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적는 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구분되기를 좋아하는 저의 성격으로써는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쓰고 나면 빈곳이 보이는 거 같고 그걸 메우자니 글의 전체적인 성격이 변해가는 거 같고 우유부단하기 보단 정답이 없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보단 이게 정답이야 이렇게 쓰면 맞고 아니면 다 틀려 라는 사고방식의 사람이 오랫동안 지배한 세상에서 살다보니 나마저도 남과 다르고 틀린 생각을 하면 불안해 하고 잘못된 건 아닐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 글도 부탁을 받고 몇 번이고 다른 글을 적고 다른 생각을 썼다 지우며 뭘 쓸지 고민하면서 쓰게 되는 글입니다.
우리나라 좌우의 갈등은 어느 덧 둘 다를 믿지 못하고 표류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공동의 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기 보단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서로가 서로를 깎아 내리기에 바쁘고 매도하기에 바쁜 것 같습니다. 진지한 대화의 장을 열어 이야기하기보다는 무조건 반대 무조건 진행의 식의 막무가내식이 진행되는 거 같아 보는 내내 눈치가 보입니다. 이 방송이 또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는 놀림거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그러면 왜 우린 대화보단 막무가내의 정신만이 지배하는 세상을 보게 된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 안에 진정한 좌,우가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이익만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여기서 한걸음만 더 떨어지면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린 듯한 태도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다 보니 상대의 생각은 들리지 않고 나의 생각만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한 길, 공동의 선을 위한 선택하기보다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이나 자신의 자리보전에만 더 관심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우리가 더 잘살기 위한 공동의 선을 택하기 보단 나만 잘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잘되면 끝이라는 생각 그리고 나의 안전만을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d) 현상이 월가를 무너뜨렸습니다. 우리 집 앞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너무 먼 일처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은 이긴자와 진자를 나누는 일이고 진자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 잔인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이해와 배려가 없는 무조건 적인 경쟁은 이긴 자나 진자에게 상처를 남기고 결국 양극단의 극단적 결단만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소통은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하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입니다. 누구도 절대적으로 옳을 순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옳지 않은 상황에서 절대 선을 찾기보단 최선을 찾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소통을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째로는 우리 안에 욕심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궁극적인 좌, 우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익집단의 대립만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우파를 지지하고 좌파를 지지합니다. 세종시 문제만 해도 정부청사가 이전하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청사의 반대를 주장 할 것이고 충청도민이나 전라도에 사시는 분들은 이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왈가왈부하기 전에 자신에게 남겨질 이익을 버리고 우리가 공동 선 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제 이 대한민국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아니라 우리가 잘 사는 방법을 모색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것이 초점이라기 보단 내가 조금 더 손해 보더라도 혹은 이익이 좀 덜하더라도 공동이 잘살면 궁극적으로 나의 가치도 올라간다고 생각 했으면 좋겠습니다. 버리기 쉽지는 않지만 그게 될 때 우리 사회 안에 내가 아니라 공동을 보는 눈이 더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로는 대화의 장이 활발하게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이야기는 식사할 때는 하면 안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자연히 싸우게 되고 그럼 즐거워야 되는 식사시간이 불쾌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생각을 듣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지난 주 토요일 성토모 청년부에서 하는 희년경제연구모임에 참가 했었습니다. 거기서 어떤 분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토지문제에 대한 4가지 패러다임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시장주의자들의 생각이 이해가 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을 들으면서 대화하는 것 그리고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이 그리고 그 생각을 이해하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설득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그냥 나의 생각이 이렇고 너의 생각이 이렇다를 듣는 중에 더 보안되어지고 더 다듬어져서 공동의 이익을 향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잘못 생각 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모든 문제를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이 없다거나 생각이 없으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나의 시각만을 절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 낼 뿐이고 대화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수학 공식에 넣어서 답이 나오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짧은 제 생을 돌아봐도 답이 나오는 공식대로 살아본 기억은 드뭅니다. 항상 새로운 상황에 이전의 지식이 사용될 수도 있고 쓸모없을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의 혹은 이것만의 상자 속에 넣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보단 실패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고로 나의 생각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면 남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우리의 것을 이야기 할 때도 우리는 싸우고 내 것을 챙기는 것 보다는 서로를 위할 줄 알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학교에 지내면서, 요즘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커져가는 거 같아서 적어봅니다. 아무리 옳은 생각도 충분이 검토하고 이해시키지 않으면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서로에 대한 소통이 통하는 우리, 교회,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