 똑똑한 사람들, 공부를 많이 한 석학들과 지식인들, 공부를 하고 있는 수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 이해, 칭찬, 격려에 목말라하며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또 다른 라마누잔과 카진스키, 윌 헌팅이 우리 성토모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결코 카진스키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라마누잔에 머물러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통해 세상에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굿 윌 헌팅’이 되어야합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언1:7>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13:8>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과 지식을 가졌다하더라도 여호와를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지식이 없다면 그런 지식은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히려 해악만 됩니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성토모 가족들 모두는 하나님께 받은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사용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를 치유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는 ‘굿 성토머(Good Sungtomer)’들이 됩시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