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호 뉴스레터 '회원의 희년 이야기'에서는 희년함께 운영위원 김채영 선생님의 여정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김채영 선생님은 올해의 시작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열었고, 이어 3월 사순절 기간에는 DMZ 평화순례에 참여하며 깊은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서로 다른 공간이지만, 그 길 위에는 생명과 평화를 향한 같은 마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3월의 끝자락, 한반도의 가장 첨예한 경계인 DMZ를 따라 걷는 순례의 길에서 선생님은 한 사람의 순례자로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긴장과 분단의 상징 위에서 드려진 기도는 더욱 간절했고, 그 여정은 부활절을 지나며 특별한 의미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북한산 둘레길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자연의 숨결이 깃든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순례의 시간 속에서 마주한 생각과 깨달음을 차분히 들어보았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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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게 어떤 단체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요. 성공회 파주교회 김현호 신부님께서 개인적인 소명으로 시작하신 거예요. 한 13년 정도 되셨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그때 팽목항으로 내려가셨다가 거기서부터 서울까지 순례를 시작하신 거죠. 그렇게 사순절마다 계속 이어오시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순례길을 정하셨고요. 올해는 DMZ 평화의 길을 걷게 된 거예요. 파주에서 철원까지, 또 천주교와 기독교를 잇는 의미도 담아서요.
저는 이 순례에 작년 3월부터 참여하게 됐어요. 그때 계엄 이후로 개인적으로 좀 많이 힘든 시기였거든요. 성탄절 즈음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수님이 과연 따뜻한 예배당 안에 계실까… 오히려 추운 거리로 오실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벽돌 안 교회' 말고 '벽돌 밖 교회'를 좀 찾아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걷는 교회'랑 '걷는 기도'를 알게 됐어요. 그냥 검색하다가요. (웃음)
그런데 가보니까 진짜 건물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매번 모이는 장소가 달라요. 이번 주에는 어디에서 만나서 어디까지 걷자, 이렇게요. 밖에서 예배도 드리고요. 짧게 말씀 나누고, 기도하고. 그게 저한테는 되게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DMZ에서 하는 '걷는 기도'에도 연결이 됐어요. 매달 첫째 주 토요일마다 문산에서 모여서 임진각까지 걷는 건데요. 중간에 장산전망대에서 북한을 바라보면서 한 15분 정도 침묵기도를 해요. 그리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요.
처음에는 솔직히 멀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웃음) 같이 밥 나누고, 쉬고, 그런 시간들이요.
돌이켜보면 이게 그냥 갑자기 된 게 아니라, 이미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재작년에 희년함께 예수원피정에서 김홍일 신부님의 후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 후배가 DMZ 따라서 순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생겨서 그때 이름까지 알아봤다가 그냥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걷는 기도'를 찾다가 다시 그 길로 이어진 거죠. 생각해보면 되게 신기해요. 제가 막 애써서 찾았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느낌이에요.
저는 이전에는 '순례'라고 하면 되게 멀게 느껴졌거든요. 뭔가 고행 같고,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걷는 기도 자체가 순례가 될 수 있고, 일상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매달 한 번씩 걷는 이 시간이 제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결국은 '벽돌 밖 교회'를 찾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됐는데, 그게 여기까지 이어진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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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일 일정이었어요. 파주에 있는 가톨릭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출발해서 철원까지 6일 동안 걷고, 거기서 다시 돌아오는 왕복 여정이었어요. 전체로 보면 240km가 넘는 길이죠.
이번 순례에는 세 가지 큰 의미가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하나됨이었어요. 남과 북의 화해와 일치 통일에 앞서서 우리 남한의 기독교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어떤 하나됨. 그래서 출발은 가톨릭 성당에서 하고, 도착은 기장 '화해와 평화의 교회'에서 하는 식으로 두 교회를 연결하는 여정이었죠.
철원에 도착했을 때는 그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공회 신부님도 오셔서 성찬식도 같이 했어요. 그 공간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이었어요. 원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가운데 단이 있고, 사방에는 평안남도, 평안북도처럼 지역 이름들이 표시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다시 파주로 돌아왔을 때는 원래는 따로 예배 계획이 없었는데, 가톨릭 신부님께서 흔쾌히 미사 참여를 허락해주셨어요. 그래서 순례 마지막을 미사로 마무리하게 됐죠.
