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이고, 함께 넣고, 함께 이어온 시간 / 강현진

희년함께
202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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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언니의 권유로 찾아간 작은 독서모임. 《진보와 빈곤》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시작된 만남은 어느새 20년 가까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함께 책을 읽고, 밥을 나누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삶을 나누었던 시간들은 부산희년함께 모임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인연은 자연스럽게 희년은행으로도 이어졌습니다. 2016년 희년은행 출범과 함께 출자를 시작한 강현진 회원은 지금까지 꾸준히 참여하며 희년은행의 성장 과정을 함께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저축의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누군가를 돕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고 말합니다.


부산에서 살면서 특수교사로서 장애 학생들의 삶을 곁에서 지원하고, 희년함께와 희년은행 안에서 희년의 가치를 실천해 온 강현진 회원. 희년함께와의 첫 만남부터 희년은행 1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 함께 모이고 함께 나누며 이어온 시간을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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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부산에 있는 기독교 학교에 다녔는데, 학교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더 알아가게 됐고 자연스럽게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회 활동을 많이 했고, 대학에 가서는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냈어요. 그 시절에는 간사님들 덕분에 책도 많이 읽고 여러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 후 임용시험을 준비하려고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게 됐어요. 공부에 집중하던 시기였지만 모임에 한 번씩 참여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는데, 그때 교회 청년부에서 함께 지내던 언니가 성경적 토지정의 모임에 같이 가보자고 권했습니다.

 

모임은 부산 부전교회에서 열렸는데, 그곳에서 처음 《진보와 빈곤》을 읽고 돌아가며 발제도 했어요. 책이 쉽지는 않아서 읽으면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함께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토지 문제나 빈곤 문제가 참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좋았어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모임 자체가 즐거웠고, 자연스럽게 계속 참여하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모임 안내 문자를 보내는 역할도 맡게 됐고요.

 

그렇게 성경적 토지정의 모임에서 시작된 인연이 자연스럽게 부산희년함께 모임으로도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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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안락동에 있던 주택에 사무실을 만들어서 거기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했던 시간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정기적으로 모여서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있었지만, 그때는 좀 더 생활 공동체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같이 밥도 해 먹고,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기도 제목도 서로 나누고 그런 시간이 계속 있었어요.

 

그게 단순히 공부 모임이라기보다는 사람들하고 같이 살아가는 느낌이 있어서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집집마다 찾아가서 모임을 하기도 했고, 부모님 계실 때 제 집에서도 모임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도 되게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각자 사는 공간에 들어가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게 모임을 더 돈독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또 그때는 사람들이 꽤 여러 번 바뀌기도 했고, 구성원도 조금씩 달라지면서 모임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 이어질 때는 이어지고, 또 어떤 시기에는 잠깐 쉬기도 하고 그런 흐름이 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건, 그냥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먹고 생활을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는 거예요. 한 번은 어떤 형제님이 일본 라면을 직접 만들어 주셔서 같이 먹었던 것도 기억나고요. 그런 작은 일들이 되게 크게 남아 있어요.

 

그리고 두 개의 세상이라는 보드게임을 김덕영 형제님이 직접 설명해 주시고 같이 했던 것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냥 게임을 한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사회를 보는 방식이나 생각을 같이 나눴던 느낌이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는 모임이 좀 더 생활 가까이에 있었던 것 같아요. 책 읽고 토론하는 것도 있었지만, 같이 먹고 이야기하고 서로 집에도 찾아가고 그런 과정들이 모임을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만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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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게 된 건 희년학교를 예수원에서 했을 때였어요. 그때 같이 있던 자매들이 희년은행 가입 신청서를 같이 써 보자고 했고, 저축도 같이 해보자고 해서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는 크게 고민이 있었다기보다는, 같이 있던 분들이 가진 마음과 분위기가 좋았고, 희년함께가 하는 활동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적금처럼 매달 조금씩 저축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10만 원 정도씩 부담 없이 넣었던 것 같아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넣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는 내가 넣은 돈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일에 쓰이고 있다는 걸 세미나를 통해 알게 되면서, 그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단순한 저축이라기보다는 계속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가끔 목돈이 생길 때도 있었는데, 다른 소비를 하기 전에 희년은행에 넣곤 했어요. 예를 들어 친구가 결혼정보회사 등록을 권유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선택을 하기 전에 먼저 넣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선택을 한 게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또 희년은행은 일반 적금처럼 중도 해지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고, 필요할 때는 출금도 가능해서 부담 없이 이어갈 수 있었어요. 실제로 아파트를 살 때나 차를 살 때 일부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 보이스피싱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돈에 대해서 더 조심하게 된 계기도 있었습니다. 그때 잃었던 금액이 지금 희년은행에 모인 금액과 거의 비슷해서 마음이 묘하기도 했고, 작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모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금은 희년은행이 단순한 저축이라기보다 제 교직 생활과 함께해 온 시간처럼 느껴져요. 어떤 면에서는 저와 함께 성장해 온 과정 같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물론 수익만 놓고 보면 다른 투자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의 방식이 저한테는 더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성이나 마음의 부담 면에서도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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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솔직히 걱정도 있었어요. 이 돈이 나중에 정말 안전하게 잘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일반 은행처럼 완전히 보장된 구조가 아니다 보니까 필요할 때 회수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출자를 이어오게 된 건, 그런 걱정보다 이 구조가 가진 방향성에 더 마음이 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게 잘 자리 잡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면, 결국 더 많은 자원이 모이고 또 그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요. 그런 흐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희년함께 기도회에서 들었던 달란트 비유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어요. 각자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단순히 쌓아두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고 나누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희년은행에서 하는 출자라는 것도 그냥 돈을 맡기는 행위라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쓰이도록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조금 더 의미 있게 다가왔고요.


그래서 처음의 불안이나 확신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구조가 가진 의미와 방향성에 조금씩 더 공감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오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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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업치료학과를 전공하면서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대학 시절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았어요. 특수학급에서는 업무가 많았고, 특수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일이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이 눈에 띄게 좋아지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꼭 장애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지원과 제도가 갖춰져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때 캐나다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 경험이 기억에 남아요. 그때 우리 사회도 이런 방향으로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감각통합 치료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현장에서 적용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일이 단순히 수업을 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사회 안에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교직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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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10주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일상에 쫓기다 보니 따로 크게 의미를 두고 챙기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처음 출자를 시작할 때는 걱정도 있었어요. 나중에 필요할 때 문제없이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걱정보다는 희년은행이 가진 취지와 방향에 더 공감하게 됐습니다. 이게 잘 자리 잡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면 출자 규모도 커지고, 결국에는 더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요. 그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또 희년함께와 희년은행이 때로는 사회적으로나 교회 안에서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한쪽의 목소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낯선 시도로 보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실제로 하고 있는 일과 지향하는 가치가 더 잘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전보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느껴져요. 앞으로도 희년은행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취지와 방향을 꾸준히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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