가톨릭은 영성체를 신자만 할 수 있어서 저희는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축복을 받는 방식으로 함께 했어요. 다 같이 가슴에 손을 얹고 축복을 받는데… 그 장면이 참 깊이 남았어요.
이번 순례는 단순히 걷기만 하는 일정은 아니었어요. 아침에는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나누고, 하루를 마치고 나면 저녁에 다시 모여서 그날의 마음을 나눴어요. 걷는 동안은 침묵기도로 이어가고요. 또 하루하루 참여하는 사람도 달랐어요. 12일 전체를 함께하는 분들도 있었고, 하루나 2~3일만 참여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저는 1년 전에 '다음엔 꼭 해보겠다' 하고 약속했던 게 있어서 이번에 참여하게 됐고요. 산티아고를 한 번 다녀온 경험도 있어서인지, 막상 시작하니까 발걸음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중간중간 예상하지 못했던 환대도 많이 있었어요. 교회나 성당에서 묵게 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식사를 대접해주시기도 하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순례 중에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초대받아 가게 된 '평화마을'이었어요.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식사도 함께하고, 공연도 보고…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따뜻한 시간이었죠. 이렇게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고, 또 나누는 과정 자체가 이 순례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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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일 일정이었어요. 파주에 있는 가톨릭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출발해서 철원까지 6일 동안 걷고, 거기서 다시 돌아오는 왕복 여정이었어요. 전체로 보면 240km가 넘는 길이죠.
이번 순례에는 세 가지 큰 의미가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하나됨이었어요. 남과 북의 화해와 일치 통일에 앞서서 우리 남한의 기독교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어떤 하나됨. 그래서 출발은 가톨릭 성당에서 하고, 도착은 기장 '화해와 평화의 교회'에서 하는 식으로 두 교회를 연결하는 여정이었죠.
철원에 도착했을 때는 그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공회 신부님도 오셔서 성찬식도 같이 했어요. 그 공간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이었어요. 원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가운데 단이 있고, 사방에는 평안남도, 평안북도처럼 지역 이름들이 표시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다시 파주로 돌아왔을 때는 원래는 따로 예배 계획이 없었는데, 가톨릭 신부님께서 흔쾌히 미사 참여를 허락해주셨어요. 그래서 순례 마지막을 미사로 마무리하게 됐죠.
가톨릭은 영성체를 신자만 할 수 있어서 저희는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축복을 받는 방식으로 함께 했어요. 다 같이 가슴에 손을 얹고 축복을 받는데… 그 장면이 참 깊이 남았어요.
이번 순례는 단순히 걷기만 하는 일정은 아니었어요. 아침에는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나누고, 하루를 마치고 나면 저녁에 다시 모여서 그날의 마음을 나눴어요. 걷는 동안은 침묵기도로 이어가고요. 또 하루하루 참여하는 사람도 달랐어요. 12일 전체를 함께하는 분들도 있었고, 하루나 2~3일만 참여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저는 1년 전에 '다음엔 꼭 해보겠다' 하고 약속했던 게 있어서 이번에 참여하게 됐고요. 산티아고를 한 번 다녀온 경험도 있어서인지, 막상 시작하니까 발걸음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중간중간 예상하지 못했던 환대도 많이 있었어요. 교회나 성당에서 묵게 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식사를 대접해주시기도 하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순례 중에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초대받아 가게 된 '평화마을'이었어요.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식사도 함께하고, 공연도 보고…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따뜻한 시간이었죠. 이렇게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고, 또 나누는 과정 자체가 이 순례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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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평화마을'에서의 시간이었어요. 순례 중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된 곳인데, 공동체로 운영되는 마을이었어요. 친환경 방식으로 집을 짓고, 함께 살아가는 곳이더라고요. 그날 저녁에 저희를 위해 식사를 준비해주시고, 잠자리도 내어주시고, 심지어 공연까지 준비해주셨어요. 핸드팬이라는 악기로 연주를 해주시는데, 그게 악보가 있는 연주가 아니라 순례를 묵상하면서 만들어낸 음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순간이 너무 깊이 와닿아서… 저도 모르게 분위기에 이끌려서 아리랑을 한 곡 불렀어요. (웃음) 정말 그대로 '환대'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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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북한군 묘역이었어요. 처음 갔을 때는 마음이 굉장히 복잡했어요. 그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그리고 무장공비들의 묘가 모여 있었거든요. 예전에는 '적군묘역'이라고 불렸던 곳인데, 지금은 이름도 바뀌고, 묘도 잘 정비되어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처음에는 좀 낯설고 어려운 마음도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예우를 해주는구나' 하는 감사함도 들었어요. 그런데 더 마음이 아팠던 건, 그분들이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송환이 안 되고, 북한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그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거죠. 묘의 방향도 북쪽을 향하고 있었어요. 고향을 바라보도록요. 그걸 보는데… 이게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그게 굉장히 크게 마음에 남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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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순례 자체가 원래 사순절에 계속 해오던 거예요. 처음부터요. 특히 성직자분들이 많이 참여하시다 보니까, 사순절이라는 시기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이잖아요. 그래서 그 의미를 더 깊이 담아서 순례를 이어오신 것 같아요. 물론 희년함께는 신앙인만 있는 건 아니니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순례 자체가 교회 안에서만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직접 걷고, 몸으로 경험하면서 묵상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저는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실내에서 기도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걸으면서 침묵으로 기도하고, 그 땅을 느끼는 거니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 깊었던 장소가 하나 있었어요. 철원에 '지뢰꽃길'이라고 불리는 길이 있는데요. 겉으로 보면 그냥 둘레길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지뢰지대 옆을 따라 걷는 길이에요. 펜스가 처져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는데, 그 안쪽에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어요. 살아는 있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갇혀 있는 거죠. 예전에 그 지역에서 농사짓던 분들은 지뢰 때문에 사고를 겪는 일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길을 걷는데… 이 땅 자체가 아픔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에 '지뢰꽃'이라는 시비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지역 시인이 쓴 시라고 들었어요. 철원이라는 도시의 아픔인거죠. 그곳을 걸으면서 그것들을 알아가는 거에요. 이 땅이 어떤 땅인지. 또 백마고지 같은 곳도 지나갔는데, 그 작은 고지를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그걸 직접 보고, 듣고,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 머리로 아는 것과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사순절 순례는 단순히 '고난을 묵상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 땅의 역사와 아픔을 몸으로 마주하는 시간이었다고 느꼈어요. 결국 사순절이라는 시간이 예수님의 고난뿐만 아니라, 이 시대와 이 땅의 고통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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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희년은 한마디로 '자유'예요. 레위기 25장 10절에 보면 자유를 공포하라고 하잖아요. 눌린 사람, 빚진 사람, 모든 관계가 회복되면서 결국은 자유로 돌아가는 거죠. 그런데 이걸 순례랑 연결해서 생각해보니까, '땅'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어요. 희년함께도 결국 땅에서 출발하잖아요. 토지, 그리고 더 넓게는 천연자원까지. 모두에게 주어진 공공의 자산이라는 개념이요. 순례를 하면서 그걸 그냥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밟고 느끼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걷는 길이 시골길이 많고, 산도 넘고 하다 보니까 사람보다 오히려 다른 존재들을 더 많이 만나게 돼요. 동물들, 식물들, 자연… 그 모든 것들이 같이 이 땅 위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걷는 동안 계속 보게 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크게 느꼈던 건, 고통받는 건 사람만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지뢰꽃길이나 백마고지 같은 곳을 지나면서 이 땅 자체도 상처를 안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걸 직접 보고 걸으면서 느끼는 건 이론으로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북한군 묘역에서 느꼈던 부분도 희년의 '자유'라는 가치와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잖아요. 종전이 되지 않아서,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어떤 경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 어떻게 보면 '묶여 있는 존재'인 거죠. 그걸 보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무엇인지 굉장히 구체적으로 와닿았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희년함께에서도 '땅'을 주제로 한 순례를 충분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요. 예를 들면 DMZ처럼 분단의 현장도 있고, 또 반대로 신안처럼 공유자원을 잘 활용한 사례도 있잖아요. 그런 곳들을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것도 하나의 순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관광이 아니라 '순례자의 마음'으로 가는 거죠. 배우려고 가는 마음,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으로요. 성공한 사례뿐만 아니라 실패했던 역사적인 장소들도 포함해서 그 땅을 통해 배우는 순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걸 좀 더 확장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생명, 정의, 평화 이렇게 세 가지 축으로 나눠서 보면 환경 쪽에서는 '생명'을, 희년함께는 '정의', 특히 토지 정의를, 그리고 DMZ 순례는 '평화'를 담고 있잖아요. 이 세 가지가 연결되면 굉장히 의미 있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이 세 흐름이 같이 만나는 자리도 한번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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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는 솔직히 제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진 못하겠어요. (웃음) 그냥 인도자가 있어서 따라가면서 걷고, 순례 다녀온 거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남편이요. '그거 쉬운 일 아닌데, 수고했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랐어요. '이 사람이 이런 말도 할 줄 아네?' (웃음) 그게 되게 인상 깊었고요.
그리고 순례 과정에서도 사람들과의 연결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중간에 찾아오는 분들도 있고, 식사나 간식을 챙겨주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어떤 분은 '채영 누님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얘기도 하셨어요. 저는 그냥 제 이야기하고 있었을 뿐인데, 주변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느낌이랄까요. 예전에는 혼자 밥 먹는 게 편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같이 나누고, 연결되는 상황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순례 중에 재미있는 일도 있었어요. 신부님께서 '평화센터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거기서 갑자기 저희끼리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웃음) 누구는 순례팀장, 누구는 미디어팀장, 누구는 민원 해결 잘한다고 '비타민 팀장', 이렇게 다 팀장을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뭐냐고 했더니… 제가 산티아고 때 '다람쥐'라는 별명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람쥐 팀장'이 됐어요. (웃음) 근데 웃긴 건, 다람쥐 팀장이 뭐 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저도 몰라요. (웃음) 그렇게 웃고 나누는 시간들도 있었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변화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리해보면 제가 뭔가 크게 달라졌다기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흐름 속에서 주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게 이번 순례 이후에 느끼는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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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뉴스레터 '회원의 희년 이야기'에서는
희년함께 운영위원 김채영 선생님의 여정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김채영 선생님은 올해의 시작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열었고, 이어 3월 사순절 기간에는 DMZ 평화순례에 참여하며 깊은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서로 다른 공간이지만, 그 길 위에는 생명과 평화를 향한 같은 마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3월의 끝자락, 한반도의 가장 첨예한 경계인 DMZ를 따라 걷는 순례의 길에서 선생님은 한 사람의 순례자로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긴장과 분단의 상징 위에서 드려진 기도는 더욱 간절했고, 그 여정은 부활절을 지나며 특별한 의미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북한산 둘레길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자연의 숨결이 깃든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순례의 시간 속에서 마주한 생각과 깨달음을 차분히 들어보았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음… 이게 어떤 단체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요. 성공회 파주교회 김현호 신부님께서 개인적인 소명으로 시작하신 거예요. 한 13년 정도 되셨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그때 팽목항으로 내려가셨다가 거기서부터 서울까지 순례를 시작하신 거죠. 그렇게 사순절마다 계속 이어오시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순례길을 정하셨고요. 올해는 DMZ 평화의 길을 걷게 된 거예요. 파주에서 철원까지, 또 천주교와 기독교를 잇는 의미도 담아서요.
저는 이 순례에 작년 3월부터 참여하게 됐어요. 그때 계엄 이후로 개인적으로 좀 많이 힘든 시기였거든요. 성탄절 즈음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수님이 과연 따뜻한 예배당 안에 계실까… 오히려 추운 거리로 오실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벽돌 안 교회' 말고 '벽돌 밖 교회'를 좀 찾아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걷는 교회'랑 '걷는 기도'를 알게 됐어요. 그냥 검색하다가요. (웃음)
그런데 가보니까 진짜 건물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매번 모이는 장소가 달라요. 이번 주에는 어디에서 만나서 어디까지 걷자, 이렇게요. 밖에서 예배도 드리고요. 짧게 말씀 나누고, 기도하고. 그게 저한테는 되게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DMZ에서 하는 '걷는 기도'에도 연결이 됐어요. 매달 첫째 주 토요일마다 문산에서 모여서 임진각까지 걷는 건데요. 중간에 장산전망대에서 북한을 바라보면서 한 15분 정도 침묵기도를 해요. 그리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요.
처음에는 솔직히 멀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웃음) 같이 밥 나누고, 쉬고, 그런 시간들이요.
돌이켜보면 이게 그냥 갑자기 된 게 아니라, 이미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재작년에 희년함께 예수원피정에서 김홍일 신부님의 후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 후배가 DMZ 따라서 순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생겨서 그때 이름까지 알아봤다가 그냥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걷는 기도'를 찾다가 다시 그 길로 이어진 거죠. 생각해보면 되게 신기해요. 제가 막 애써서 찾았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느낌이에요.
저는 이전에는 '순례'라고 하면 되게 멀게 느껴졌거든요. 뭔가 고행 같고,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걷는 기도 자체가 순례가 될 수 있고, 일상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매달 한 번씩 걷는 이 시간이 제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결국은 '벽돌 밖 교회'를 찾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됐는데, 그게 여기까지 이어진 거죠.
총 12일 일정이었어요. 파주에 있는 가톨릭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출발해서 철원까지 6일 동안 걷고, 거기서 다시 돌아오는 왕복 여정이었어요. 전체로 보면 240km가 넘는 길이죠.
이번 순례에는 세 가지 큰 의미가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하나됨이었어요. 남과 북의 화해와 일치 통일에 앞서서 우리 남한의 기독교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어떤 하나됨. 그래서 출발은 가톨릭 성당에서 하고, 도착은 기장 '화해와 평화의 교회'에서 하는 식으로 두 교회를 연결하는 여정이었죠.
철원에 도착했을 때는 그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공회 신부님도 오셔서 성찬식도 같이 했어요. 그 공간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이었어요. 원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가운데 단이 있고, 사방에는 평안남도, 평안북도처럼 지역 이름들이 표시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다시 파주로 돌아왔을 때는 원래는 따로 예배 계획이 없었는데, 가톨릭 신부님께서 흔쾌히 미사 참여를 허락해주셨어요. 그래서 순례 마지막을 미사로 마무리하게 됐죠.
가톨릭은 영성체를 신자만 할 수 있어서 저희는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축복을 받는 방식으로 함께 했어요. 다 같이 가슴에 손을 얹고 축복을 받는데… 그 장면이 참 깊이 남았어요.
이번 순례는 단순히 걷기만 하는 일정은 아니었어요. 아침에는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나누고, 하루를 마치고 나면 저녁에 다시 모여서 그날의 마음을 나눴어요. 걷는 동안은 침묵기도로 이어가고요. 또 하루하루 참여하는 사람도 달랐어요. 12일 전체를 함께하는 분들도 있었고, 하루나 2~3일만 참여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저는 1년 전에 '다음엔 꼭 해보겠다' 하고 약속했던 게 있어서 이번에 참여하게 됐고요. 산티아고를 한 번 다녀온 경험도 있어서인지, 막상 시작하니까 발걸음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중간중간 예상하지 못했던 환대도 많이 있었어요. 교회나 성당에서 묵게 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식사를 대접해주시기도 하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순례 중에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초대받아 가게 된 '평화마을'이었어요.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식사도 함께하고, 공연도 보고…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따뜻한 시간이었죠. 이렇게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고, 또 나누는 과정 자체가 이 순례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총 12일 일정이었어요. 파주에 있는 가톨릭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출발해서 철원까지 6일 동안 걷고, 거기서 다시 돌아오는 왕복 여정이었어요. 전체로 보면 240km가 넘는 길이죠.
이번 순례에는 세 가지 큰 의미가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하나됨이었어요. 남과 북의 화해와 일치 통일에 앞서서 우리 남한의 기독교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어떤 하나됨. 그래서 출발은 가톨릭 성당에서 하고, 도착은 기장 '화해와 평화의 교회'에서 하는 식으로 두 교회를 연결하는 여정이었죠.
철원에 도착했을 때는 그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공회 신부님도 오셔서 성찬식도 같이 했어요. 그 공간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이었어요. 원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가운데 단이 있고, 사방에는 평안남도, 평안북도처럼 지역 이름들이 표시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다시 파주로 돌아왔을 때는 원래는 따로 예배 계획이 없었는데, 가톨릭 신부님께서 흔쾌히 미사 참여를 허락해주셨어요. 그래서 순례 마지막을 미사로 마무리하게 됐죠.
가톨릭은 영성체를 신자만 할 수 있어서 저희는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축복을 받는 방식으로 함께 했어요. 다 같이 가슴에 손을 얹고 축복을 받는데… 그 장면이 참 깊이 남았어요.
이번 순례는 단순히 걷기만 하는 일정은 아니었어요. 아침에는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나누고, 하루를 마치고 나면 저녁에 다시 모여서 그날의 마음을 나눴어요. 걷는 동안은 침묵기도로 이어가고요. 또 하루하루 참여하는 사람도 달랐어요. 12일 전체를 함께하는 분들도 있었고, 하루나 2~3일만 참여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저는 1년 전에 '다음엔 꼭 해보겠다' 하고 약속했던 게 있어서 이번에 참여하게 됐고요. 산티아고를 한 번 다녀온 경험도 있어서인지, 막상 시작하니까 발걸음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중간중간 예상하지 못했던 환대도 많이 있었어요. 교회나 성당에서 묵게 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식사를 대접해주시기도 하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순례 중에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초대받아 가게 된 '평화마을'이었어요.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식사도 함께하고, 공연도 보고…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따뜻한 시간이었죠. 이렇게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고, 또 나누는 과정 자체가 이 순례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순례 중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된 곳인데, 공동체로 운영되는 마을이었어요. 친환경 방식으로 집을 짓고, 함께 살아가는 곳이더라고요.
그 순간이 너무 깊이 와닿아서…
정말 그대로 '환대'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어요.
그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그리고 무장공비들의 묘가 모여 있었거든요.
예전에는 '적군묘역'이라고 불렸던 곳인데, 지금은 이름도 바뀌고, 묘도 잘 정비되어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처음에는 좀 낯설고 어려운 마음도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예우를 해주는구나' 하는 감사함도 들었어요.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송환이 안 되고, 북한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그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거죠. 묘의 방향도 북쪽을 향하고 있었어요. 고향을 바라보도록요.
사실 이 순례 자체가 원래 사순절에 계속 해오던 거예요. 처음부터요. 특히 성직자분들이 많이 참여하시다 보니까, 사순절이라는 시기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이잖아요. 그래서 그 의미를 더 깊이 담아서 순례를 이어오신 것 같아요. 물론 희년함께는 신앙인만 있는 건 아니니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순례 자체가 교회 안에서만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직접 걷고, 몸으로 경험하면서 묵상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저는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실내에서 기도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걸으면서 침묵으로 기도하고, 그 땅을 느끼는 거니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 깊었던 장소가 하나 있었어요. 철원에 '지뢰꽃길'이라고 불리는 길이 있는데요. 겉으로 보면 그냥 둘레길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지뢰지대 옆을 따라 걷는 길이에요. 펜스가 처져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는데, 그 안쪽에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어요. 살아는 있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갇혀 있는 거죠. 예전에 그 지역에서 농사짓던 분들은 지뢰 때문에 사고를 겪는 일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길을 걷는데… 이 땅 자체가 아픔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에 '지뢰꽃'이라는 시비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지역 시인이 쓴 시라고 들었어요. 철원이라는 도시의 아픔인거죠. 그곳을 걸으면서 그것들을 알아가는 거에요. 이 땅이 어떤 땅인지. 또 백마고지 같은 곳도 지나갔는데, 그 작은 고지를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그걸 직접 보고, 듣고,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 머리로 아는 것과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사순절 순례는 단순히 '고난을 묵상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 땅의 역사와 아픔을 몸으로 마주하는 시간이었다고 느꼈어요. 결국 사순절이라는 시간이 예수님의 고난뿐만 아니라, 이 시대와 이 땅의 고통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저한테 희년은 한마디로 '자유'예요. 레위기 25장 10절에 보면 자유를 공포하라고 하잖아요.
눌린 사람, 빚진 사람, 모든 관계가 회복되면서 결국은 자유로 돌아가는 거죠. 그런데 이걸 순례랑 연결해서 생각해보니까, '땅'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어요. 희년함께도 결국 땅에서 출발하잖아요. 토지, 그리고 더 넓게는 천연자원까지. 모두에게 주어진 공공의 자산이라는 개념이요. 순례를 하면서 그걸 그냥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밟고 느끼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걷는 길이 시골길이 많고, 산도 넘고 하다 보니까 사람보다 오히려 다른 존재들을 더 많이 만나게 돼요. 동물들, 식물들, 자연… 그 모든 것들이 같이 이 땅 위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걷는 동안 계속 보게 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크게 느꼈던 건, 고통받는 건 사람만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지뢰꽃길이나 백마고지 같은 곳을 지나면서 이 땅 자체도 상처를 안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걸 직접 보고 걸으면서 느끼는 건 이론으로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북한군 묘역에서 느꼈던 부분도 희년의 '자유'라는 가치와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잖아요. 종전이 되지 않아서,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어떤 경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 어떻게 보면 '묶여 있는 존재'인 거죠. 그걸 보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무엇인지 굉장히 구체적으로 와닿았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희년함께에서도 '땅'을 주제로 한 순례를 충분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요. 예를 들면 DMZ처럼 분단의 현장도 있고, 또 반대로 신안처럼 공유자원을 잘 활용한 사례도 있잖아요.
그런 곳들을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것도 하나의 순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관광이 아니라 '순례자의 마음'으로 가는 거죠. 배우려고 가는 마음,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으로요. 성공한 사례뿐만 아니라 실패했던 역사적인 장소들도 포함해서 그 땅을 통해 배우는 순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걸 좀 더 확장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생명, 정의, 평화 이렇게 세 가지 축으로 나눠서 보면 환경 쪽에서는 '생명'을, 희년함께는 '정의', 특히 토지 정의를, 그리고 DMZ 순례는 '평화'를 담고 있잖아요. 이 세 가지가 연결되면 굉장히 의미 있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이 세 흐름이 같이 만나는 자리도 한번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 저는 솔직히 제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진 못하겠어요. (웃음) 그냥 인도자가 있어서 따라가면서 걷고, 순례 다녀온 거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남편이요. '그거 쉬운 일 아닌데, 수고했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랐어요. '이 사람이 이런 말도 할 줄 아네?' (웃음) 그게 되게 인상 깊었고요.
그리고 순례 과정에서도 사람들과의 연결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중간에 찾아오는 분들도 있고, 식사나 간식을 챙겨주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어떤 분은 '채영 누님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얘기도 하셨어요. 저는 그냥 제 이야기하고 있었을 뿐인데, 주변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느낌이랄까요. 예전에는 혼자 밥 먹는 게 편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같이 나누고, 연결되는 상황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순례 중에 재미있는 일도 있었어요. 신부님께서 '평화센터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거기서 갑자기 저희끼리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웃음) 누구는 순례팀장, 누구는 미디어팀장, 누구는 민원 해결 잘한다고 '비타민 팀장', 이렇게 다 팀장을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뭐냐고 했더니… 제가 산티아고 때 '다람쥐'라는 별명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람쥐 팀장'이 됐어요. (웃음) 근데 웃긴 건, 다람쥐 팀장이 뭐 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저도 몰라요. (웃음) 그렇게 웃고 나누는 시간들도 있었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변화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리해보면 제가 뭔가 크게 달라졌다기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흐름 속에서 주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게 이번 순례 이후에 느끼는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